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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 평범해서 소중한 일상
태평양 섬나라에서 한달살기 하이라이트 ②
2019.11.07 06:25

두번째 글입니다. 앞 이야기(스위스, 크로아티아, 북해도, 태즈매니아, 뉴 칼레도니아 한달살기)를 못보셨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8. 바누아투 한달살기 : 식인종이 살던 곳

태평양 섬 여행의 하이라이트.
그렇다. 바로 감자와 오이가 꼽는 하이라이트는 바로 바누아투였다. 
아직 문명이 완전히 자리잡지 않아 어중간한 과도기를 걷고 있는 곳으로 태평양 섬들 전체에 퍼져 있었던 식인이 1969년까지 행해졌다니 말 다했지. 그만큼 신문물이 늦게 들어간 곳이고, 그래서 투박할 수 밖에 없는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리고 말았다. 

 

탐탐마을의 전통공연. 원래 전통 의상은 왼쪽에 있는 어린이가 입은 옷이지만 어른들은 방문자들의 눈보호를 위해 뒤에 나뭇잎을 끼워뒀다 ^^; 

 

이제 더이상 식인을 하지는 않지만, 수도 포트빌라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부족단위 마을생활을 하는데, 몇몇 부족은 마을 입구에 작은 민속촌(원두막과 초가집)을 재현해 놓고, 방문자들을 위해 전통공연과 생활모습을 재현하여 마을기금을 마련한다. (예약필수) 그리고 그들도 시멘트와 벽돌로 지어진 집에서 TV와 냉장고 등 문명의 이기를 누린다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인구는 판자집같은 곳에 거주하며, 마당에 판 구덩이에 장작불을 지펴 요리한다. 
그나저나 마지막 식인이 1969년이었다면 그 이전에 태어난 어르신들의 일부는 아직도 인육의 맛을 기억한다는 이야기? 흐음...한번 맛보면 잊지 못한다는 인육의 맛. 혹시나 여기 가신다면 밤길 조심하시길. ^^;;  

사실 식인이 있었던 것과 관계 없이 우리가 만난 바누아투 사람들은 전부 참 해맑고 친절했다. 어딘가 우리나라 해방기적 분위기를 풍겼는데, (난 해방기때 안살아 봤지만 그랬을 것만 같은) 인터넷도 들어간지 몇 년 안되서 데이 투어중 가이드 아저씨가 이런 질문을 했다. 

❝ (오이군에게) 직업이 웹개발자라고 했죠? 그럼 하나만 물읍시다. 내가 인터넷에 들어가서 뭘 물어보면 그 대답이 쫘르르 나오잖아요. 그럼 그게 사람이 대답을 하는 겁니까, 아니면 컴퓨터가 대답을 하는 겁니까? 난 그게 신기하고, 도무지 이해가 안돼. ❞ 

 

해변가 간이 음식점과 카바즙을 파는 간이 바. 카바즙은 몸을 살짝 마비시키는 효과가 있는 음료로 전통적으로 행사때 남자들만 마셨으나 이제는 퇴근 후 남녀할 것 없이 맥주처럼 마신다. 근데, 이렇게 순박하게 생기신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예전에는 식인종이셨다는 건가...? - 팡고 Pango 빌리지 해변


얼마전 영화관도 하나 생긴 수도, 포트 빌라 Port Villa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현대문물에 깨어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유일한 도시(라고 쓰지만 미니 사이즈 읍내라고 읽는)를 벗어나면 사람들은 이렇게 급격히 순박해졌다. 이 가이드 아저씨는 그래도 외국 관광객 상대로 일을 하며, 나이도 사십대 중반 정도인 것 같았는데, 이렇게 우리의 눈을 끔뻑이게 하는 질문을 하더라.
뉴 칼레도니아의 수도(프랑스 해외 영토라서 사실은 주도)가 워낙 그냥 프랑스 같았고, 호주, 뉴질랜드가 지척에서 입김을 뿜어대는데도 여전히 이렇게 옛모습을 간직한 곳이 존재 하리라고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우리에겐 문화 충격이 상당히 컸다. 웬지 사이판과 비슷할 줄 알았는데...

 

태평양 섬나라들은 생활수준이나 국가 경제력과 관계 없이 물가가 상당히 비싸다. 그나마 바누아투는 다른 섬에 비해 저렴한 편으로 수도인 포트빌라에서 외곽에 떨어져 있는 펜션은 비교적 저렴했다. 작은 개인 플런지 풀이 있는 원룸형 독채 펜션은 일 7-8만원, 방 두개에 거실과 주방이 있는 커다란 독채 펜션은 일 9-13만원 선. (비수기 기준, 방마다 에어콘이 비치되어 있고, 공용 수영장이 있다. 매일 청소 서비스 포함, 장기 숙박시 가격 흥정 가능) - 엔젤피시 코브 빌라 Angelfish Cove Villas


물론 여기에도 호주, 뉴질랜드인들이 지어 놓은 럭셔리 리조트들이 많이 있다. 도시는 늘 열심히 갈아 엎어지며, 무언가 공사중이고, 유명한 관광지에는 중국인의 손길도 닿아 반반한 도로도 놓이는 중이다. 그래도 아직 83개의 섬 중 본섬 에파테 Efate를 제외하고는 때묻지 않은(원시적인) 곳이 대부분이니 그런 곳을 찾는 다면 빨리 다녀오시길. 그러나 과도기적인 곳이니 편의시설이 부족한 것은 당연한 일. 깨끗한 호텔에서 깔끔하게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아무리 아름다운 원시 대자연이 반긴다 해도 여긴 최적의 여행지가 아니다.

 

우리 한달살기 숙소앞 바닷속. 경산호는 대부분 회색이나 갈색인데, 이곳에는 화려한 색의 경산호가 많았다. 파괴되지 않은 바다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는 곳

 

우리가 특히 좋아했던 것은 다름아닌 우리 집 앞의 바닷속이었다. 영화 아쿠아맨의 수중 궁전같은 총천연색 컬러풀 산호바다가 그냥 집앞에서 펼쳐 졌다. 다이빙도 필요 없었다.
그리고 내 평생 처음 본 펄펄 끓는 활화산!
일본, 뉴질랜드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황가스 자욱하게 뿜어져 나오는 그런 활화산 말고, 대낮에도 붉은 용암이 퍽퍽 튀어오르는 그런 화산!
민간인이 장비 없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이 분화구에 가서 용암이 이글이글 끓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폭발중이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끓고 있는 상태라 한번씩 퍽 하고 끓어 오를 때마다 엄청난 경험을 할 수 있다. 순간적으로 공중을 가르는 충격파(파장이 눈으로 보인다)와 천지를 울리는 요란한 굉음 그리고 화산재와 섞여 숨통을 조여오는 유황냄새까지...그 미친 임팩트는 말로 설명해봐야 천분의 일도 감이 안올거라 설명은 패스. 직접 가서 보시라는 말 밖에.

 

퐈이아! 밤이 되면 주변까지 붉게 물들어 더 웅장하다 - 타나섬 야수르 화산 Tanna Island, Yasur
산토섬의 샴페인 비치는 세계에서 가장 예쁜 해변 중 하나로 손꼽힌다. 12-1월, 7-8월 방학 성수기를 제외하고는 이런 해변들을 개인 비치처럼 혼자서 독차지 할 수 있는게 뽀인트! - 산토섬, 샴페인 비치 Santo Island, Champagne Beach
흰모래 사장과 해변이 식상해 지면 정글 곳곳에 있는 블루홀들을 찾아 다니자. 물색이 왜 이렇게 파란지는 며느리도 모른다고 - 산토섬 난다 블루홀 Santo Island, Nanda Blue Hole
이런색의 블루홀도 있다. 방금 물뱀을 보고 왔는데, 오이군이 물속에서 슬그머니 내 발을 만지는 바람에 식겁... -_-; - 에파테 섬 블루라군 Efate Island, Blue Lagoon

 

우리는 에파테 Efate섬과 에스피리투 산토 Espiritu Santo섬 그리고 타나 Tanna섬 세곳에서 총 한달을 보냈는데, 각 섬마다 오묘한 색감의 푸른 연못과 폭포가 많이 있어서 찾아다니며 수영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넓이가 흔히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반얀 트리들은 또 어떻고? 세계에서 가장 큰 반얀트리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그 넓이가 무려 200미터나 된다. 나무라기보다는 그냥 성당이나 뭐 그런 건물같이 생겼다는. 게다가 2차 대전때 가라 앉은 미군 군함이 있어서 세계적인 난파선 다이빙 포인트이기도 하다. 난파선 다이빙 싸이트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데, 한 배안에 다이빙 포인트가 무려 20개나 된다고! 우리는 너무나 아쉽게도 오이군이 중이염이 심하게 걸리는 바람에 다이빙을 못감. ㅠ_ㅠ 덕분에 또 다시갈 이유가 생겼다. 

섬나라 치고 먹을 것도 풍부했다. 
보통 이런 작은 섬나라는 공산품 뿐만 아니라 식재료가 대부분 수입이라 가격도 높고, 물량도 많지 않는데, 여긴 호주, 뉴질랜드 사람들이 많이 건너와 궁전같은 대저택을 짓고 살다보니 슈퍼의 물건들이 비교적 양호했다. 또 인근 작은 섬에 사는 사람들이 각자 기른 것을 수도인 에페테 시장으로 가져와 팔며 생계를 유지하다보니 농산물 시장도 풍성하고, 물가도 다른 태평양 섬에 비해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한국과 비슷, 태평양 섬나라들이 생활 수준이 높지 않다고 해서 물가가 싼것이 아니다. 한국보다 대부분 물가가 비쌈, 뉴 칼레도니아와 타히니 물가는 스위스 수준. -_-; 멋모르고 태평양 섬들 돌았다가 감자 오이는 현재 파산 직전 중).

 

가장 저렴한 식재료는 플랜틴 바나나. 팔뚝만한 플랜틴 바나나들은 딱딱하고 별로 달지 않아 감자처럼 먹는다. 껍질을 벗겨 코코넛 밀크와 함께 삶거나 으깨서 쪄먹는다 - 포트빌라 시장
일부 섬에서는 코코넛 크랩도 잡을 수 있는데, 그 개체수가 많지 않아서 여기서도 엄청나게 비싸다. 한마리에 약 5만원가량. 수영을 하지 못하는 이 게는 코코넛을 먹고 살아서 코코넛 맛이 난다고 하는데, 보통 요리 자체를 코코넛 크림에 하기 때문에 크림맛인지 게 맛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예전에 다른 나라에서 멋모르고 한번 먹은 적이 있는데, 알고보니 세계 멸종 위기 취약종이더라. 되도록이면 먹지 말자. 이름과 생긴게 특이하지만 그냥 뭐 게 맛이더만... ㅠ_ㅠ
포트빌라의 수퍼마켓에는 한국 과자는 물론 라면도 판다. 생각치도 못했는데, 시원하게 속풀이!


이렇게 모든 것이 우리 취향에 완벽했는데...
아쉽게도 이곳도 내가 평생 살곳은 아닌 듯 하다.
어떤 섬엘 가도, 아무리 좋은 리조트엘 가도 밤만 되면 검지 손가락 만한 바퀴벌레가 신나게 출몰했던 것! 
독일바퀴 사이즈만 됐어도 자연이 너무 멋지니 함 참아볼려고 했는데, 크기가 한국 숲바퀴 1.5배. 나는 편의시설은 부족해도 살 수 있지만 이런 큰 벌레들은 감당할 수가 없다. 하루에 한두 마리는 기본이고 많은 날은 열 대섯 마리도 나타났다. 집에도 살고, 창문으로 날아 들어오기도 하고. 두번째 숙소에서는 매일 밤 방에 귀여운(?) 생쥐도 돌아다녀서 결국 생쥐 4마리와 커다란 지네 한마리, 초대형 바퀴 두마리가 방에서 난리부르스를 치던 어느날 밤 울면서 마을 한가운데 있는 공산당 건물같이 생긴 호텔로 대피하는 소동도 있었다. 깍뚜기 모양 공산당 건물은 새 호텔이라 쥐도, 바퀴도, 게코 도마뱀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런데 짱박혀 있을려면 대체 바누아투를 왜 가나? 바누아투는 뭐니뭐니해도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바닷가 숙소에 머물러야 제맛이다. 대왕 바퀴벌레가 괴롭힌다 할지라도... 

 

9. 피지 10일 : 12년차 허니문

피지에서도 한달살기를 할까 싶었는데, 수도인 수바 Suva에서  한국교민을 대상으로한 강도가 날뛴다는 소문이 자꾸 들리더라. 며칠 호텔에서 머물며 치고 빠지는 관광객이야 별 상관 없는데, 거주하는 한인 대상 범죄라니 이거 일반 주거지역에서 한달살기 하기가 조금 망설여 지잖아? 게다가 현지 사정도 잘 몰라서 어리버리한데, 우린 완전 딱 좋은 먹잇감.

사실 어느 나라를 가도 범죄의 위험이 없을 수는 없다지만 왜 또 여기는 한국인을 콕 집어서 강도질을 한다니. 뭐 정 원한다면 안전한 동네를 열심히 검색해서 머물 수도 있었겠지만, 이때 한참 일이 많아서 내가 번 아웃 상태였다. 검색이고 뭐고 세상만사 다 귀찮길래 스위스 가이드북 탈고 기념을 핑계로, 3년간 다리 절어가며 고생한 나에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 허니문 때도 안간 고급 리조트에서 넋 놓고 굴러 보기로 한 것!

 

빨빨거리며 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이번엔 몇날 며칠 저 수영장에서 죽순이로 보냈다
오이군도 이런 휴가 별로 싫지 않은 듯? ^^;


계획 외 지출이라 우리 생활비가 아닌 나의 비자금을 탈탈 털어 오이군과 상의 없이 무대포로 예약을 해버렸다 ^^; 어차피 오이군은 내일 당장 우리가 어디로 일을 하러 가는지, 휴가를 가는지도 잘 모르기 때문에 예약 잡아 놓으면 그냥 군소리 없이 잘 따라 오는 순딩이. 나는 그런 오이군을 위해 그의 회사 연차 날짜까지 계산해서 휴가도 셋팅해 드리는 마누라 겸 개인 비서로 이번 피지행은 우리 모두에게 순수 휴가 였다. 12번째 결혼 기념일 날짜가 좀 지났지만 예약할 때 결혼기념일 여행이라고 우겨서 방갈로 위치 업그레이드까지 획득.

 

리조트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밤이 되면 별이 쏟아질 듯 했다. 별빛아래 낭만을 가득담아 이렇게 사진 찍다 옆방 투숙객과 마주쳤을 때의 그 어색함이란... - 코로선 리조트 Korosun Resort
밖에 구경다니지 않는 대신 리조트에서 진행하는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코코넛 까기 및 태평양 섬나라 전통 조리법인 땅속 오븐에 요리하는 법 등을 배웠다. 이제 정글에서 조난당해도 살아 남을 수 있을 듯 ^^;;
성인 전용 수영장. 비오는 날도 악착같이 저 수영장을 지켰다! 어차피 젖을 거 비가 온들 무슨 상관 ^^;

작은 리조트인데다가 비수기였고, 수상 방갈로와 방갈로쪽 수영장은 성인 전용이기까지 해서 매우 조용하고, 한가롭더라. 소나기 하루 온거 빼고는 날씨까지 완벽해서 그냥 모든 것이 좋았다는. 허니문도 땡처리 호텔로 갔다온 내가 내돈 내고 처음 가본 리조트로, 이렇게 리조트 자체를 만끽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간 고급 리조트에 갈 일이 많이 있긴 했는데, 그건 전부 취재로 간거라 각종 촬영으로 이리저리 뛰다보면 리조트 자체를 여유롭게 즐길 시간은 별로 없었다. 리조트 홍보 취재를 가도 마찬가지다. 구석구석 사진 예쁘게 나오는 앵글 찾아 하루 종일 사진만 찍다보면 2-3일이 훌쩍. 일로 간거는 역시나 일일 뿐.

 

나디 Nadi 데이투어 중 방문한 시장. 바누아투랑 컨셉은 비슷한데, 훨씬 더 깨끗하고, 세련된 느낌
리조트 프로그램(유료)으로 갔던 폭포. 최소 참여 인원(6명)에 미달되서 세번이나 투어가 취소 되었었는데, 자꾸 신청하는 내가 불쌍했던지 특별히 투어를 운영해줘서 갈 수 있었다. 덕분에 오이군과 전세낸 폭포! 오예~ ^^;;


평소와 달리 섬 여기저기 헤짚고 다니지도 않았다. 피지의 수도와 국제 공항이 있는 비티 레부 Viti Levu 섬에서 나디 Nadi 마을 근처 데이투어 한번, 우리 리조트가 있는 바누아 레부 Vanua Levu 섬에서 폭포랑 인근 마을 방문이 이번 피지 관광의 전부. 그리고 남은 시간은 그냥 리조트에서 스노클링과 다이빙을 하며 데굴데굴 잉여로운 시간을 보냈다. 이런 여유로운 여행은 정말 처음~
어쨌든 그래서 이 나라를 구석구석 제대로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다시 태평양을 여행할 이유가 조금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 어차피 메인 섬 두개가 엄청 커서 열흘내 다 보지도 못했겠더라. 

 

니모들이 좋아하는 이런 종류의 연산호도 피지에서는 핑크 (가운데 니모 있음)


그나저나 피지는 핑크, 보라색 연산호가 많아서 바닷속이 여성스러운 것이 엄청 러블리 했다. 워낙 뉴 칼레도니아의 다이빙이 미친 시야에서 각종 대물들을 떼거지로 선사하며 내 눈높이를 높여놓는 바람에 피지는 큰 기대 없었는데, 뜻밖의 눈호강이었다는. 그 외에  불샤크, 타이거샤크도 볼 수 있는 상어 다이빙도 유명한데, 기본 다이빙 가격이 너무 높아서 패스. 피지 물가는 별로 안비쌌는데, 다이빙은 왜 이렇게 비싼건지. 
  
피지는 바누아투에 비해 마을들이 훨씬 정돈이 되어 있고, 비교적 현대적인 편이며 (물론 많이 낙후된 지역도 있었지만), 호주쪽에서 프로모션을 많이 해서 저렴한 항공권과 리조트도 자주 나온다. 리조트도 무난한 가격대부터 초호화까지 다양하며, 바닷속 예쁘고, 정글 예쁘고, 편의 시설도 괜찮으며, 결정적으로 다른 태평양 섬에 비해 물가 비싸지 않았다. 오래전 부터 휴양지로 개발되어 전체적으로 여행 시스템이 잘 되어있더라. 물론 그래서 크게 임팩트는 없었지만 어떤 취향을 가졌던지간에 부담없이 다녀올만 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10. 사모아 한달살기 : 내가 아는 이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여긴 1주 정도면 딱 좋았을 곳이었다.
주요 섬이 두개인데, 크기가 워낙 작아서 천천히 구경하며 돈다고 해도 각 섬당 인심좋게 3일이면 충분했다. 섬 두개를 다 본다면 넉넉 잡아 일주일이면 구석구석 다 보는 그런 곳.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 곳은 다름아닌 숙소 수영장, 공용인데 사람이 없어서 매일 전용처럼 즐겼다 ^^;
팔로로 딥 Palolo Deep 이라는 해양 보호 구역인데, 해변가 나무에 이런 그네가 많이 매달려 있더라. 갈 때마다 아무도 없어서 철딱서니는 잠시 던져두고 신나게 전세 그네중 ^^
우리집에 사는 인어. 오이군은 바누아투에서 부터 매일 수영으로 잠수 실력을 늘려가더니 팔로로 딥에서 레알 프리다이버로 자체 거듭났다. 내려가는 깊이도 깊이지만 잠수 시간이 비약적으로 늘었다는


그러나 우리가 사모아에서의 한달은 길다고 느꼈던 이유는 섬이 너무 작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돌아다니기 보다는 집앞의 풍경을 즐기는 것이 우리 여행 컨셉이라서 섬이 작은 것은 크게 상관이 없었다. 사모아가 힘들게 느껴졌던 이유는 바로 슈퍼마켓 때문.

 

가끔 집 근처 구멍가게에서 사모아 가정식을 판매했다. 땅속 오븐에 구운 브레드 플룻(빵과일? 구우면 빵맛이 나는 열매, 약 천 오백원)과 토란 잎에 생선이나 고기 등을 싸서 코코넛 크림을 넣고, 코코넛 쉘에 얹어 구운 음식(이름 모름, 약 2-3천원), 음식점에비해 저렴한 편이다


이곳에서는 신선한 식재료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슈퍼 크기는 엄청 큰데, 막상 들어가보면 우리가 아는 신선한 식재료는 거의 없거나 수입산이라 브로콜리 한통에 막 1만 5천원, 파프리카 하나에 1만원씩 팔더라. 배탈쟁이 오이군은 아침에 요거트를 꼭 먹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4-5천원 가량 하는 대형 요거트 한통이 여기서는 무려 2만원. 게다가 유제품이 맨날 있는 것도 아니다. 뉴질랜드에서 배들어 오는 날부터 약 일주일간 슈퍼마켓에서 볼 수 있다는. 

그렇다고 현지인이 주로 먹는 야채를 다 파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제일 많이 먹는 타로잎은 집집마다 기르기 때문에 수퍼마켓이나 시장에서 아예 팔지를 않는다. 고기도 그들은 집 마당에 닭과 돼지를 풀어 키워 잡아 먹기 때문에 수퍼마켓에는 질이 그저 그런 수입 양고기와 소세지 등을 팔았다. 질이 괜찮은 소, 돼지 고기는 상당히 비싸더라는. 수퍼마켓에 들어서면 대부분의 공간을 메우고 있는 것들은 전부 장기보존 냉동식물과 인스턴트 식품으로 그들의 비만율이 왜 세계 10위권 안쪽인지 이해가 가는 풍경이 펼쳐진다. 기본적으로 많이 먹는 문화라지만 이 가득 쌓인 인스턴트 식품들이 한자리 차지 함이 분명할듯...

시장이 있긴 있는데, 대부분의 품목이 과일. 아침 시장엔 신선한 생선을 파는데, 오전 9시에 문을 닫고, 무엇보다 숙소에서 너무 멀었다. 집에 냉장고도 작아서 많이 사다 놓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매일 외식할 만큼 물가가 싸지도 않다. 한끼에 구멍가게같은 음식점이나 시장에서 저렴한 것을 먹어도 보통  1-1.5만원 선인데다가 튀김음식이 주메뉴. (ㅠ_ㅠ 누구는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던데, 나는 돈까쓰 같은 튀김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파스타나 스테이크 같은건 여기도 2-3만원씩 해서 식사는 대부분 집에서 해결 했는데, 한달동안 타로(대형 토란)와 브래드 플룻(구우면 빵 맛이 나는 열매), 플랜틴 바나나(딱딱해서 감자처럼 요리해 먹는 초록 바나나), 코코넛, 쌀밥, 맛없는 냉동 고기, 그린 파파야 샐러드 뭐 이런 것만 먹다보니 이거...힘들더라...

단, 가끔 마을 근처를 지나다 보면 주민들이 집에서 닭이나 돼지 바베큐를 만들어 밥이랑 도시락처럼 싸서 팔 때가 있다. 요런거 눈에 띄면 꼭 사먹도록 하자. 가격도 5천원 정도로 훨씬 저렴하며 맛도 좋다. 근데, 수저는 안줄때가 많으니 개인 수저 한셋트 있으면 편리하다는 ^^;

 

럭셔리 리조트도 몇 개 있는데, 리조트내 음식점은 2만 5천원~5만원 정도. 태평양 섬들이 동남아에 비해 시설이 좋은 것도 아니면서 가격은 훨씬 비싼편이다


섬 자체는 평화롭고 아기자기 했다. 바누아투같이 파격적인 아름다움까지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안정된 느낌의 온화한 곳이었다. 집집마다 자기 집 주변을 엄청나게 깨끗하게 청소해 놓고, 예쁘게 꽃과 나무를 심어놔서 (안그러면 마을 커뮤니티에서 벌금을 문다고) 차타고 한바퀴 돌며 구경하기 좋다. 여행자 말고 거주하는 외국인도 거의 없다보니 위화감도 덜하고, 전체적으로 시국이 안정된 느낌. 들개가 좀 많았지만 대부분 온순하고(사람을 개! 좋아함, 특히 외국인을), 마을 길도 뉴 칼레도니아에 비해 더 안전한 인상을 받았다. (그래도 너무 늦은 밤엔 혼자 나다니지 말라고 함, 동네 사람이...)

 

동굴과 이어진 민물 연못. 동굴안에 남자 팔뚝보다 큰 장어가 돌아다녀서 아나콘다 나온 줄 알고 기절할 뻔...
최연소 파어어 워리어! 사모아도 하와이처럼 여자들의 엉덩이 흔드는 춤과 남자들의 불쇼가 전통 공연인데, 요즘에는 어린이들도 배운다고 한다
사람을 개 좋아하는 집없는 개들. 목욕도 안하는 애들이 엄청 살갑게 부비적 부비적...귀엽지만 가렵...

 

여기도 바누아투나 피지처럼 옛날에는 부족이라 불렀을 마을단위로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전통을 매우 중시하고, 공동체 룰이 좀 더 엄격하며, 보수적이었다. 특히 나라 전체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일요일은 전국민이 하얀 옷을 입고, 교회로 간다. 교회에 안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분위기로 어떤 마을은 오후 기도 시간엔 통행도 금지 되더라. 게다가 마을에서 관리하는 해변에는 일요일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사모아는 모든 땅이 사유지 인데, 대부분의 해변도 마을에서 관리하므로 유료다. (입장료 5달러) 근데, 일요일은 모든 사람들이 교회에 가므로 돈받는 사람이 없어서 해변도 문을 닫는다고 ㅠ_ㅠ 멋모르고 주말에 렌터카타고 섬 남쪽 구경을 갔던 우리는 예쁜 해변 앞에 서서 아쉬움에 눈물만 뚝뚝흘려야 했다. -_-;;

 

이 멋진 해변에 일요일이라서 들어갈 수 없었다 ㅠ_ㅠ - 자이언트 클램 생츄어리 Giant Clam Sanctuary

 

아, 그리고 여기부터는 폴리네시아 문화권이라 사람들 생김새가 다르다. 뉴 칼레도니아, 바누아투, 피지, 파푸아 뉴기니 등은 멜라네시아 문화권이라 사람들이 새까맣고, 머리도 뽀글뽀글 하며, 언어도 떼굴떼굴 굴러가는 느낌인데, 여기는 햇살에 잘 그을린 동양인 같이 생겼다. 하와이 원주민, 사모아, 타히티 원주민, 뉴질랜드의 마우이, 이스터 섬의 라파누이 들은 원래 아아주 옛날에 대만 인근에서 배타고 흘러들어간 민족으로 폴리네시아 문화를 형성했고, 하나의 언어를 썼다고 한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살며 언어가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듣다보면 서로 대략 알아 듣는다고. 온몸을 휘감는 문신을 하는 것도 같고, 설화도 공유하며, 엄청나게 먹는 문화도 똑같아서 이들은 대부분 세계 비만순위 1, 2, 3위를 다툰다. ^^; 

 

사모아의 하이라이트 토 수아 To Sua. 돌아보지 말라! 라고들 하던데, 이상하게 내려갈 때 꼭 한번 돌아 보고 싶더라...그러고는 급 후회
다시 돌아온 월리를 찾아라! 사다리 위에 감자 있음. 내려가는 길만 후덜덜 한것이 아니라 물에 들어가니 조류가 쎄서 중간에 설치된 밧줄을 잡고 있어야 했다

 

사실 사모아는 유명한 토 수아 To Sua의 사진 한장에 홀딱 반해 묻지마 여행지로 끼워 넣은 장소였는데, 이미 바누아투에서 더 멋진 블루 홀을 여러개 보고 와서 토 수아도 사실 임팩트가 좀 약했다. 그냥 내려가는 사다리만 후덜덜 했다는. 

전체적으로 이 나라가 뭐가 나빴던 건 아닌데, 우리는 크게 감명을 받지는 못했다. 해변도, 블루 홀도, 폭포도, 화산 지대(제주도랑 아아주 비슷)도, 블로우 홀도 전부 어딘가 이미 본 듯하고, 규모나 풍경이 무난한 정도였기 때문. 개인적으로는 태평양 섬 중에서 여긴 그냥 건너 뛰어도 될 뻔 했다 싶은 곳이다.

그리고 특히 다이빙은 여기선 구태여 하지 않아도 된다 ^^;  
다이빙 자체가 활성화 되어 있지 않아 스폿 자체도 많이 없을 뿐더러 시야도 보통 별로고, 무엇보다 볼것이 정말 없었다. 다이빙 스폿이 얼마나 없냐면 다이빙 잘 하는 사람이 와서 스폿 개발해주면 그 스폿에 원하는 이름 붙여주겠다는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 바닷속도 정말 싱거웠다. 차라리 한강에서 했더라면 다양한 쓰레기라도 보면서 신기하지 않았을까 싶더라 ^^; 가이드도 워낙 보여 줄 것이 없으니까 여기 저기 헤짚고 다니다가 작은 손톱만한 물고기를 가르키며 귀엽지? 하고, 멋적게 웃는데, 그런 가이드가 더 웃겨서 물속에서 뽀글뽀글 육성으로 웃었다는...나중에 나와서 오이군이 찍은 영상을 봤는데, 심심해서 자기 손찍고 발찍고...^^;;

 

 

11. 뉴질랜드 북섬 3개월 : 추억속으로의 여행

열대 섬들의 끝없는 여름속에서 네달을 보냈더니 진이 빠져버렸다. 어릴적엔 열대 지방에 사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내가 나이를 먹은 걸까, 태평양 모든 열대 섬에서 출몰했던 바퀴벌레가 내 에너지를 다 뺏어 간걸까. 
사실 더운걸 좋아하긴 하는데, 여름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니 은근히 찬바람이 그립더라. 역시 나는 짜장면도 먹고, 짬뽕도 먹어야 하는 녀자. 그래서 쌀쌀한 뉴질랜드로 피신하기로 했다. 원래 쌀쌀한 곳 좋아하는 오이군이 두손 들고 환영했음은 말할 것도 없고.

 

14년만에 다시 찾은 양들의 나라 뉴질랜드. 예전엔 진짜 끝도 없이 온 들판이 양이었는데, 이제 모직의 수요가 줄어서 많은 양농장들이 소농장으로 전환했다고 한다
어제까지만해도 후덥지근한 날씨와 싸웠는데, 오늘은 서늘한 바람에 옷깃을 여며야 하다니. 지구가 참 넓고 넓구나!


뉴질랜드는 감자와 오이가 아직 사랑과 우정사이에서 맴돌때 함께 여행했던 첫번째 장소라 우리에겐 매우 의미 있는 곳이다. 게다가 나에게는 첫 캠핑카 여행지이자 처음으로 친구들과 목적지 없이 한달간 떠돌아본 곳이라서 내 평생 가장 로맨틱한 나라로 기억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뉴질랜드로 돌아 간다니 은근히 두근두근.

 

안개낀 캠핑장 앞. 14년 전 로맨틱한 분위기 재현 중인 결혼 12년차 부부
웰컴 투 아워 홈! 영화 반지의 제왕을 찍었던 호빗 마을에서 한달살기를 할 수 있었더라면 완벽했을텐데 ^^; 실제로는 집안이 너무 작을 뿐만 아니라 촬영용 세트장이라 집안에 아무것도 없다 - 호비튼 Hobbiton


장소는, 14년 전이기는 하지만 그때 남섬을 한달간 돌았으니 이번엔 북섬에서만 세달을 보내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오이군이 회사랑 화상미팅하기 힘드니 인터넷 좀 잘되는 곳으로 가자고 해서 수도인 오클랜드로 결정. 

 

오클랜드의 어떤 오후 - 황 비치 Sulphur Beach

 

오클랜드는 수도라고 해도 서울에 비하면 매우 작은 도시지만 계속 작은 섬나라만 돌았더니 첫인상이 굉장히 현대적이며 거대하게 느껴졌다. ^^;

도착하자마자 사모아의 한을 풀기 위해 일단 신선한 야채로 실컷 뱃속을 채우고, 한식집도 많아서 김치찌개에 막걸리까지 걸치고 나니 곰에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소확행을 제대로 경험. 사실 나는 육식 주의자인데, 야채를 아예 못먹으니 이게 또 은근 그립더라는.

 

통가릴로 화산 국립공원. 반지의 제왕에서 모르도르로 나왔던 곳으로 활화산이라 김이 모락모락 난다는데, 비오고 안개껴서 암것도 안보였다. 그냥 폭포나 구경... - 타라나키 폭포 Taranaki Falls, Tongariro National Park
로토루아 화산지대의 얼굴 마담 와이 오 타푸 Wai-O-Tapu, 김이 모락모락 나는 초록 연못과 주황색 침전물들의 하모니가 인상적이다
흐린 기억속의 그대, 뜨거운 온천수가 흘러 강과 만나는 곳 - 오라케이 코라코 온천공원 Orakei Korako Geothermal Park & Cave


오클랜드에서도 태즈매니아와 마찬가지로 총 3개월을 머물렀지만 주중엔 재택근무일 지언정 평범하게 일을 하므로 주말에만 인근지역 구경을 다녔다. 그리고, 2주는 캠핑카를 빌려 옛 추억을 곱씹으며 이곳 저곳을 구경했는데, 음...전체적인 소감은 북섬도 명불허전 뉴질랜드 답게 광활한 대자연이 멋지긴 하지만 남섬에 비해 5% 부족한 느낌? 뉴질랜드 남북섬을 다 둘러볼 시간이 없다면 그냥 남섬만 가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북섬도 엄청 예쁘긴 한데, 이미 남섬을 보고 나서인지 계속 어디선가 본 듯하더라. 거기에 북쪽이라 따뜻하니 빙하와 빙하 호수가 없고, 들판도 남섬에 비해 차분했다. (나는 예쁘장한 것보다 거친 느낌의 자연을 좋아한다. ^^;)    

곳곳에 있는 화산지대가 신기하긴 한데, 이것 역시 일본에서 다양한 화산지대를 많이 봤다면 크게 놀랄 정도는 아니다. 심지어 이름마저 비슷하더라. 그러니까 일본에는 무슨 지고쿠(=지옥) 하는 지명이 많은데, 여기는 무슨 헬(=지옥)하는 곳이 많더라. (전세계 사람들이 생각하는 지옥의 모습은 다 비슷한듯?) 게다가 오이군은 여기는 온천 계란을 해먹을 수 없어서 뭔가 허전하다고 ^^; (일본에는 온천수에 바구니를 담궈 삶은 계란을 팔거나 직접 가져온 계란을 쪼그리고 앉아서 온천수에 삶아 먹을 수 있는 곳들이 종종 있다. 이게 되게 재밌었는지 오이군에게 온천지역=삶은계란을 의미함 ) 

아열대 식생으로 뒤덮힌 숲이 좀 특이하긴 한데, 역시 막 뇌리에 박힐만큼은 아니었고, 야생동물을 좋아하는 우리는 길에 동물이 별로 없는 것도 아쉬웠다. 

 

뉴질랜드 북섬의 서쪽 해변은 전부 이런 검은 모래로 뒤덮혀 있다. 화산재 같아 보여서 뜨거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칼바람에 귀가 떨어질 것 같았다는...
동굴 계곡 위로 일렁이는 글로우 웜의 반영. 요넘들이 신기했다. 서늘하고, 물줄기가 있는 곳에 사는 날파리 유충

 

대신 북섬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것은 목소리가 예쁜 투이 Tui를 비롯해 앵무새, 키위새 등의 다양한 고유종의 새들과 서쪽 해변의 끝없는 검은 모래사장이었다. 가끔 해변을 파면 따뜻한 물이 나오기도 하는데, 제주도의 삼양해변 보다 색이 더 검고 규모가 비교 불가하게 방대하다.

아, 그리고, 글로우 웜도 있다. 물가 암벽틈이나 물이 흐르는 동굴에 사는 벌레인데, 이게 반딧불처럼 빛을 낸다. 반디는 약간 연두빛 도는 불빛이라면, 이건 은근한 하늘빛 도는 빛깔로 주변에 진주 목걸이 같은 줄을 쳐서 직접 보면 동굴안에 은하수가 지나는 듯 신비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가까이 보진 말자. 징그럽다. 반투명하고, 긴 벌레라서...^^; ) 이 벌레를 나는 여기서 처음 봤지만 사실 뉴질랜드 남북섬에 모두 서식하고, 호주 동남부 일부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12. 타히티 10일 : 인생에 한번쯤은 이런 날도

여기도 피지처럼 온전한 휴가로 오게 되었다.
원래는 한달살기 하면서 일도 할려고 했는데, 이동네도 대왕 바퀴벌레가 나오고, 일을 할 만큼 인터넷이 잘 안된다길래 마음을 접고 그냥 휴가로 보내기로.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는 타히티의 압도적인 물빛과 산세,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는 데가 사실 이나라 저나라 많은데, 어쨌든 여기는 그 별명에 전혀 불만이 안생긴다 - 보라 보라 섬 Bora bora


흔히 타히티로 부르지만 사실 타히티는 국제공항이 있는 섬 하나의 이름이고, 118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이 지역의 정식 명칭은 프렌치 폴리네시아 French Polynesia다. 뉴 칼레도니아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해외영토라 공식적으로는 프랑스어를 쓰는데, 수도에는 역시나 파리 억양을 가진 프랑스 사람이 많았다. 수도(주도)인 파페에테 Papéete는 프랑스 변두리 지역같았고, 나름 작은 도시 같은 느낌이 들더라. 그러나 타히티의 매력은 당연히 도시가 아니라 자연에 있다. 수도(주도)를 벗어나면 원주민들의 밀도가 부쩍 늘어나고, 그들의 언어가 훨씬 많이 들리기 시작한다. (원주민어는 총 9개가 있다고)

 

날이 흐려서, 날이 맑아서 다 좋았다던 도깨비의 말이 떠올랐다. 부슬비 내리고 안개가 꼈는데도 진심 끝내주게 멋지더라 - 모레아 섬 Mo'orea
모레아나 보라보라에는 사방에 널린게 색가오리(스팅레이 Sting ray)다. 애니메이션 모아나의 할머니가 왜 가오리들과 교감하고 물에서 같이 춤을 췄는지 이해가 가더라. 그리고 그녀는 거대한 쥐가오리(만타레이 Manta ray)로 환생한다 - 모레아 섬 Mo'orea

 

우리는 국제공항이 있는 타히티 Tahiti 섬과 그 옆의 모레아 Mo'orea 섬, 제일 유명한 보라보라 Borabora 섬에 갔는데, 사실 모레아에서 한달살기를 해도 될 뻔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인터넷 사정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을 뿐더러 (당연히 도시 같진 않지만), 바퀴벌레도 생각보다 없었으며, 신선한 식재료를 충분히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난한 가격대의 에어비앤비 숙소도 꽤 많이 있었다. 어쩌다 수도인 파페에테에 갈 일이 생긴다 해도 2만 5천원짜리 페리로 한시간 밖에 안걸리기 때문에 그렇게 큰 부담은 아니다. (다른 섬들은 비행기 타고 가야해서 훨씬 비싸다.) 

단, 모레아는 수중환경이 좋다고 워낙 칭찬들을 해서 기대가 컸는데, 나는 보라보라의 수중환경이 훨씬 마음에 들더라. 대신 모레아는 영화 세트장 같은 산세가 단연 압도적이었다.

※ 영어로 스팅레이(=쏘는 가오리)라 불리는 색가오리는 몸통과 꼬리가 연결되는 부분에 화살처럼 날릴 수 있는 독침이 있어서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성격은 매우 온순한 어종입니다. 독침을 쏘는 건 무섭거나 놀랬거나 모래 덮고 쉬고 있는데, 사람한테 밟혔을 경우입니다. 타히티의 가오리들은 사람에게 익숙해서 강아지같이 따라다닐 뿐 아니라 손에 날생선 조각을 들고 있으면 달라고 부비부비 애교를 떨기도 합니다. (엄청 미끈미끈 -_-;) 이빨이 없어서 물지도 않으니 먼저 다가오는 가오리들은 머리 부분을 쓰다듬어 줘도 괜찮지만 싫다고 도망가는데 붙잡고 놓아주지 않거나 물 밖으로 들어 올리거나 물 아래서 타고 다니면 놀란 가오리가 독침을 쏴버릴 수 있으니 주의합니다. 독 자체는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정도지만 큰 가오리일 경우 날리는 침이 크고, 그게 사람의 몸통 부위, 특히 심장 부위에 박힐 경우 매우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색가오리와 함께 블랙팁 상어도 엄청나게 많다. 배타고 가다가 가이드가 빵 한조각을 던졌더니 우르르 몰려든 상어 떼로 난장판이 된 수면
그리고는 가이드가 그 위로 뛰어 들며 여기서 스노클링을 하라고... 내가 아무리 무모하다지만 이래도 되는 건가요? ^^; (근데, 뒤따라 뛰어듬. 약간 뻥 좀 섞어서 물반 상어반) - 보라보라 섬 Borabora

 

그리고 유명한 보라보라는...

유명세 때문에 상당히 기대했는데...이거 완전....

기대 이상이었다. ^^;

사실 보라보라에 가면서 여행 쫌 해 봤다고 시선이 많이 시니컬 해진 우리는 유명한 이곳을 잔뜩 비평할 준비를 마음속으로 하고 있었던 듯 하다. 근데, 도착날 태풍이 온 듯 비바람이 몰아 쳤음에도 오잉? 이거...이쁘다? 비가 오는데도 이럴 수가 있는 건가. 그리고 다음날 해가 뜨고부터는 도무지 찔러볼래야 흠잡을 곳 없이 압도적이었던 아름다움에 완전히 굴복하고 말았다. ^^; 

 

리조트에서 무료로 대여해주는 타히티 전통의상

 

흐린 날에도 바다 아래 불이 켜진 듯 환하게 빛나던 멋진 물빛과 수백마리의 매 가오리(이글레이 Eagle ray)에 둘러 싸였던 스쿠버 다이빙, 역시 수백마리의 블랙 팁 상어한테 둘러 싸였던 스노클링 그리고 방갈로 앞에 강아지처럼 왔다갔다하는 색가오리(스팅레이 Sting ray)들까지 온통 신비로움 그 자체. 그림같은 산세는 또 어떻고. 게다가 난생 처음 가본 레알 수상 방갈로는 가격이 비수기인데도 겨우 4일에 한달치 생활비를 다 깎아 먹었지만 정말 후회없는 선택이었다. 뉴 칼레도니아는 좋아도 물가가 너무 비싸서 다시 가지는 못하겠다 싶었는데, 여기는 거기보다 물가가 한술 더 떴지만 어떻게든 돈벌어서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

 

아아아아...나 좀 저기다가 다시 가져다 놔 주라... - 인터콘티넨탈 리조트 보라보라
물색 실화? 보는 순간 오이군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불나방(물나방?) 처럼 뛰어들어 버림


그러나 보라보라는 작은 현지인 마을을 빼고는 오직 리조트들 밖에 없어서 한달살기를 할 곳은 아니었다. 하고 싶다면 모레아 추천. 가격이 양호한 에어비앤비도 많이 있고, 물건상태가 양호한 슈퍼마켓과 작지만 아기자기한 카페, 레스토랑도 몇개 있으며 무엇보다도 수도가 있는 타히티 섬에 쉽게 갈 수 있으면서도 타히티 섬보다 자연이 월등히 아름답다. 이 사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사모아에서 1주일만 휴가로 보내고 모레아에서 한달살기를 하는 건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3. 이스터 섬 7일 : 외계인의 흔적을 찾아서

이스터 섬은 하마터면 못갈 뻔 했다. 
위치가 타히티와 칠레 본토의 중간쯤에 있는데, 들어가는 비행기가 칠레에서만 있다고 해서 일치감치 포기해 버렸던 것. 그런데, 뉴 칼레도니아에서 다이빙하다 만난 총각이 일주일에 한번씩 타히티에서도 들어가는 비행기가 있다는 꿀정보를 흘려주는게 아닌가! 덕분에 인생 여행지에 예정보다 빨리 가 볼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이래서 사람들과의 교류 및 정보 교환이 중요하다. ^^; 

그나저나 그 꿀정보를 흘린 총각은 남극기지에서 6개월간 알바 뛰고 집에 가는 길에 따듯한 곳에서 몸 좀 풀고 가는 중이라고 한다...ㄷㄷㄷ 남극이라니, 부러워라! 돈내고도 못가는 남극에 돈을 받고 있었다니! 남극의 귀요미 펭귄들을 질리도록 봤음은 물론이고 대륙으로 돌아오는 중 배위에서 오로라를 보고 있는데, 그 아래에 갑자기 고래가 물보라를 흩뿌리며 뛰어 올랐다고 한다. 머리위로 휙휙 지나가는 오로라는 남북위 60도 부근에서 가장 잘 보이는데, 남반구에는 북반구와 달리 위도 60도 부근에 대륙이 없다. 따라서 제대로 볼려면 배위에서 보는 수 밖에 없건만, 이 친구는 바로 그걸 봤다는 거다. 그것도 고래와 함께. 투어도 잘 없는 그런 진풍경을 거저 봤다니 진심 부럽.

 

소나기가 훑고 지나가자 오롱고 화산 분화구 호수 안쪽으로 무지개가 드리워졌다. 이세상이 아닌 듯한 풍경 - Orongo
방목하는 말이 많다. 여기도 화산섬이다보니 제주도가 많이 떠오르는데, 작은 마을 하나를 빼고는 섬 전체에 말만 산다는게 다른 점


이스터섬은 차암~~~~ 평화로운 곳이었다.
이스터섬은 현재 칠레령인데, 우리는 남미쪽으로 들어갈 게 아니라 타히티로 다시 나왔다가 미국으로 들어갈거라 비행기일정에 맞춰 일주일을 꼬박 이 섬에서 보내게 되었다. 근데, 섬이 워낙 작아서 일주일간 섬을 돌고, 돌고 또 돌고... ^^;; 이틀이면 다보는 작은 섬인데, 인근 부속 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을이 큰것도 아니고...정말 나같이 사진 중독자가 아니라면 힐링 말고는 할게 없더라 ^^;; 덕분에 나는 사진을 질리도록 찍었고, 오이군과 함께 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게 되었다. 모든 모아이 방문은 기본이고, 다이빙, 스노클링, 승마, 화산 트레킹, 별 관측, 각종 동굴 트레킹, 들판 트레킹 등등을 했는데도 시간이 남아 돌아서 좋았던 곳은 두번씩 다녀오는 호사를 부리기도 했다. (시간부자) 그래도 결국 시간이 남아서 하루는 마을을 배회하다 그냥 해변에 앉아 멍때리기로 보냈다는. ^^;;

 

동굴도 가고
트레킹도 가고
말도 타고
다이빙도 했는데
시간이 남아서 동굴에 또 가고
트레킹도 또 가고 ^^;


이스터 섬은 넉넉하게 3-4일 정도로 일정을 잡으면 좋을 것 같다. 매우 느긋하게 트레킹+렌터카로 돌아도 그정도면 충분히 본다. 물론 아무생각 없이 힐링이 필요하다면 길게 있어도 상관 없지만 말이다. 물가는 칠레 본토 보다는 비싸지만 한국보다 조금 밑도는 수준이고, 미니 사이즈 마을이지만 나름 예쁜 카페도 몇개 있으며, 치안도 좋다. 섬이 워낙 작고 타지로 배가 다니는 것도 아닌데다가, 비행기도 자주 없어서 나쁜짓 해봐야 딱히 도망갈 데도 없을 듯.

 

점심 먹고 모아이 보면서 휴식중
저녁 먹기전 노을 감상하며 휴식중
저녁 먹은 후 모아이 보면서 휴식 중 (feat. 동네 개)

 

 

다음 편에서는 태평양 섬나라 호핑투어가 끝나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갑니다.

미서부에서 서부영화 따라잡기와 감자의 로망, 바하마에서 깜찍이 돼지들과 바다 수영하기 그리고 오이군의 로망, 갈라파고스 다이빙 이야기 등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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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용에 관하여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으로 사진 이용문의를 많이들 주시는데요, 사진 좋게 봐주시고, 관심가셔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토종감자 수입오이의 사진들은 스톡업체를 통해 정식판매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 SNS로 출처를 밝히신다고 해도 구입하지 않고, 임의로 가져가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이는 상업적, 비상업적 모두에 해당합니다. 구입을 원하시면 luna@lucki.ch 로 연락주세요 ^^

이렇게 말씀드려도 간혹 사진이 도용되는 경우가 있는데, 구입자와 구입회사 목록은 간단하게 조회됩니다. 적발시 법적으로 강력하게 대응하겠습니다.

서로의 저작물이 존중받는 공정한 문화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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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현아2019.11.08 15:51

    바다 사진들에 마음이 이미 비행기ㅜㅜ 저만 당할 수 없으니 남편에게 공유해야겠어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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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vicon of https://sameworld.tistory.com 차포2019.11.09 11:13 신고

    전 이제 어디 가는거 다아 구찮습니다

    집밥이 최곤거처럼 장돌뱅이 노매드 라이프는 졸업을 해야지 싶네요.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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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vicon of https://www.lucki.kr 토종감자2019.11.09 17:38 신고

      ㅋㅋ 그러게요. 저도 평생 떠돌지 싶었는데, 귀찮아 지는 때가 오네요. 그러다 또 좋은 곳에 가면 우워어 지구를 다 돌아야지 했다가 피곤하면 이제 정착해야겠다 했다가 왔다 갔다 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이정도면 됐다 싶은 때가 올 것 같아요 😆 뭐든 다 행복하자고 하는건데 무리할 필요 없죠. 특히 여행은요^^
      차포님도 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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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vicon of https://sameworld.tistory.com 차포2019.11.10 14:04 신고

      방금 저도 5ds하나 싸게 들였습니다. 아직 이 바디 쓰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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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vicon of https://www.lucki.kr 토종감자2019.11.12 21:40 신고

      네네, 오막포 나오고 잠시 흔들렸지만 저는 일하는데도 5Ds면 충분해서 그냥 말았습니다. 화소도 높아서 대형인쇄할 때도 좋고, 익숙해서 다 좋아요. 무거운것도 뭐 이제 그럭저럭 익숙 ㅋㅋ
      근데, 싸게 들이셨다는 건 부럽네요. 저는 나오고 얼마 안되서 사가지고 비싸게 들였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