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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 평범해서 소중한 일상
디지털 노마드 토종감자 수입오이 4년간 여행일지 ①
2019. 10. 3. 00:15

잠수 끝!

계획 보다 너무 길어진 블로그 잠수. 넘나 길어서 익사 하는 줄 알았다.
몰랐는데, 나는 천상 블로거 였던가 보다. 글을 못쓰는 그 동안 얼마나 답답하던지. 손가락이 근질 근질, 입이 근질 근질.   
집 없이 떠돌며 여행하던 도중 스위스 가이드북 출판을 계약하게 되서 책만 바짝 쓰고, 블로그는 잠시 내려놓자 했던 건데, 그 바짝이 3년이 걸릴 줄이야. -_-;  

3년만에 블로그질을 본격 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나름 새마음 새각오로 블로그 스킨도 리뉴얼했다.
그간 티스토리에서 감사하게도 넘나 예쁜 스킨도 만들어 놓고, 웹개발자 작업하기 좋도록 뒷 쪽에 손도 좀 봐 놓았으며, 에디터 리뉴얼까지 해 놓는 등 열일해 놓아서 더 할맛이 났다.   
요 새스킨은 티스토리에서 최근 공개한 반응형 기본 스킨 몇개에서 원하는 요소만 짜집기 하여 기본틀을 잡고, 아이콘이랑 색상, 폰트 정도만 바꾼건데, 딱 내가 원하던 그 스타일로 구현이 되서 엄청 흐믓흐믓. 물론 내가 아무리 디자인을 열심히 구상한들 웹개발자인 오이군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실현이 불가능 했을 일이지만. 평소 이 사람은 이제 밥먹는 것과 잠자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나 싶을 정도로 밥과 잠에 집착해서 삼식이(삼시 세끼 집에서 먹는 남편)라고 놀리는데, 가끔 이렇게 웹페이지 관련 부탁을 하면 돌연 스마트 해지면서 번개같이 뚝딱 해결해서 스윽 던져 준다. 그래도 이럴때 멋져보이는 걸 보면 아직은 내눈에 콩깍지가 남아 있는 듯 ^^;;

 

고마워요, 웹마스터 삼식님!


일 잘하고, 밥 잘먹는 우리 삼식이 오이군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면서 잠수탄 동안 감자 오이의 근황 정리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Part 1. 스위스댁과 키서방 전세빼고 전국일주

2015년 10월 전세를 빼고 길 위로 나섰다.
처음 2년은 국내여행 기간으로 그동안 살아보고 싶었던 대한민국의 이곳 저곳에서 2-3개월씩 머물며 전국일주를 했다. 안동으로 시작으로, 원주, 통영에 각 3개월씩 머물며 강원도와 경상 남북도를 구석구석 구경했고, 감질나게 구경 했던 제주를 동서남북 실컷 보겠다며 귀덕, 서귀포, 협재, 김녕, 표선, 월령 에서 각 1-2개월씩 총 10달을 제주에서 보냈다.

 

좋쿠나, 우리나라~

 

이렇게 다른 도시들에서 살아보니 그동안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대한민국 우리나라를 나는 사실 1/10도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동네마다 분위기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사람들 성향도 다르고, 자연환경도 엄청 다르고.
서울에서 나고 자라 대도시로만 머릿속에 틀이 밖힌 우리나라의 다양한 면모를 찬찬히 둘러 볼 수 있었어 참 좋았던 시간이었다. 이제서야 나의 나라와 진짜로 친해진 느낌.

사실 여기까지는 블로그에 조금씩 써왔던 내용이라 써프라이즈는 아니고, 그간 암흑에 가려져있던(?) 세계일주 여행은 바로 월드 아일랜드 호핑투어다.

 


 

Part 2. 월드 아일랜드 호핑 투어

섬.
섬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 오묘한 설레임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리라.
휴가, 고립, 일탈, 도피, 시간, 독립, 힐링, 폐쇄, 자유.
섬이라는 이름 뒤에 나는 이런 단어가 함께 떠오른다.

 

남해 물빛의 끝판왕, 비진도
걸어야 그 진가를 볼 수 있는 연화도

 

처음 세계의 섬을 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통영에 머무를 때였다. 통영이라는 작은 도시의 매력도 컸지만 내가 통영에 푸욱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근처의 다양한 섬들 때문이었다. 가장 유명한 쿠크다스 섬 소매물도 부터 이순신 장군이 대전을 펼쳤던 한산도, 동남아 부럽지 않은 비진도, 남해의 숨은 보석 연화도, 동백이 붉게 물드는 지심도, 해물 라면이 끝내주는 만지도, 청순한 물빛의 연대도 등등 수많은 섬들이 각자의 아름다움을 뽑내며 나의 마음을 쏘옥 빼앗아 버렸다. 전부 우리나라인데도 섬이라는 지역적 특수성 때문에 자연환경이 독자적으로 발전했고, 섬마다 분위기가 오묘하게 달랐다. 우리나라 섬여행의 정점을 청산도에서 찍으며 나는 세계의 섬나라 여행도 꿈꾸게 되었다. 같은 나라에서도 이렇게 섬들은 분위기가 다른데, 각자 다른 인종이 다른 문화로 발전해 온 섬나라들은 얼마나 신기한 것들로 가득할까?

 

여기 우리나라 맞아? - 연대도
지중해 부럽지 않은 남해의 푸른 바다 - 연화도

 

말안해도 이미 아실, 매력덩어리 제주에서 10개월 머무르는 동안 그 마음은 더욱 확고해졌고,
그렇게 감자 오이의 월드 아일랜드 호핑투어가 시작되었다.

 

※ 아일랜드 호핑투어 Island Hopping tour는 이섬 저섬 메뚜기 처럼 점프해 다닌다는 뜻으로 보통 동남아 여행가면 많이 하는 배타고, 하루 종일 근처의 이섬 저섬 방문하는 여행을 말해요. 저희는 조금 더 넓은 단위로 섬나라들을 호핑하기로 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

 

1. 스위스 70일 : 취재여행

아일랜드 호핑투어를 한다더니 뜬금없이 웬 스위스. 

무슨 이야기에 이렇게 일관성이 없나. 
어쩔 수 없었다. 우리의 계획은 아일랜드 호핑투어였는데, 스위스 가이드북을 쓰기로 계약을 해버려서 일단 취재를 해야 했다. 물론 스위스는 굉~장히 느리게 변하는 나라이고, 특히 대부분의 볼거리는 변함없는 대자연인 관계로 스위스댁으로 살아온 14년간 동안 모은 정보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사진이 문제였다. 정보는 현지 업체들과 연락해서 최신으로 업데이트하면 되는데, 개인적으로 구경다니며 대략 찍었던 사진들로는 책을 만들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보통 매년 한달 정도 들어가는 시댁 방문을 두달 반으로 대폭 늘려 스위스 전국을 재방문 했다.  
놀러 다닐때와 달리 짧은 기간안에 전국 도시와 박물관, 볼거리, 음식점, 상점, 트레킹길까지 전부 재확인하느라 몸이 남아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그곳에 사는 동안 맨날 시골구석탱이라고 투덜거렸던 스위스의 온전한 아름다움을 재발견 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역시 이쁘긴 이쁘구나, 스위스가.'

 

한시간에 한대 있는 기차를 놓쳤다. 다음 촬영 가야하는데, 뾰족수가 없다. 이럴땐 낮잠이나... - 리기 쿨름
이 길은 남들도 갈만할까? 난 할만한데...트레킹 코스 난이도를 다시 체크해보느라 두달만에 40코스가 넘는 길을 걸었다. 근데 왜 살은 안빠져? - 필라투스 절벽위의 성당 가는 길


게다가 취재하는 두달동안 오이군과 떨어져 있다보니 (오이군은 내가 취재하러 다니는 동안 스위스에 있는 회사로 복귀해 있었음) 우리 삼식이 없는 여행이 얼마나 허전한지를 새삼 깨달았다. 
가끔 소시적 혼자 하던 배낭 여행의 낭만이 그립다는 소리를 하고는 했는데, 낭만은 딱 2주까지고, 혼자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이거 외롭더라. 그래, 역시 지지고 볶고 싸울 지언정 여행은 하나보다는 둘이 낫다. (나는 그렇다.)

 

취재하러 다녔던 두달동안 딱 한번 오이군이 주말에 내가 있는 곳으로 와 주었다. 간만에 보니 새삼 반갑고, 좋네 - 브리엔츠 호수
구름이 잔뜩 끼어서 촬영을 방해해도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무릉도원 ^^ - 브리엔츠 로트호른

 

 

2. 크로아티아 45일 : 사랑은 아무나 하나 촬영

크로아티아에 간 것은 순전히 일을 하기 위해서 였다. 

곧 있을 오이군 형님의 결혼식 때문에 독일에 가야했는데, 유럽지역은 전부 쉥겐조약으로 묶여 있어서 영국이랑 동유럽 몇개 빼고는 유럽 전체를 통틀어 6개월 이내에 90일을 초과해 머물 수가 없다. 그런데, 이미 스위스에서 70일을 소진해 버렸기 때문에 결혼식날까지 유럽에 있으면 90일을 넘기게 된 상황. 그렇다고 한국으로 가자니 비행기 값이 너무 비싸서 결국 결혼식때까지 쉥겐지역을 피해 비행기표 싸고, 물가도 조금 저렴한 곳에서 머무르자며 찾아낸 곳이 바로 크로아티아였던 것. 

 

조개팔이 소녀로 가장했던 아리아가 수레를 끌고 가며 미션을 수행했던 바로 그길

 

우리는 스피릿 Spilit 근처의 카스텔 고밀리카 Kaštel Gomilica 라는 곳에 머물렀다. 고밀리카 성은 굉장히 작은 마을이었지만 시간을 거슬러 간 듯한 풍경이 단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실 여기는 꼭 갈려고 갔던게 아니라 여름 성수기였기 때문에 적당히 숙소 값이 저렴하고, 유명 관광지인 스피릿과 트로기르 Trogir 의 중간에 있어서 성수기의 혼잡함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가게 된 곳이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여기가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 아리아가 여러 얼굴의 신 (Many-faced god, 한국에서는 뭐라 해석해서 부르는지 모름...-_-;)의 제자로 수련했던 브라보스라더라. 오오, 어쩐지, 물위에 있는 듯한 성이 뭔가 포스가 다르더라니! 

 

내 마음의 한조각을 가져간 비스 Vis 섬
트로기르의 어떤 집 앞. 영화 세트장 같이 생긴 이런 곳에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산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이곳에서는 주구장창일만 해서 책을 다 써버려야 했다. 그런데, 크로아티아라는 나라가 나의 취향저격이라는 것을 가기 전엔 미처 알지 못했던게 실수 였다. 매일 엉덩이가 들썩여서 도무지 집중이 안되더라. 게다가 마지막에는 예전에 TV 조선에서 방영했던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국제커플의 삶을 다룬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서 며칠간 촬영으로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니까 결론은 책을 거의 못썼다는 이야기.

 

※ 사랑은 아무나 하나 방송 촬영 뒷이야기가 궁금하시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카스텔 고밀리카의 별이 빛나는 바다

 

3. 독일 일주일 : 감동가득 결혼식

내 결혼식 다음으로 감동적인 결혼식이었다. ^^;

오이군 형님의 결혼식 말이다. 

사실 어떤 결혼식이, 그러니까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의 결실을 맺고, 평생 함께해온 부모 형제와 떨어져 새로운 가족을 이루게 되는 그 순간이 뭉클하지 않겠느냐만은 그들의 결혼식은 조금 더 달랐다. 방송에 이미 나가서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들은 동성커플이기 때문이다.

 

스타일리쉬 했던 베를린의 빈티지 홀, 결혼식 등 행사때 대여할 수 있다 - 장소 이름 모름 ㅋ
제임스 본드와 본드 걸 컨셉, 남의 결혼식에서 우리가 더 신난...^^;

 

오이군의 형은 나랑 동갑인데, 우리가 결혼한지 10여년이 지나도록 혼자 살아서 볼 때마다 좀 짠했건만 드디어 제 짝을 만나 세간의 시선을 이겨내고 결혼까지 골인하니 진심 뭉클할 수 밖에. 눈시울이 뜨거워 졌던 몇 안되는 결혼식이었다. 게다가 파트너분 성격이 너무 좋아서 가족들이 대 환영. 

 

겸사겸사 베를린에 며칠 머물며 구경도 좀 했는데, 옴모! 여기 넘 재밌잖아? 진지한 이름의 이 도시가 사실은 이렇게 얼터너티브한 분위기인줄 몰랐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여기서도 몇달 머물러 보고 싶다. 진정한 히피, 짚시로 거듭날 듯...^^;

 

위장술? 길 가다가 갑자기 오이군이 사라져서 깜놀 ^^; - 베를린 장벽

 

4. 대한민국 9개월 : 뜻밖의 태클

원래는 우리의 월드 아일랜드 호핑투어가 이때 시작되어야 하는데, 크로아티아에서 너무 멋진 여행지에 있으면 일이 손에 안잡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일단 한국으로 컴백. 물론 한국도 멋진 곳이 넘쳐나니까 내가 나고 자라 감흥이 좀 덜한 (^^;) 서울 구석에서 3개월만 콕 박혀서 책을 바짝 쓰고, 시원하게 다시 시작하리라!

 

서울의 어느 가을 날, 미친 일몰

 

그런데, 역시 뭐든 너무 오버하면 될 것도 잘 안된다.

3개월간 진짜 하루 15시간씩 책만 썼는데, 너무 앉아 있었더니 한쪽 신경이 눌려서 다리에 마비가 온거다. 헐...

생각 못했다. 내 짐승같이 튼튼한 몸뚱이도 고장날 수 있다는 걸.

그렇게 스위스 온산을 헤짚고 다녀도 씩씩하게 버텨냈는데, 그 몇달 좀 앉아 있었다고 바로 이렇게 에러가 나나. 역시 나는 돌아다녀야 할 운명. 어디 짱박혀 있으면 몸이 먼저 반응을 한다. 

 

어쨌든 이때 진짜 고생했다. 처음엔 다리에 마비가 왔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통증으로 바뀌어 왼쪽 가슴부터 팔끝까지, 왼쪽 골반부터 발끝까지 괴로운 통증이 계속 되었기 때문. 앉아 있으면 더 심해져서 서서 일을 했는데, 그게 또 길게 서 있다보면 다시 통증이 찾아와서 참 난감했다. 이때 병원에서도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고 해서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각종 검사로 깨진 돈이 얼만지. 흑흑. 내 여행자금인데. ㅠ_ㅠ

결국 요양과 작업을 반복하며 계획보다 훨씬 길게 9개월을 한국에서 머물렀다.

 

토란이(엄마의 분신, 강아지 이름) 운전 시키고 추석 기념 가족 여행
사위와 오붓하게 아침 식사
엄마와 딸, 나의 칠흑같이 검은 머리는 엄마에게 물려 받은 것 - 동해
화기애매한 매형과 처남, 한잔 걸치는 중

 

그래도 덕분에 좋은 점이 하나 있었는데, 몸이 아프니까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어져서 친정으로 기어 들어가게 된 거다. 이십대 중반부터 집에서 나와 살았고, 내가 전화나 연락을 잘 안하는 타입이다보니 (흑흑, 죄송합니다) 부모님이 딸래미 부부 실컷 본다며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게다가 우연히 집 근처 남한산성에 바람쐬러 갔다가 문화원 대표님의 권유로 무료 전통혼례까지 진행하게 되서 부모님이 두배로 좋아하셨다. 결혼식을 스위스에서만 했다고 내심 서운하셨던 모양. ^^;

이 기간은 몸이 아파서 좀 괴로왔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 기간이기도 했다.

 

남한산성 문화원 대표님 덕분에 얼떨결에 진행하게 된 결혼 11주년 리마인드 결혼식
덕분에 온가족이 타임머신 ^^

 

토종감자 수입오이의 남한산성 전통혼례 이야기, 더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이 링크를 눌러주세요.

 

5. 홋카이도 3개월 : 아일랜드 호핑 투어 시이~작!

내가 아는 것도 남들 이해 갈 수 있게, 재미요소를 가해, 제한된 분량으로 정리한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 한 나라의 여행, 문화, 역사를 지루하지 않게 소개하고, 맛집, 숙소 등을 골라 추려내 주소, 전번부터 세세한 정보를 수집해서 책으로 엮어 낸다는 것이 시간이 많이 걸릴 줄은 알았는데, 그래도 이렇게까지 많이 걸릴 줄이야.

그러니까 아직도 책을 다 못썼다는 이야기.

 

그렇지만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어디가 됐든 생활비는 꾸준히 들어가는데, 계획했던 여행지가 아닌 곳에서 자금이 소진되는 것이 아까워서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는 욕구불만과 스트레스로 몸이 더 망가질 듯.

결국 괴로움에 몸부림 치다가 어느날 불쑥 다 못쓴 책을 바리바리 싸 들고, 가까운 일본으로 일단 날아갔다.

 

꺄아아아, 나 간드아! 드디어 월드 아일랜드 호핑 투어 시이~작!

 

일본 자체가 섬이긴 했지만 그중에서도 북쪽에 있는 커다란 섬 북해도로 우리의 거주지를 정했다. 때는 여름이라 시원한 곳에서 일도 하고, 대자연이 멋지다길래 구경도 좀 할 겸.

 

눈의 왕국으로 유명한 북해도, 여름철엔 화려한 꽃의 왕국으로 변신한다 - 비에이 사계의 정원

근데, 여기서 아주 평생 기억에 남을 일이 발생했다. 기껏와서 일만 하다 갈 수는 없으니까 일정의 마지막 2주는 캠핑카를 타고 여기저기를 여행하려고 했는데, 그때 삿포로에 진도 7.2의 큰 지진이 나버린것. 
다행히 우리는 지진이 난 하루 전날에 북쪽에 오타루로 이동해 있어서 진동을 심하게까지는 못느꼈고, 캠핑카 안에 일주일치 식량과 요리할 간이 주방 등이 있어서 큰 불편함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차량용 발전기도 있어서 카메라, 핸드폰도 충전도 가능했으며, 마침 약수터 근처에서 자는 바람에 물이 충분한 상황에 지진이 났던 것. 신이 딱 맞춰서 보살펴주신 느낌. 언제나 감사합니다아!

 

 

지진은 무섭지만 지진대에 있는 나라들은 신비한 화산 지대 풍경과 사시사철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축복을 받았기도 하다

 

3일동안 북해도 전체에, 그러니까 남한만한 그 큰 지역 전체에 정전이 됐었고, 수도도 끊겼으며 수퍼마켓의 모든 물과 식량이 일주일간 동나버리던데, 캠핑카에 있지 않았더라면 정말 난감할 뻔했다.

 

샤워는 호수에서 간편히 해결 - 쿠샤로 호수

 

그리고 이때 친절한 일본 사람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외국인 둘이 지진났는데, 돌아다니는게 어리버리 해보였던지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집에 초대해서 식사도 대접해 주고, 해변가에서 만난 친구들이 바비큐파티에도 초대해 줬던 것. (집에 전기가 나가서 냉장고 음식이 다 썩는다며 옹기종기 해변에서 바비큐를 하더라...지진이 많이 나니 이런 상황에 태평하더란...^^;)

이 나라는 요즘 더더욱 미운짓을 많이 하지만 아무래도 평범한 사람들까지 미워할 수는 없다. 특히 한동안 슈퍼마켓에서 신선한 야채 안파니까 이거 다니면서 먹으라며 감자와 오이(우리 이름 어떻게 알았지?) 그리고 토마토를 바리바리 싸주던 농부아저씨들의 친절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정전으로 섬 전체가 까맣던 그날, 낯선이들과 해변에서 바비큐로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 샤코탄 해변
슈퍼마켓 화장실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던 오이군이 불쌍해 보였던지 농부 아저씨들이 싱글클럽 파티하시는데 초대해 주셨다 ^^; - 이시카리 
전부 유기농법으로만 길렀다는 각종 야채를 이용한 식사.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 게다가 낯선이의 따뜻한 마음이 더해져 더욱 고소하게 느껴졌다

 

6. 태즈매니아 3개월 : 호주인듯 호주같지 않은 너

꺄아. 나의 사랑 호주로 돌아간다.

내가 처음 2년간 해외 생활을 했고, 오이군도 만났고, 내 청춘의 낭만을 불살랐던 호주.

근데, 이너므 나라가 너무 커서 사실 갈때마다 한달 넘게 지내며 다른 곳을 갔는데도 여전히 절반도 못둘러봤다. 이번에는 남쪽의 태즈매니아를 3개월 동안 둘러 보기로 결정.

 

물론 이때도 책이 안끝나서 대부분을 호바트 시티 Hobart City 에서 책쓰는데 보냈지만 호주는 역시 나의 취향 레이더를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일단 작은 도시지만 매력넘치는 바와 카페, 레스토랑이 많아서 그런 것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호주인 특유의 친절함과 활달함이 넘쳤고, 그들만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남쪽의 추운 날씨도 억누를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남반구는 남쪽이 춥다. 북쪽이 따뜻 ^^)

 

흐린날은 흐린날 대로 멋졌던 호주의 대자연
이런 비현실 적인 물빛의 흰모래 해변이 수십 킬로미터씩 이어진다. 어딜가도 전세낸 듯 즐길 수 있는 호주의 대자연 - 프렌들리 비치 Friendly Beach

 

나의 호주 사랑은 역시나 마지막 2주동안 캠핑카로 여행하며 확고해 졌다. 호주 본섬보다는 훨씬 추웠지만 (한여름인데 15-25도 사이...ㅠ_ㅠ) 야생동물이 많은 것도, 메마른 듯 하면서도 푸르른 자연이 드넓게 펼쳐진 것도, 바다 색깔이 비현실적으로 예쁜 것도 그냥 다 좋더라.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드디어 책 원고를 전부 끝냈다!

 

※ 대체 무슨 책이길래 이렇게 몇년을 질질...

토감수오의 스위스 가이드북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오늘 오후 나의 서재
이 해변이 오늘 우리의 다이닝 룸
바닷속 야광 플라크톤이 별처럼 빛나던 해변이 오늘 우리의 침실

 

 

7. 뉴 칼레도니아 한달살기 : 거북이가 쏟아지는 해변

문명세계는 호주를 마지막으로 이제 진짜 어드벤쳐를 떠날 시간.

우리의 세번째 태평양 섬나라는 뉴 칼레도니아였다. 이름이 뭔가 신비롭고 모험심을 발동시켜 예전부터 눈독 들이고 있는 곳이라 설레임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의외였다. 

사실 뉴 칼레도니아는 국기도 따로 있지만 독립국이 아니고, 프랑스 식민지로 공식적으로는 프랑스 령이다. 그래서 주요 도시인 누메아는 남부 프랑스가 떠오르는 풍경들로 가득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절반 넘게 프랑스 사람이어서 그냥 프랑스에 온듯한 느낌. 프랑스 식민지 였던 아프리카 나라들은 본토어와 프랑스 말이 섞여 억양도 이상하고, 발음도 조금 달랐는데, 여기는 대부분 파리지앵 억양을 가지고 있었다. 퀘벡 불어같이 자막 필요한 프랑스어를 기대하며 들어왔는데, 그냥 옆나라 프랑스 온 것 같다며 오이군은 약간 실망한 듯 ^^;;

 

건축가 렌조 피아노의 멋드러진 작품 감상중 - 치바우 문화 센터 Centre Culturel Tjibaou (민속 박물관) 
월리를 찾아라! ^^;

 

그러나 그건 누메아 도시 한곳 이야기고, 도시를 벗어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프랑스 사람들과 완전히 분리되어 사는데, 요즘 독립하려고 투표하고 프랑스 반대 운동 조짐이 계속 있어서 분위기가 은근 팽팽했다. 여기저기 '프랑스 꺼져라.' 같은 험악한 문구가 적혀 있어서 하얀 오이군이랑 같이 여행하며 조금 조심스러웠다는.

 

물론 정신 없는 인간사와 관계 없이 자연은 그냥 엄청나게 아름다왔다.

북서부는 건조해서 호주 오지랑 비슷하고, 남쪽은 정글로 변한다. 특히 크고 작은 섬들이 압권인데, 소나무 섬이란 뜻의 일 데 빵 Ile des Pins은 태어나서 한번쯤 봐야할 풍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뉴 칼레도니아에는 거북이가 참 많다. 시그널 Signal 섬에 특히 많은데, 선착장 앞에서 스노클링했더니 한번에 스무마리 정도가 내 주변을 수영해 다니기도 했다. 꼭 작은 섬에 가지 않고, 누메아 도시 앞에서도 수영하다보면 잠자고 있는 거북이 한두마리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엔 아무데서나 출몰하는 거북이가 신기해서 사진찍고, 영상찍고 난리였는데, 나중엔 시큰둥해져서 스노클링하다 마주치면 따라가지도 않는다는... ^^;;

또한 내 생에 가장 멋진 스쿠버 다이빙을 경험한 곳이기도 하다. 나는 얼마 되지 않는 로그수에도 호주의 그레이트 베리어 리프나 필리핀, 팔라우, 갈라파고스 등 내로라 하는 스폿에서 다이빙할 수 있는 감사한 기회들을 가졌는데, 내게 있어서 최고의 다이빙 스폿은 생각치도 못한 뉴 칼레도니아였다. 단, 다이빙 스폿까지 가는게 체력장 수준이라는게 함정.

 

아메데 등대 섬 Ilôt Amédée
거북이랑 함께 수영중인 오이 - 시그널 섬 Îlot Signal
거북이랑 함께 수영중인 감자 - 오리 섬 Ile aux Canards

 

그리고 여기서부터 태평양 섬의 난관인 바퀴벌레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머문 곳은 제법 부촌에 있는 에어비앤비였는데, 이노므 바퀴벌레는 부촌이고, 시골이고 너무나 평등하더라. 심지어 5성급 리조트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 숲 바퀴의 1.5배 정도 되는 거대한 애들이 집에서 심심하면 한번 툭 튀어나오는데...그때마다 내 심장도 함께 툭 튀어나온다는. -_-;

뭐 이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을 만큼 참 멋진 뉴 칼레도니아 였지만 물가가 비싸서 자주 올 곳은 아닌듯 하다. ^^; 내게는 인생에 한번으로 족한...(프랑스령이지만 유로가 아닌 퍼시픽 프랑이라는 돈을 쓴다.)

 

거대 바퀴벌레가 일주일에 한번씩 출몰하던 이 집에는 멋드러진 전망을 가진 수영장도 있었다. 내 평생 처음 수영장 딸린 집에서 살아본 기념촬영 ^^;




태평양 섬여행의 하이라이트 바누아투 Vanuatu를 포함해서 이어지는 여행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으로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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