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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 평범해서 소중한 일상
그땐 몰랐었네...코로나 팬데믹, 세계여행 제 1막 마지막 장 ④
2020. 4. 8. 15:00

집없는 떠돌이 커플, 토종감자 수입오이의 여행 하이라이트 네번째 글입니다. 미서부, 바하마, 마이애미, 갈라파고스 한달살기 내용을 못보셨다면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23. 아이슬란드 2주 : 진정한 겨울왕국

❝아~눈이 그립다. 눈다운 눈 못본지가 너무 오래됐어... 난 추운게 좋은데...❞

스위스를 떠나 산 뒤로 알프스 소년아저씨 오이군이 연말만 되면 중얼거리는 내용이다. 사실 스위스라고 해도 대부분의 도시에는 눈이 별로 오지 않기 때문에 겨울에 서너번 산위 스키장에 올라가서 눈밟는게 전부였으면서 마치 알프스 산골마을에서 자란 사람처럼 겨울만 되면 저렇게 눈타령을 하네...

 

전세를 빼고 세계여행을 시작한 뒤로 오이군의 겨울 향수병은 더 심해졌다. 여행일정은 전부 내가 짜는데, 집에서 저녁 메뉴가 요리사인 울엄마 맘대로듯, 추운 것 싫어하는 나는 추운 곳을 루트에 넣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세계여행 코스는 대부분 열대지방이거나 태즈매니아, 뉴질랜드, 북해도처럼 서늘한 지역에 갈 때는 여름을 선택한다. 

 

그러나 무언가 불공평 하면 어떤 관계든 오래가지 못하는 법. 오이군의 욕구불만이 쌓여 세계여행에 보이콧을 할까봐 올해는 서방님의 한을 한번 풀어주기로 했다. 눈더미에 지대로 한번 파묻히게 해주기로 한 것! 장소는 벌써 이름에서 겨울이 느껴지는 아이슬란드다. 그래, 나라 이름자체가 얼음의 땅이라니 대체 겨울에 얼마나 추운지 함 보자.

추운 것이 싫긴 했지만 몇해전부터 세계 최고 인기 지역으로 떠오른 아이슬란드 풍경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고, 이래저래 추위로 고통받아야 한다면 오이군에게 어설프지 않은 진짜 겨울을 맛보게 해주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1월, 겨울의 최중심에 떠난 아이슬란드 여행.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다.

'ICE' land 맞구나...-_-;

 

Winter is Coming! 의심의 여지 없이 아.이.스. 랜드, 얼음의 땅이었다 - 커크주펠 폭포 Kirkjufellsfoss
널 위해 준비 했어! 마음에 드니, 엉? 나는 겨울이 싫다고오...

 

사실 캐나다 북부나 러시아 등에 비해 아이슬란드의 겨울 기온이 특히 낮거나 한건 아니다. 한겨울에도 0도 전후에서 왔다갔다 하고, 영하 5도 미만으로 떨어지는 날은 거의 없다고 한다. 1월에는 해가 엄청 짦아서 낮이 4시간 정도 랬는데, 실제로는 여명과 블루아워가 한시간 넘게 지속되다보니 빛이 있어 사물을 구분할 수 있는 시간이 대략 7-8시간 정도 되더라. 게다가 낮동안에 해가 낮아서 하루종일 일출, 일몰같은 따뜻한 색이 돌다보니 풍경사진찍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사진가들이 좋아하는 여명, 일출, 골든아워, 일몰, 블루아워가 6시간쯤 지속되는 셈 ^^; 해가 아침 10시에 뜨니 게을러도 일출을 찍을 수 있고, 낮동안 아무때나 찍어도 분위기 있는 금빛햇살을 담을 수 있었다. 아, 물론 해가 나온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아이슬란드의 1월에는 대부분 구름이 끼어 있어서 해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낮이 짧은 대신 밤이 기니 오로라라도 많이 볼 수 있을 줄 알았건만 2주동안 오로라를 볼 수 있을만큼 하늘이 맑은 날은 단 3일. 그나마도 운이 없었는지 오로라가 맨눈으로 보일만큼 나와주지도 않더라. 

 

 

아이슬란드의 겨울에는 이정도로 구름이 끼고 눈보라가 치지 않는다면 꽤 좋은 날씨라 할 수 있는 거더라... - 블루라군 Blue Lagoon
오로라가 하루 나오긴 나왔는데, 사실 ISO를 6400까지 올리고 8초 노출로 찍은 것. 이렇게 하면 사진에는 그럴듯 하게 담기지만 눈으로는 그냥 저쪽 하늘이 약간 밝은가...? 하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옐로나이프에서 봤던, 머리 위로 지나가며 용춤추는 오로라의 감동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그다지 운이 없었나보다. - 다이아몬드 비치 Diamond Beach
2주동안 딱 이틀 화창한 날이 있었는데, 그날이 마침 넘나 기대했던 빙하동굴에 가는날 이었다. 보석같이 빛나던 얼음궁전에 반사된 금빛 햇살이라니! - 바트나 빙하 Vatnajökul

 

그러나 아이슬란드 겨울의 복병은 기온도 아니고, 짧은 해도 아니었다. 바로 엄청난 바람이었다.

바람이라는 단어는 어감이 약하고, 아이슬란드의 바람은 수퍼태풍수준이다. 우리가 머물렀던 동안 바람의 최고 속도는 시속 190km.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태풍의 중심 속도가 시속 61km 정도가 넘어가면 태풍으로 정의하는데, 아이슬란드에서는 바람이 190km로 불어 제낄때가 있는 거다. 내가 자동차도 190km이상으로 밟아본 적이 없는데, 바람이 시속 190km라니...

 

※ 바람의 속도는 사실 보통 초속 m/s으로 쓰는데, 본문에는 이해를 돕기 위해 일반인에게 더 익숙한 시속 km/h로 변환하였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열대저기압의 중심속도가 17.2m/s이상이면 태풍이라 부르는데, 아이슬란드에서는 바람 속도가 53m/s 인 날이 있었던 것. 태풍 속도가 이정도면 수퍼태풍이라 부르며 전국 비상이 난다. 참고로 2016년 전국을 강타했던 태풍 차바의 순간 최대 풍속은 47 m/s. )

 

폭풍이 없는 날에도 2초전까지 푸른 하늘이었는데, 갑자기 눈가루를 동반한 돌풍이 확 치고 지나갈 때가 있다. 순간 아무것도 안보이면서 차가 흔들 ㅜ_ㅜ 이때 놀라서 급브레이크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고, 차분하게 속도를 줄여야 한다 (좌) / 목적지에 도착을 못했는데, 예보보다 눈폭풍이 일찍와서 굼뱅이 운전 중. 길이고 뭐고 암것도 안보이는데, 이렇게 앞에 차가 있어주면 참 고맙다. 이날은 결국 목적지 호텔까지 못가고 그냥 첫번째 나오는 아무 호텔에 들어가야 했다 (우)

 

뭐 겨우내 늘 이런것은 아니고, 2-3일 잠잠하다가 2-4일씩 폭풍이 오기를 반복하는 모양. 바람이 원형으로 돌지 않아 그냥 폭풍(스톰 Storm)이라 부르는데, 약할때도 시속 100km정도는 기본이고, 보통 사방으로 흩날리는 눈을 동반하기 때문에 한낮에도 눈풍속으로 손을 뻗으면 내 손이 안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가 있었다. 아, 물론, 제대로 서 있을만큼 다리힘이 세다면 말이다. 따라서 운전이 서투르다면 아이슬란드 겨울에 렌트카 여행은 시도도 하지 말긴 바란다. 눈차가 도로를 열심히 치우지만 늘 살얼음이 붙어 있고, 눈이 날리면 시야가 3미터 이하로 떨어지는데, 돌풍에 차가 확 밀릴때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특화된 겨울타이어가 바닥에 잘 붙어서 대부분은 괜찮지만 어쨌든 가끔 돌풍에 차가 밀려 컨트롤이 안될때 대처할 자신이 없다면 겨울에는 투어팀 따라가길 추천한다. 우리도 바람 센 날은 이동을 못하는 바람에 2주간 이동한 구간이 짧았는데도, 도로 밖에 쳐박혀 있는 차를 4개나 봤다. 뭐...설사 운이 좋아 도로 옆이 절벽이 아니었고, 눈더미라 다치지 않았다 하더라도 눈폭풍 적색경보때는 구조팀조차 오지 않기 때문에 그냥 차에서 경보 해제될 때까지 며칠 비박하거나 차버리고 걷는 수 밖에 없다고... 

 

따라서 겨울여행은 일정을 아주 널널하게 짜야 한다. 3일간 눈보라때문에 고립되어 있다가 풀려나와 찾아간 스코가 폭포 Skógafoss. 너무나 좋았다. 폭포가 멋있어서 좋은 것도 있었지만 계속 갇혀 있다가 뭐라도 보러 갈 수 있다는 것 그자체가 마냥 좋았다

 

게다가 눈도 징하게 많이 와서 하룻밤새 1-2미터가 쌓이는건 이야기 거리도 되지 않는다. 덕분에 오이군의 소원풀이는 제대로 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눈에 파묻혀 놀았다는.

특이한 경험을 좋아하는 나도 폭풍때문에 아주 작은 마을에 3일, 산장호텔에 2일간 고립되는 경험을 무용담 리스트에 추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번 해봤으니 고립은 이제 그만. -_-;

 

작은 마을 오두막에 고립되었던 3일동안은 하루종일 끊임없이 눈을 치워야 했다. 안그러면 눈이 그쳐도 문이 안열려서 집밖에 나갈 수가 없기 때문에...
산장 호텔에 고립됐을때는 눈은 안왔는데, 도로쪽 바람이 시속 190km이상 불어서 차가 밀리는고로 통행이 금지되어버렸다. 김씨네 편의점 시즌 2, 3을 다 봤는데도 통제가 안불려서 호텔앞에서 배회다 만난 동네개. 사람이 다니지 않다가 누가 나오니 신이 났는지 전력질주해와서 눈던지고 놀자고...^^; 등치는 커도 어린 녀석이었는데, 진정한 '개신남'의 정수를 보여주더라 ^^;

 

 

24. 대한민국 / 체코 한달 : 각자의 시간

겨울은 질리게 맛봤으니 다시 여름나라로 돌아갈 때가 왔다. 뭐 오이군은 전혀 질리지 않았다고 했지만 여행계획은 여전히 내가 짜기 때문에 올해는 무조건 따뜻한 곳이다. 훗. 일년간 동남아 나라들을 순회할 예정. 그렇게 재밌다는 동남아 나라들을 우리는 많이 못본 이유도 있고, 통장에 옐로경보가 울리기도 했다. 작년에 돌았던 태평양 섬나라들이 현지의 경제 수준과는 전혀 별개로 물가가 엄청 비쌌던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소비했더라. 그래서 올해는 물가가 착한 동남아 나라들에서 통장힐링을 좀 하기로 한 것.

 

그러나 다시 여행 궤도에 오르기 전에 약간의 각자의 시간을 좀 갖기로 했다. 우리는 1년 365일 아침부터 밤까지 한몸처럼 붙어 지내기 때문에 가끔 이런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나는 한국에 있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오이군은 평소 시차 없이 같이 일하고 싶다던 직장동료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오이군네 회사에는 해외 이나라 저나라에서 지내며 원격근무하는 직원들이 많은데, 그 중 체코에서 지내는 친구가 오이군과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 연락을 자주해야 하건만 시차가 있어 많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직장 동료이자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인 그 친구는 체코에서 러시아 여친이랑 살고 있는데, 오이군이 그 친구네 집에 2주간 쳐들어 가겠다고 한다. 남의 집에 그렇게 가 있는 오이군도 참 성격이 무던하지만 그 친구의 여친도 성격이 참 좋은 모양이다. 난 누가 우리집 와서 그렇게 눌러 있음 내가 집을 나가 있을듯 한데...^^;

 

동네 구경하며 친구 커플 찍사해줬는가 봄 ㅋㅋ
굴라쉬와 체코에서 흔히 먹는다는 찐빵
유명한 뭐라는데, 나는 뭔지 모름

 

그가 체코에서 커플사이에 끼어 지내는 동안 나는 가족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한식열전을 펼칠 기대에차 한국으로 들어왔다. 넘나 그리웠던 김치찌개, 된장국, 청국장, 산나물 무침~ 근데, 엄마가 자꾸 맛난거 해주신다며 양식, 일식을 포함한 다양한 음식을 시도하신다. 김치찌개만 질리도록 먹어도 되는데... ^^;;

그리고 이때쯤 슬슬 수도권에 코로나가 퍼지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은근한 압력하에 나는 거의 한달동안 집에만 있게 되었다. 막내딸 토란이 산책시키는 것 이외에는 별로 바깥구경 한 기억이...-_-ㅋ 그 한달동안 엄마의 사랑이 승화된 요리가 차곡차곡 내 몸속에 채워져 몰디브 간다며 새로산 수영복 속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ㅠ_ㅠ 오기 전에 오이군에게 한국에서 한달간 요가 다닐거라고 큰소리 빵빵쳤는데, 요가는 커녕 #살천지 #확찐자 라는 표현이 생기기도 전에 이미 전조 증상을 밟고 있었다. 

 

 

2월, 중국의 코로나가 절정으로 치닫고, 한국에도 불안한 분위기가 퍼져나갈 무렵 오이군이 체코에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미 공항이 확연히 비어가고, 다들 마스크를 쓰고 다닐때였는데, 겨울이면 교복처럼 쓰고다니는 산타모자만 쓴 오이군이 환한 미소와 함께 기침을 콜록 콜록 하면서...ㅠ_ㅠ

두둥...

 

사실 그때 코감기 절대 안걸리시는 엄마를 제외한 우리 가족이 전부 유래 없이 엄청난 양의 콧물을 쏟아내게 하는 감기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오이군에게 옮겨줄까 내심 걱정을 하던 차였다. 이때 감기가 참 이상했던게, 열도 없고, 몸살기운도 없고, 목도 아프지 않은데, 콧물만 정말 탈수증 올 만큼 흘렀던 것. 십여년 만에 걸린 콧물감기에 적응 못해서 숨을 헐떡이며 공항으로 데리러 나갔는데, 이인간이 마스크도 안하고 기침을 해대며 들어오네? 흠...이걸 그냥 돌려 보내? -_-;

 

잠시 고민했으나 검은 머리 파뿌리 어쩌구 하면서 십여년 전에 서류에 싸인한 관계로 그냥 차에 구겨 넣고, 집으로 데려와 감금했다. 근데, 오이군은 안나가고 마음껏 게임만 할 수 있어서 감금당하니 좋아하더라...

사실 이때만해도 코로나가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치명타를 줄 지 몰랐고, 전염력이 이렇게 엄청난지 몰랐기 때문에 다들 크게 걱정을 안했는데, 요즘 같았으면 시설격리시켰을 듯. -_-;

 

어쨌든 다들 슬그머니 걱정했지만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콧물 감기도 안걸렸던 어머니를 포함, 동생과 나는 기침 감기는 옮겨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데, 오이군하고 아버지하고 사이좋게 감기 교환을 했다. 며칠 후에 아버지가 기침을 하시고, 오이군이 콧물을 쏟아내기 시작하더라. 방은 나랑 오이군이 함께 쓰는데, 뭐...뭐지. -_-ㅋ

 

 

25. 인도네시아 한달 : 족자카르타, 얼떨결에 만난 인생여행지

인간의 창의력과 인내심에 감탄하게 되는 족자카르타의 프람바난 힌두 사원. 2016년 지진으로 상당수가 무너졌지만 여전히 입이 떡 벌어지는 풍경을 선사한다

 

족자카르타. 이곳에 도착하기 10일 전 까지만해도 나에게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도 없는 동네였다. 당연히 알지 못하는 동네이니 우리 여행 계획에도 없는 곳이었는데, 갑자기 쳐들어와 한달을 보내게 되었다. 이유는 이러 했다.

 

연초의 계획에 따라 올해는 동남아 순회를 하기로 해서 원래대로라면 한국에서 방콕으로 갔어야 한다. 배낭여행자들의 고향같은 방콕에서 한달을 보내며 소시적 추억을 되새기고, 몰디브에서 기억 저편으로 묻힌 신혼 분위기를 만끽한 후, 스리랑카에서 야생코끼리들과 함께 자연인으로 거듭나고 싶었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가서 몇달간 화려하게 도시생활을 좀 즐겨주려고 했는데, 갑자기 코로나가 난리가 나버린거다. 당연히 부모님은 아침 저녁으로 해외에 나가지 말라고 들볶기 시작하셨고, 조용히 시들어갈 줄 알았던 코로나가 이나라 저나라로 흘러 들어간다니 우리도 조금 망설여 지더라. 그때 마침 태국에 여행갔던 어떤 분이 코로나 확진자가 되었고 그의 가족들도 같이 확진이 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에라이...태국 안녕. ㅠ_ㅠ

 

사실 그때까지만해도 동남아 여기저기 상황이 비슷하고, 한국도 확진자가 늘고 있었지만 그냥 사스같이 지나갈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마음이 찜찜하니 태국이 아닌 다른 나라, 즉 인도네시아로 경로만 바꿨다. 당시엔 인도네시아에서 확진자가 없다고 하던 때였는데, 사실 없다는 건 믿지 않았지만 인도네시아는 거의 제일 먼저 중국인을 전면 통제한 나라였기 때문에 대체 목적지로 낙찰되었다. 다만 발리는 그 전에 이미 중국인이 많이 다녀갔을 것 같아서 후보에서 제외하고, 자카르타는 사람이 많아서 전염병에 취약할 듯 하여 제외하고나니 남는 곳이 족자카르타더라. 이름도 못들어 봤던 곳이었지만 물가도 싸고, 해외에서 직항이 없으니 여행자도 적을 것이며, 무엇보다 사진을 보니 엄뭐, 이거 넘 멋지잖아?

 

 

세계 최대 불교 사원 보로부두르의 일출. 나를 족자카르타로 불러들인 바로 그 풍경!
기대하던대로 너무나 멋졌다. 족자카르타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했지만...(명상을 가장하고 자는 중)

 

그런데, 와우....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 눈을 꿈뻑이며 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막상 도착하고 보니 난생 처음 본 엄청난 스쿠터 부대와 도시의 어수선함, 외국인은 눈씻고 봐도 없는데도 도시에 꽉들어찬 인구밀도에 내가 뭘 잘 못 골라나 싶더라. 웬지 동네도 무서워 보여서 처음 이틀정도는 열심히 눈알을 굴리며 주변 모든 것을 경계하고 다녔는데, 흠...며칠 마주쳐보니 여기 사람들이 엄청 상냥하고, 친절하잖아? 눈만 마주치면 해맑게 웃어주는 사람들 덕분에 마음이 좀 풀어져서 다시 돌아본 결과 첫 인상이 무서웠던 그 동네가 나의 작은 파라다이스로 탈바꿈 하게 되었다. 

 

특히 아이들은 외국인을 보면 따라다니며 손을 흔들고 좋아한다. 나도 어렸을때 외국인 보면 신기해서 '헬로~' 하고 숨었던 추억이 새록 ^^; 

 

상냥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물가도 내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더라. 그러니까 제주도에서 한달살기를 하려면 작은 원룸도 월세 80-100정도는 줘야했었다. 거기다가 간혹 전기세, 수도세까지 따로 받는 집들도 있었는데, 족자카르타는 커다란 수영장이 있는 4성급 호텔방이 조식 뷔페 포함해서 한달에 110만원 정도. 급히 오느라 찬찬히 집 고를 시간이 없어서 대략 그냥 호텔로 온거였는데, 너무나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야말로 영화속에서 보던, 호텔에서 사는 갑부같은 느낌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매일 방청소도 해주고, 장기 투숙이라고 위치도 전망 좋은 최상층을 배정 받았으며, 조식 뷔페에 밥이며 면같은게 있어서 매일 점심을 건너 뛰어도 될만큼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 인도네시아 음식이 꽤나 입맛에 맞았고, 호텔안에 헬스클럽과 수영장이 있어서 조식뷔페에서 폭식한 죄책감도 덜 수 있었고 말이다. 무슬림 국가라 새벽 4시마다 울려퍼지는, 장타령 같은 기도소리에 깨는 것 말고는 모든것이 완벽했다.

 

유명 관광지에 있는 음식점조차 꽤 저렴한 편이어서 적은 비용으로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이것이 동남아시아 여행의 매력 ^^; 
다양한 인도네시아 요리 도전! 그러나 우리가 만든것 중 제일 맛있는 건 그냥 갈릭칩과 새우칩이었다는...^^;

 

식비도 호텔이라 조리를 할 수 없으니 점심, 저녁은 전부 밖에서 사먹었는데, 한국에서 살때 한달 식비+유흥비 보다 덜 나왔다. 숙소 위치가 족자카르타의 홍대앞 같은 곳이라 일반 음식점들 보다 비싼 편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하려다 실패한 요가도 다니고, 인도네시아 전통공예랑 요리 같은 것도 배웠으며, 방콕에서 받고 싶었던 마사지도 받아가며 계획에 없던 귀족적인 생활을 누렸다. 아, 오기전에 사진에서 봤던 웅장하고 거대한 유적지와 자연풍경이 엄청 멋졌음은 말할 것도 없고.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평화로와지는 풍경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그땐 믿었네...

 

그러나 그사이 한국에서는 살천지 확찐자 사태가 터졌고, 이후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한국발 비행기를 막기 시작하더니 한국출발이 아닌데도 한국여권을 그냥 막기도 하고, 아시아 사람들을 무조건 경계한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그때 족자카르타 사람들이 참 고마웠던게 한국인이라고 하면 경계하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손을 꼭 부여잡으면서 절대 지금 집에 가지 말라고, 여기는 아직 퍼지지 않았으니까 여기서 상황이 진정될때까지 몸사리고 있으라며 토닥여 주더라. 물론 인도네시아에 확진자가 없다는 것은 전혀 믿을 수 없었지만 진심어린 눈으로 다정하게 말해주는 동네 사람들은 어찌나 고맙던지. 그러나 며칠 후 자카르타에 공식적인 확진자가 한두명 생겼다는 이야기가 들려왔고, 이곳에도 가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보이며 본격적으로 오묘한 공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여권의 해외 출입국 관련 상황은 꿈에 그리던 몰디브 행 일주일을 앞두고 최악으로 치닫았다.

 

으아악...작년 8월부터 이미 세팅되어 있던 몰디브 행인데...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몰디브를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다아아...ㅠ_ㅠ

 


 

토종감자 수입오이의 세계여행 제 1막, 마지막 여행지 몰디브 이야기는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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