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갯불에 콩 볶듯 떠난 필리핀 보홀 다이빙 여행

삐진 오이 달래기

작년 3월의 어느 날, 나는 불쑥 필리핀행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전혀 계획에 없던 필리핀은 왜 갑자기? 이유는 이러했다.


같은달 초에 오키나와현의 이시가키로 겟어바웃 여행기사를 위해 취재를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다른 필진 한명과 호텔 인스펙션 차 하나투어 직원 두분이 동행을 했던 취재여서, 결혼 후로는 처음으로 오이군과 함께하지 못한 여행이 되었다. 아니 그런데, 취재 이야기를 꺼낼 때는 흔쾌히 다녀오라고 했던 오이군이 나중에 보니 슬그머니 삐져 있는게 아닌가. 오키나와 이야기만 나오면 안색이 굳고, 입모양이 삐죽, 빼죽. 흐음. 나도 기대이상으로 멋졌던 이시가키 여행이었던지라 은근히 미안했는데, 이러면 곤란하지. 급히 오이군의 마음을 풀어 주기위한 여행 계획에 들어갔다. 단, 오키나와는 4월인데 이미 해수욕장을 개장한 관계로 가격이 많이 올라있기에, 조금 저렴한 필리핀으로 대체 ^^; 어차피 바다가 주목적인데, 위 사진에서 보시다 시피, 필리핀 바다의 컨디션은 오키나와 못지 않게 훌륭하지 않은가 ^^;

날짜는 부활절 연휴기간인 3월 말. 한국에 살지만, 스위스회사에서 일을 하는 오이군에겐 구정과 추석 연휴가 없는대신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휴가가 있다. 초스피드로 필리핀을 연구한 결과 보홀섬의 발리카삭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다이빙 포인트라기에 이곳으로 낙찰. 2주만에 초스피드로 여행계획을 세웠다.



제스트 항공 이용기

소박한 비행기로 4시간 반

급히 비행기표를 공수했는데, 당시 자리가 있는 것 중 가장 저렴한 항공사가 제스트였다. 제스트는 필리핀 저가 항공사인데, 2013년 에어 아시아에 인수되어서 이름이 에어아시아 제스트로 변경되었다. 인수 후에 비행기 품질을 개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탔을 당시 내부 컨디션은 조금 안타까왔다. 


일단 일반석 좌석 공간이 엄청나게 좁다. 우리는 선호하는 항공사가 딱히 없는 관계로 다양한 항공사를 이용하기 때문에 비행기 기종도 다양하게 걸린다. 그런데, 이번 비행기가 여지껏 본 비행기 중 좌석공간이 가장 협소 했던 듯 하다. 나도 옴짝 달싹 못하며 굉장히 힘들었는데, 롱다리 오이군은 어땠으랴. 다리를 옆으로 살짝 틀고도 무릎이 앞좌석에 딱 붙어서 조그만 흔들림에도 멍이 들고, 쑤셔 했다. ㅠ_ㅠ 위로해 주러 왔는데, 비행기에 시달려서 몸살날 판. 다행히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스튜어디스의 배려로 비상구 좌석을 받을 수 있었다.


제스트 항공으로 필리핀에 가면 가격은 꽤 저렴하게 나오니, 4시간 반쯤 고생해서 그 돈으로 맛있는거 사먹겠다는 분께 추천한다. 인천-세부 정도는 단거리 비행이지만, 나는 정말 힘든 것 못참겠다 하시는 분들께는 꽤 고난이도의 어드벤쳐가 될 듯 싶다.


기내식은 한번 나오는데, 유부 초밥이 나왔다. 인스턴트 미소국과 무말랭이가 반찬. 뭐...저가 항공이니까 추가금 없이 밥 주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며 먹어야지.


창가쪽이 3열 좌석이었는데, 다행히 옆에 있던 분이 비행도중 저쪽 어딘가로 좌석을 옮겨 가서 오이군의 다리가 해방되었다. 반대로 나는 다리에 오이군의 머리 무게가 얹어지는 추가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뭐 나혼자 이시가키가서 신나게 놀다 왔으니 이정도는 사랑으로 감싸주자. 

으아아... 발저려. -_-;


기내 영화를 선택할 수 없는 기종이었기 때문에 심심해진 나는 주변에 손에 잡히는 것을 닥치는대로 읽었다. 그러다 신기한 것 발견. 제스트 운항 노선 지도인데, 윗쪽의 한국 Korea모양을 한번 보시라. 본적없는 대한민국의 모습. 판게아 이전의 지구인가? 그...그래. 뭐 인천까지는 어떻게 뭐 상상력을 발휘해서 저즈음에 있다고 쳐 주자. 그러나 부산은 너무 했지 않은가. 지도상 일본이라기도 애매한, 존재 하지 않는 섬을 만들어 부산이라 부른다. 이거 어쩔...



하늘에서 본 대한민국 서쪽

서해안의 다채로움을 항공 사진으로 담다

3월 말이라 황사가 짙게 깔렸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오늘 시야가 좋았다. 공항 부근의 신기한 섬들을 보라. 평평한 지형은 매우 인공적인데, 그곳에 산이 우뚝 우뚝 솟아 있다.


나는 항상 이륙을 해서 고도가 높아지면 급작스레 졸음이 몰려오기 때문에 잠시 눈을 붙였다 깨어났다. 졸린 눈을 꿈뻑이며 무심코 내려다본 창밖에 눈에 번쩍 띄는 것이 있었으니. 앗? 이거 군산 새만금 아닌가? 우왓. 아버지 고향이 군산 근처라 아직도 친척들이 그 부근에 살고 있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좁은 공간에서 부산하게 카메라를 꺼내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아부지 보여드려야지. 우힛. 웬일로 햇살도 좋아서 서해가 마치 동해처럼 푸르러 보이기까지 한다.


인간의 힘이라는게 참 대단하긴 하다. 저 넓은 바다에 저런 것을 쌓아놓다니. 자연의 흐름을 깨지 않으면서, 우리도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이후 생태계 관리도 야물딱 지게 잘 해 나갔으면 더없이 좋겠다.


조금 더 내려가니 이런 풍경도 보인다. 네모 반듯한 것들은 논인것 같고...저 붉은 땅은 뭐지? 아직 완전한 봄이 아니라 아쉽게도 산이 검게 보이는데, 여름처럼 녹음이 무성했다면 붉은 땅과 어우러져 꽤나 멋졌을 것 같다.


굽이 굽이 흐르는 강줄기가 기괴하면서도 오묘하게 웅장하구나. 우리나라 참 멋지게 생겼네.

한국의 남서쪽을 벗어나자 이제 끝없는 바다가 이어졌다.



필리핀 한눈에 보기

봄이 올라오는 모습을 지켜보며

역시 착륙은 낮에 해야 제맛이다. 내가 앞으로 여행할 나라를 일단 대략적으로 한번 훑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은 7,10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로 남북의 길이가 꽤 길다. 비행기가 필리핀 상공으로 들어올 때쯤 아래를 바라보니,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대지는 황토색을 띄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어느 순간 저쪽으로 녹색 대지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저렇게 녹색빛으로 봄이 북상하고 있는 걸까? 위에서 보니, 녹색 과 황토색 대지의 경계가 명확히 드러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필리핀은 길 모양이 참 독특하게 나 있다. 상공에서 보면 고대 문명의 그림같기도 하고, 미로 같기도 하다. 집이 늘어선 모양도 마찬가지.


드디어 완전한 열대 기후로 들어온 모양이다. 해변의 물 빛이 맑은 하늘 색으로 바뀌었다. 

덩달아 반쯤 자고 있던 심장도 벌컥 벌컥. 이미 우리의 마음은 저 푸른 물 어딘가를 헤엄치고 있었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자 산들이 가까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냥 산인가보다 했는데, 가까이 보니 울창한 정글이구나.


그리고 말이 필요 없는 산호초 바다.

물이 얼마나 맑은지 물속의 지형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이미 물속의 고기들이 우리에게 손짓하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야채커플 초 흥분 상태.


그리고, 이국적인 풍경의 마을을 넘어 비행기는 세부의 막탄 공항에 착륙했다. 

어디에서도 본적없는 칙칙한 공항. ^^; 회색빛 시멘트 건물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어, 주변에 비행기가 없었더라면 폐 공장인 줄 알겠더라.

공항 모습이야 어쨌던 간에 우리는 이미 그 에메랄드 빛 바다를 상공에서 봤기때문에 모든 것이 핑크 빛.

3박 4일의 짧고, 굵었던 보홀 섬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여행일자 : 2013년 3월 29일



제스트 항공
1995년에 설립된 필리핀의 저가 항공사 입니다. 2013년 9월 경 에어 아시아에 인수되었습니다. 
보유 기종들이 대부분 소형 기종으로 연차가 10년이 조금 넘었다고 합니다. 오래된 기종인지라 좌석 간격이 매우 좁습니다. 참고하세요. 
2014년 6월 국토부의 승인도 없이 임의로 비행횟수를 2회에서 1회로 단축시켜서 예약자들의 원성을 산 바 있습니다. 그로 인해 손해를 본 8천여명의 고객에게 일정변경을 해주거나, 1일 숙박비와 식사비를 제공하기는 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이미 2013년에도 필리핀 항공 당국에서 안전 규정 위반으로 운항을 금지시키는 바람에 한국인 승객 1000여명이 필리핀에 발이 묶이는 사태도 있었고,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를 않아 유럽 연합EU에서는 세부퍼시픽과 함께 블랙리스트에 올라 운항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에어 아시아에 인수되며 서비스가 개선되기를 기대했는데, 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서, 저가 항공사들이 더 많이 활성화 되었으면 하는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기 그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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