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께벡

 

오이군이 발음 하는걸 들으면 거의 께벡으로 들린다. 불어는 가끔...욕같을 때가 많다.


오늘은 일요일, 주말 여행의 끝, 퀘벡을 떠나야 하는 날이다. 가는 길에 가까운 국립공원인 Jacques-Cartier 에 들렸다 가기로 했는데, 이런 이런. 날이 흐리고 비가 부슬 부슬 온다. 원래는 어제 가기로 했었는데, 우연히 인터넷에서 오늘 모든 국립공원이 공짜라는 소식을 접하고 냅따 날짜를 바꿨더니 이런 불상사가 생겼다. 그래. 세상에 진짜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대머리도 된다고 하지 않는가... 다 그런거지, 뭐.


마지막으로 마루로 나오면 바로 길로 이어지는 신기한 친구의 친구의 친구 집 뒷문을 한번 사용해 주고, 작고 깔끔한 아파트와 이별했다. 싼값에 적절한 숙소를 제공해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한복 금박 책깔피 하나 남겨 두었는데, 그집 화장대 거울에 발신 연도가 78년으로 찍힌 한복입은 아낙네의 엽서가 있었다. 그 옆에 비슷한 모양의 한복 책깔피를 나란히 꽂아두었으니 나중에 보면 신기해 하겠지? 히죽 히죽. ^___^

작든 크든, 선물은 받을때도 신나지만 줄 때 더 근질 근질한것이 기분이 좋아지는것 같다.






안녕, 나의 동화속 도시야.

어느 장소와 작별을 할 땐, 호주에서처럼 언젠간 다시 돌아올 것만 같아서 별로 슬프지 않은 곳이 있는가 하면, 여기 퀘벡처럼, 너무 이쁘지만 다시는 돌아올 일이 없을 것 같아서 떠나는 순간 애잔한 느낌이 들어버리는 그런 곳이 있다.




캐나다 사람들은 검소한건지 무심한건지 건물도 보수공사를 하지 않는 느낌이 들더니, 횡단보도는 물론 중앙선 마저도 모두 지워져 있었다. 꽤나 단정하게 잘 다듬어 놓은 퀘벡 도시도 그 룰에서는 벗어나지는 못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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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at을 타고 고속도로를 신이나게 달려보자~



신나게 달려 달려~

달리는 와중에도 나는 오이군의 긴 정강이 끝에 달린 무릎이 핸들 양 옆까지 올라와 시동열쇠를 위협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숨죽여 움찔거려야 했다. 그저께처럼 시속 130에서 시동끄기 같은 재밌는 포스팅 거리는 이제 주지 않아도 되는데...같은 얘기 두번 쓰면 재미 없잖아? ^^ Piat과 함께 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거리는 그렇게 짧았다. 2센티미터도 채 안되더라.



Welcome to Canada

 


라고 말하는것 같았다. 이 표지판을 보는 순간...

저것은 그 말로만 듣던 무스의 그림이 아닌가! 저 동물이 도로로 뛰어들면 511번으로 전화하라는 표지다. 그 말인 즉슨, 정말로 무스가 막 출몰한다는 얘기가 아닌가?

꺄울~~

'얼렁 나타나렴 보고 싶구나, 얘야.' 라고 몰래 생각했지만 사실 이 짐승이 꽤나 큰 녀석이라 스물 스물 고속도로로 기어 들어오면 대형 사고를 유도할 수 도 있겠다 싶어서, 그럼 옆 언덕위에라도 있어줘~ 라고 생각하는 순간, 오이, 소리친다.


엇?!

왜왜? 뭔대, 뭔대?

음...나 무스를 본거 같아. 방금 옆에 시커먼것.

진짜야? 그럼 엇! 하지 말고 무스다! 해야 내가 보지 !!!

그게 움직이질 않아서 잠깐 확신이 안섰었어. 근데, 어마 어마하게 큰데?

머야. 무스래는거야, 아니야?

생각해 보니 진짜 무슨거 같애. 거기다 모형을 세워놓진 않았을거 같거든. 근데, 진짜 엄청나게 큰데?

차 돌려! 당자앙!!!


고속도로에선, 무스를 놓친 감자가 더 위험할 수 있다. 내가 운전중이었다면 이성을 잃고 유턴했을텐데...

신중한 성격의 스위스 오이가 이럴땐 쪼오끔 덜 신중해서 무스닷 하고 소리쳐 줬으면 좋겠다. 왜 그 짧은 순간에 진짜 무스일까? 아닐까? 무스 모형일 수도 있겠다. 아니지, 왜 고속도로 옆에 그런걸 세워 두겠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진짜 무스로구나. 등등을 생각하는 걸까. 성격급한 감자로선 죽을 때 까지 이해 못할 미스테리다.




공포영화는 이렇게 시작하더라

 

그나저나 왜 이 국립공원 입구는 안나오는 걸까? 우리의 비싸고 쓸모 없는 GPS에 따르면 입구가 벌써 한두개쯤 지나고도 남았는데...도무지 입구를 찾을 수가 없어서 대략 공사판 같은데로 난 셋길을 따라 산쪽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비도 부슬 부슬 오고, 비포장도로가 좁게 나 있는 전혀 멋지지 않은 산길을 주욱 따라들어가다보니 이거 영...해가 질것 같다. -_-; 에이. 모르겠다. 인적도 없는 산에서 길잃으면 난감하니 그냥 집에 가자 하면서 차를 돌리는데, 그때였다.

산악용 바퀴로 차체를 잔뜩 높여 위협적인 모습의 소형 트럭이 거칠게 달려와 우리옆을 스쳐 지나다가 갑자기 부르르릉 후진을 한다. 그 기세가 하도 등등해서 약간 움찔하며 달리고 있는데, 순식간에 후진으로 우리를 따라잡는것이 아닌가. 어, 뭐 할말 있나? 어정쩡하게 차를 멈추고, 길을 물어야할지를 망설이고 있는데, 그쪽 운전자, 문을 열고 털썩 내린다. 헉...근데...

흰머리가 무성하지만 등치가 엄청나게 좋고, 등이 굽은 아저씨가 험악한 인상으로 저벅 저벅 다가오는 것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그의 손에 삽이나 도끼, 샷건 같은것이 들려 있는지를 확인했다. -_-; 일단은 없는데...도무지 창문을 열려고 손가락이 버튼을 누를 생각을 안한다. 그 아저씨는 마치 내가 지난 여름에 무엇을 했는지 알것만 같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침을 꿀꺽 삼키며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아저씨 창문을 똑똑 두드린다. 흐어어억.하는 낮은 비명과 함께 감자, 반사적으로 순종적인 자세로 창문을 내렸다.

마..망했다. 어쩌지? 

일단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엄청나게 부자연 스런 미소를 오버해서 지으며 안녕하세요? 라고 했다.

어디 찾아요? 거의 얼굴 근육을 움직이지 않고, 아저씨가 묻는다.

아 네, 자끄 까르티에 국립공원 입구요. 필사적으로 미소지으며 지나치게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목소리에 내가 소름이 돋는다.

너무 많이 왔어요. 뒤돌아 나가서 왼쪽으로 돌아가요. 한 1km쯤 돌아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입구가 보일거예요.

아~네에.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휴우, 나쁜사람은 아닌가 보네. 라고 생각하는데, 오이, 급발진 수준으로 줄행랑을 치며 중얼거린다.

어휴, 완전 쪼그라들었었네. 거기서 봉변당해도 아무도 모르게 생겼던데, 아저씨 왜 저렇게 무시무시하게 생겼냐...

^^; 듬직한 우리 신랑, 내려 맞써 싸우는 객기가 아니라 현명하게 줄행랑을 쳐줘서 마음에 든다. ㅋㅋ

근데, 그 아저씨 생각해보니 좁은 숲길도 마다 않고, 차를 후진해서 길잃은 관광객을 구해준 친절한 아저씬데, 우리가 너무 외모로 사람을 판단했구나. 좀 미안하지만, 정말이지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있다'에 나온 갈고리손 어부같은 느낌이었단 말야.

결론은 몬트리올에서도 느꼈지만 캐나다 사람들은 친절하다. ^^;

어쨌든 아저씨 덕분에 입구를 찾았는데, 입구표지가 커브를 50미터 남겨두고 써있는것 같다. 대단한 결단력이 아니면 고속도로에서 확 틀어 들어가기가 애매한 위치인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생겼다. 지긋지긋한 공사판 징크스. 또 따라왔다.




Jacques Cartier 국립공원

  


공사판을 지나 한 1km쯤 산속으로 들어가니 드디어 국립공원 입구가 나온다. 이러니 찾을 수가 있나. 어쨌든 오늘은 입구에 사람이 없다. 공지한대로 입장료가 무료인 날이기 때문이다.

 

국립공원에서는 사냥허가가 있으면 정해진 기간에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자기가 잡은 것은 저 저울에 달아서 돈을 내고 사야 하는 것 같다. 한국인인 나로선 내가 잡은것에 돈을 내야 하는것이 이상하지만 스위스도 그렇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한 10km쯤 깊이 들어가니 이번엔 진짜 관광안내소와 넓은 주차장이 나온다.

세상에나. 모르는 사람은 거지같은 GPS로는 절대 찾아오지 못할 길이다. 갈 사람은 제대로된 도로 지도를 마련해서 가시길. 

그곳에 주차를 하고, 새로 지은 (사실 짓고, 있어서 사방 팔방이 다 공사판인) 안내소에서 무료지도를 받아, 왕복 2시간 코스를 가볍게 등산해 주기로 했다. 좀더 거닐고 싶었지만 찾느라고 시간을 다 허비해 버려서 해지기 전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안내소부터 20-30m들어가자 갑자기 시야가 쫙 펼쳐지면서 강이 나타난다. 날이 흐렸음에도 후련한 느낌을 주는 풍경이다.




어렵게 찾은 만큼 최대한 다 즐겨줘야 한다는 심정인지, 화장실조차 열심히 구경하는 오이군.



그 옆에 있던 안내 지돈데...이것 역시 도로의 중앙선처럼 한번 그렸으면 끝.

'지워진 지도는 관광객 사정. 우리 사전에 보수란 없다!' 라고 외치는 듯.




6월의 싱그러움을 하나가득 머금은 숲과 녹조가 짙어 암녹색을 띄는 물덕분에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런데, 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빠른 물살에 색이 하도 검어서 은근히 무섭다. 맑은 날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분위기를 낼 것도 같다. 이 검은 물은 숲의 부유물들이 부식되어 녹조가 많이 생겨서 그런것인데, 물이 더러운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도 뭐 별로 수영을 하고 싶은 욕구는 안생기는 구만.




숲으로 이어지는 나무다리 위에서 행복한 오이와 감자. 어렵게 찾아서 더 좋았는지도...




바로 이 비오는 날에도 지지 않는 싱그러움 때문에 나는 6월의 숲이 좋다.




요녀석은 도시의 길든 다람쥐가 아니라 진짜 야생성이 가득한 다람쥐다. 사진 좀 찍자고 아무리 불러도 다가올 생각을 안한다. 어찌나 빨빨대던지. 안그래도 어두워서 촛점이 안잡히는데...

이런 날씨면 20배 줌을 가져서 내게 사랑받고 있는 캐논파워샷의 한계에 부딛힌다. 역시 DSRL을 가져왔어야하나...쿨럭. 연장탓.




녹색 시내.

이름모를 꽃들이 숲속에서 시내를 이루고 있다. 밤중엔 영화 '아바타'에 나온 외계 숲처럼 불이 켜지지 않을까?




나선형 버섯 계단. 요정들이 성으로 쓸것만 같은데? 잘 들여다 보니 개미와 거미들이 성으로 쓰고 있다.



   

봄비에 떨어진 꽃잎이 나뭇잎에 살포시 붙었다. 꽃잎위에 방울 방울 맻힌 이슬이 반짝 반짝. 비오는 날만의 매력이다.




님은 먼 곳에.

여행중엔 사진찍느라 바쁜 나는 항상 성큼 성큼 걸어다니는 오이의 뒷모습밖에 볼 수가 없다. 로맨틱한 님과의 산책은 우리에겐 머나먼 이야기. 오이는 일정한 스피드로 계속 걷지 않으면 피곤해진다고 하고, 나는 사진을 2미터 간격으로 찍지 않으면 기운이 빠진다.




금강산은 언제나 식후경.

작은 계곡에서 휴식을 취하며 길가의 구멍가게에서 산 쿠기하나 입에 물었으나 맛은 그냥 그렇다. 오이군은 틈틈히 군것질을 하는 나를 늘 신기해 한다. 난 밥때 말구 잘 안먹는 오이군이 더 신기하다구!




오솔길 중간에 흐르는 계곡을 건너며 기분이 좋아져서 감자, 헤벌레. 나 사진 찍어줘~

오이군은 마누라의 사진 열정에 질려서인지 조르지 않으면 도통 사진을 안찍어준다. 아닌가? 내가 늘 카메라를 점령하고, 쉴틈없이 셔터를 눌러대고 있어서 카메라에 손 뻗을 기회조차 없어서 그런건가?




오오옷~! 이게모야 이게모야 이게모야~ 

무스를 못본 아쉬움에서 헤어나올 무렵 이런것을 발견했다. 무스 발자국. 내 손만한 크기인데, 정말 여기 이런 녀석이 산다는 얘기. 

크르르르르...~ 어딨어, 어딨어? 배고픈 곰처럼 크르르 거리며 찾아다녔는데, 결국 못봤다. 생각해 보니 크르르 거리진 말았어야 했나보다. 듣고 도망간듯.




이곳은 숲에 나무들이 빽빽하지 않고, 가늘어서 빛이 많이 들어온다. 무언가 긍정적인 에너지가 샘 솟는 듯한 느낌?




가자, 우리의 야채 사육장으로

 


즐거운 산책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여기 저기 다람쥐들이 뽈뽈뽈 돌아다닌다. 길을 건너려고 두리번 거리는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씽씽달리던 차가 조그만 저녀석을 못볼까봐 조마조마,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람쥐를 위해 마음속으로 저런 눈에 잘 띄는 횡단 보도를 하나 그려줬는데, 다른 운전자들 에게도 보였으면 좋겠다. 담엔 진짜 밤에 몰래 페인트 들고 가서 그리고 올까봐...(^_^;;)

 

 

Tip. 캐나다의 국립 공원에 방문할 예정인 사람은 국립공원 홈페이지를 체크 하세요. 가끔 입장료가 무료이거나, 무료 주말 가이드 하이킹, 야간 하이킹, 수달 서식지 찾아 다니기 등의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저 무료 야간 하이킹과 수달 쫓아댕기기가 느므느므 하고 싶었는데, 우리의 퀘벡시 일정은 여기서 끝이었으므로 안타깝지만 못본척. (-_-;) 다른 주의 국립공원 이벤트를 기대하며 몬트리올로 출발!

www.pc.gc.ca/eng/index.aspx

 

 




돌아오는 길엔 빗발이 점점 굵어져서 차창에 구멍 뚫리는줄 알았다. 내가 운전할까 라고 말할뻔 했는데, 빗발을 보니 안하길 잘 했다. 야간 빗길 운전은 소심한 감자에겐 번지점프 만큼이나 심장떨리는 일.


몬트리올 가까이 보니 비오는데 헤매고 다닌 보상처럼 환상적인 햇살이 웅장하게 펼쳐 졌다. 천지창조 뭐 이런게 생각나더라...

 



드디어 저어~ 멀리 보이는 Mont. Royal 산. 몬트리얼(Montreal)이란 이름은 원래 Mons realis 라틴어로 왕의 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산의 이름은 현대 불어로 몽 로와이얄(Mont.Royal), 도시 이름은 라틴어에서 살짝 변형된 불어로 몽 레알(Mont.Réal)이 되었는데, 이것을 영어식 발음으로 몬트리얼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난 몬 레알(réal)이래서 진짜 산이란 뜻인줄 알았지뭔가. 납작하고 작은 산더러 진짜 산이래서 쪼끔 비웃었다. 사람은 역시 알아야 쓸데없이 무식하게 비웃는 일을 줄일 수 있나보다.




즐거운 주말 여행은 끝, 우리는 다시 냄새나는 사육장으로 고고씽~

귀여운 Fiat 도 안녕~ 우리는 다시 검소한 배낭여행자의 신분으로 컴백. (^_^)


※ 여행일자 : 2011.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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