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산책으로 만나는 절대 가볍지 않은 풍경

앞오름? 아부오름? 아보롬? 그게 그거라고?


이번 제주 여행은 바다보다 오름 같은 내륙의 매력에 취해 보기로 작정하고 떠났던지라, 다랑쉬오름을 갔다 오는 길에 또 다른 오름 하나를 둘러 보기로 했다. 오름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높이가 다양해서 여행의 짜투리 시간에 맞는 소요시간을 가진 것을 쏙쏙 끼워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이재수의 난과 연풍연가를 촬영했던 아부오름도 오르는데 약 10-15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아, 주변을 여행하고 남는 시간에 가볍게 둘러보기 좋다. 그러나 짧은 소요시간은 그 아름다운 정도와는 전혀 별개의 이야기. 10여분의 등산으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니...이것이 바로 제주도로구나.


지난 이야기 | 오름의 여왕 다랑쉬 오름의 풍경 감상하기


.



난 누구인가 우리 여긴 어딘가

시간을 잊어 버리는 공간


아부오름은 다랑쉬 오름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다. 그런데, 어디에도 오름으로 가는 표지판이 없구만 네비가 목적지에 도착했다며 안내를 종료한댄다. 이 친구가 정신이 나갔나 의심하며 주변을 둘러 봤더니 갓길에 자동차 두대가 서있다. 음...맞는건가? 주변에 주차장도 없어서, 우리도 그냥 갓길에 차를 댔다. 텅빈 도로. 운전을 처음 배웠을 때 제주도에 살았더라면 참 좋았을 뻔 했다. 막 달리며 속도감 익히기에 딱 좋아 보이네. ^^; 그런데, 오름의 입구에는 우리가 찾던 아부오름대신 앞오름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는게 아닌가?

으잉? 여기가 아닌게벼? 이상하다. GPS가 역시 맛이 갔구만...



 입구에 꽃들이 화사하게 인사를 건넸다. 어여쁜 꽃잎 뒤로 날카로운 가시를 숨기고...


잠시 멈칫 하다 입구에 쓰여있는 설명을 읽어보니 이 오름이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모양이다. 다랑쉬오름도 월랑봉이라 표기해 놓은 지도가 있던데, 아부오름도 송당마을 앞에 위치하고 있어서 앞오름이라 불리기도 한다고 했다. 굼부리(분화구)가 둥글게 파여 있는 모습이 아버지가 듬직하게 앉아 계신 모습같다고 하여 예로부터 압오름아보름 즉, 아부오름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따라서 이곳이 우리가 찾던 그곳이 맞다 ^^



뭐 하긴, 그 오름이면 어떻고 다른 오름이면 어떠라. 풍경이 이렇게 멋진데, 그냥 오르면 되지.

해가 벌써 뉘엿 뉘엿 지는 중이라 은은한 저녁 햇살이 낭만을 가득 쏟아 냈다. 아, 물론 장소가 멋지니 이런 햇살이 빛을 발하는 거겠지만.



오르는 길은 아주 단순하다. 향긋한 소나무 향이 머리를 맑게 해 줘서 인지, 길이 직선으로 쭉 뻗어 있어서 인지 별로 힘들이지 않고, 금새 정상에 다다랗다.

아부오름은 사유지인지라 예전에는 입구가 철조망으로 막혀있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목장의 소가 나가지 못하도록 좁은 나무 길로만 바꿔 놓았고, 누구나 들어갈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었다.



높이가 바닥부터 겨우 51m밖에 되지 않는 산인데도 주변에 높은 지형이나 건물이 전혀 없어 확 트인 풍경이 눈 앞에 쫘악 펼쳐 졌다. 와~ 이런 풍경은 힘들여서 높은 산에 올라야만 볼 수 있는 건줄 알았는데, 이거 이래도 되는거야?



저편으로는 목장의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누렁이들이 얼룩 덜룩 젖소로 바뀐다면 스위스라고 해도 믿겠네. 오이군도 집생각이 나는지 이곳이 매우 마음에 든다고 한다. 이곳이 집에서 가까우면 매일 산책을 나올 것 같다고 하는데...음. 이런 풍경이 흔하게 펼쳐졌던 스위스에서도 매일 산책한 적 없건만, 어째 신빙성이 좀 부족한 듯. ^^



아부오름이 더욱 신기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분화구 안쪽에 둥그렇게 심어진 삼나무 때문이다. 뭔가 성스러운 느낌도 들고, 신비로운 힘이 깃들어 있을 것 같은데, 분위기 깨지게도 자연스럽게 난게 아니고, 영화 촬영을 위해 저렇게 심은거라고 한다. 신비로움이 반감됐지만 뭐 어쨌든 그래도 멋진 것만은 틀림없다.



둥그렇게 심어진 삼나무 안쪽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길도 딱히 없는데 가파르고, 아래로 내려가니 수풀이 생각보다 우거져서 재빨리 포기했다. 대신 둘레를 따라 한바퀴 돌기로 했다. 군데 군데 의자가 놓여있어 평화롭게 앉아 하염없이 낭만을 즐기기...라기 보다는 멍때리기에 좋아 보인다.

실제로 몇몇의 사람들이 나무 사이 사이에 드러누워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는데, 커다랗게 음악을 틀어 놓아서 아쉬움을 자아냈다. 멋진 풍경에 좋아하는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싶은 건 이해하지만, 이어폰을 꽃고 듣는게 맞지 않을까? 구태여 자기 취향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을텐데...

아름답고 밝은 풍경에 애처롭게 발라드가 울려 퍼지는게 거슬려서 멀리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멍때리는 컵셉 1


원래는 잠깐 올라서 구경하고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었는데, 너무 멋진 풍경에 홀려 우리도 모르게 오름을 한바퀴 돌고, 벤치에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시간이 흐르는지, 내가 한국에 있는지 스위스에 있는지도 분간이 가지 않는다. 뭐 어디면 어떻고, 몇시면 어떠라. 오름은 시공감을 상실하는 공간인 듯 하다.



멍때리는 컨셉 2


이번의 두 오름 트레킹으로 우리는 그동안 잘 몰랐던 제주의 매력을 200%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오름 정복 프로젝트를 마음에 품어 본다. 368개라는 제주의 모든 오름에 다 올라 보리라! 

일단 세개 성공~ ^^ 

(어떤 이들은 오름의 갯수가 그보다 더 많다고도 하네요. 뭐 어쨌든 알려진 368개라도 다 올라 보면 좋겠습니다. 하루에 한개씩만 올라도 1년이 필요한데 말이죠 ㅎㅎ)



오름 정복 프로젝트 스타트!

여행날짜 | 2015.04.26


아부오름의 낭만적인 풍경 즐겁게 감상하셨나요?

하트를 꾹 눌러 글쓰는 손가락에 힘을 실어 주세요 ^^

신고

©

모든 사진과 게시글 내용은 포스팅 URL 링크 공유만 가능합니다. 스크랩, 복제, 배포, 전시, 공연 및 공중송신 (포맷 변경도 포함) 등 어떤 형태로도 토종감자 수입오이의 세계여행 블로그 소유자, 심상은에게 허가를 받지 않고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사용허가 신청방법은 다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용허가신청방법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