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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 평범해서 소중한 일상
3, 4 월 일기 : 봄날의 비행, 그리고 자가격리의 추억
2020. 7. 18. 14:46

사월은 잔인한 달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 토머스 엘리엇의 황무지 中

 

4월은 잔인하다 하던데, 올해 우리도 그 잔인함을 제대로 맛보게 되었다.

3월말 한국의 코로나 상황가 정점으로 치닫자 거의 전세계에서 한국 체류기록이 있는 사람을 거부하는 바람에 우리가 전세빼고 야심차게 준비했던 세계여행도 그렇게 올해 3월 마지막 주에 어정띤 끝을 보게 된 것. 

 

사실 뭐 나는 그전까지 한국에 있질 않아서 우겨보면 어찌어찌 다른 국가로 들어갈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체류기록과 관계 없이 그냥 한국여권 소유자를 무조건 막아서 대사관 부르고 난리였다는 무용담들이 들려왔고, 우리 비행기편이 취소가 되서 재 예약을 했는데 그게 또 취소되는 일이 계속 생겼으며, 무엇보다 행여 코로나에 걸렸을 경우 한국은 어찌어찌 살려주던데, 다른 나라는 우리같은 외국인 여행자 따위는 거들떠볼 여유가 없어 보이더라. 그래서 결국...

 

3월 마지막 주,

몰디브의 눈부신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숨을 한번 푸욱 쉬고,

추후 몇달간의 일정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ㅠ_ㅠ

 

2020년 이동 일정
아이슬란드 2주 - 한국 한달 - 족자카르타 한달 - 자카르타 2일 - 방콕 2일 - 몰디브 2주 - 스리랑카 10일 - 쿠알라룸푸르 두달 - 랑카위 한달 - 푸켓 한달 - 코사무이 한달 - 방콕 한달 - 싱가폴 1주 - 발리 네달

2021년 이동 일정
북해도 2주 - 한국 한달 - ...

 

▲ 다른 해에는 미리미리 표를 예약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몇주동안 잠못자고 부지런 좀 떨어놨구만 몰디브 이후 모든 항공권들이 다 취소되어 버렸다...-_-; 에어아시아가 환불을 잘 안해주는 항공사라 전체 다 날리나 가슴 졸였는데, 그나마 모두 크레딧으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불행 중 다행

 

 


 

3월 18일

인생은 타이밍, 파란만장 한국 가는 길

 

3월 말은 한국의 코로나 상황이 정점을 찍었고, 유럽이 뒤늦게 코로나 중심지로 급부상하는 시기였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한국, 이탈리아, 중국, 이란 체류기록자들에게 공항문을 닫아버렸고, 수많은 항공편이 취소되버렸다. 그래서 예전이면 직항으로 갈 수 있었던 몰디브에서 어이없게 저 멀리 카타르 도하에서 환승을 해가며 귀국길에 올랐다.

 

자카르타에서 몰디브로 갈 때까지만 해도 공항에서 마스크 쓴 사람은 우리 이외에 한두 사람 정도 있었는데, 돌아 올 때는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 와중에 오이군에게 셀카 찍을 때는 나보다 살짝 앞으로 가라고 했더니 아예 뒤로 감. -_-; 예의없는 외국인 같으니라고...

 

뭐 지금 돌아보면 어차피 4월부터 전세계 국경이 다 막혔고, 일부 국가는 자국내 이동도 제한해서 다른 나라에 힘들게 들어갔더라도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을테니 제때 잘 돌아왔지 싶다. 그러나 저때는 한국, 중국, 이탈리아, 이란만 통제하던 때라 오랫동안 야심차게 준비한 세계여행을 중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무지하게 속이 상하더라. 당시 울나라를 요주의 국가로 끌어내린 신천지가 어찌나 원망스럽던지... -_-; 

 

 

 

 

몰디브 - 카타르(도하, 환승공항) 비행기는 한가해서 다리 긴 잠탱이 오이군이 드러누워 오는 호사를 누렸는데...

 

카타르(도하) - 한국행은 유럽 국경 봉쇄 하루 전날이라 유럽에서 급 탈출하는 사람들로 비행기가 만석이었다. 게다가 유럽 상황이 심상치 않자 탑승객 중에 우비를 입은 사람과 안구 감염을 우려해 물안경을 쓴 사람까지 있어서 위화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다들 앉기 전에 알콜 티슈로 비행기 좌석과 등받이, 테이블 등을 구석구석 닦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

 

몰디브는 휴양지다보니 분위기가 여유로와서 코로나의 심각성을 인터넷으로만 접했지 실제로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몰디브 공항에 도착하자 평범한 겉모습 뒤로 은근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근데, 이때 우리가 주변 국가들의 국경 봉쇄에 따라 급히 일정을 계속 바꾸느라 얼마나 정신이 나가 있었냐면, 오이군이 한국에 90일 무비자로 입국하려면 한국을 3개월 이내에 떠난다는 증거로 출국 비행기표가 있어야 체크인이 되는데, 넘 정신이 없어서 그만 한국 입국표만 사고 출국표를 구입하지 않았던 거다. 기본중의 기본인데, 표를 전날 너무 급히 사느라 몰디브 공항 체크인 카운터에서 오이군에게 한국 출국 티켓을 요구할때서야 아차싶었다.

 

아, 이런 젠장! 어렵게 결정한 한국행인데, 우리 못들어가는 건가...

(물론 나는 한국인이니 출국 티켓이 없어도 들어 올 수 있지만 오이군은 계속 외국에 있었으므로 결혼비자가 만료된 상태였다. 그래서 일단 급한대로 90일 무비자 입국하려 했던 것.)

 

갑자기 머릿속이 하예졌다. 

일단 카운터 옆으로 빠져나와 급히 오이군의 한국 출국 티켓을 검색하는데, 당사자인 오이군은 나보다 더 놀랐던지 검색도 못하고, 손가락을 버벅버벅. 명색이 프로그래머인데, 인터넷 검색을 다 더듬네...

10여분의 폭풍검색 끝에 내가 한국-방콕행 티켓을 구입하는데 성공해서 오이군을 무사히 체크인 시킬 수 있었다.

(어차피 한국 도착 후 결혼비자를 신청하여 계속 머무를 예정이어서 출국 티켓은 사실 무의미 했다. 그냥 표한장 날릴 각오를 하고, 아무데나 가는 제일 싼 것으로 구입한건데, 나중에 그 표도 항공사측 취소되어 전액 환불을 받았다. 아싸아~? 좋은 것 맞지? -_-; )

 

 


 

3월 19일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체온측정과 방국국가기록 제출, 자가검진표 작성, 자가검진 앱설치를 위해 기다려야 해서 입국 줄이 매우 길었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나면 이렇게 검역 확인증을 발급해준다. Free to GO~ 이때는 해외입국자 자가격리시행 전이라 그냥 알아서 집에가면 끝 

 

아, 인천공항.

오이군이 항상 세계에서 제일 좋은 공항이라고 칭찬하는 공항이다.

산뜻하고, 깨끗하며, 입출국 안내가 명료해서 좋은 곳.

 

근데, 내 평생 공항이 이렇게 텅~빈 모습은 처음 보았다.

우리가 타고온 비행기와 다른 곳에서 온 비행기 한대, 이렇게 공항 전체에 단 두대만이 덩그러니 도착해서 적막을 깨고 있더라. 활주로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기들만 휴식중이었고, 우리가 타고온 카타르 항공이외의 해외 항공사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2월, 아이슬란드에서 한국에 들어왔다가 먼저 코로나가 퍼진 태국행을 취소하고,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로 경로 변경. 거기서 한달 조금 못지내다가 다시 자카르타 여행과 방콕 여행을 급 날려 먹은 후 가까스로 몰디브 입국. 거기서 다시 스리랑카 행을 취소하고 바꾼 말레이시아 행을 또 취소 한 후 한국으로 들어오기까지 겨우 5-6주가 걸렸다. 근데, 그동안 얼마나 정신이 없었던지 공항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5-6개월을 쉬지 않고 걸어다닌 것 처럼 온몸의 진이 쪼옥 빠져버리더라.

 

 

 

 

진빠졌을 땐 역시 한식! 인도네시아 밥이 아무리 맛있어도, 몰디브 올 인클루시브 리조트 음식이 아무리 화려해도, 역시 내입맛엔 된장국이 쵝오다! 근데, 오이군도 한식을 먹어야 속이 풀린다고. 이 무서운 한식의 중독성이라니... ^^;;

 

항상 공항에 오면 우리는 세레모니처럼 버거킹 햄버거를 먹는데, 이날은 공항내 문 연 곳이 편의점 두개랑 카페하나 음식점이 두개인가 밖에 없더라. 그나마도 손님이 없어서 파리날리고 있는데, 우리 앞에 있던 커플이 마스크 벗고 밥먹는 것이 걸렸는지 음식점 앞에서 한참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안돼겠다. 기절할 것 같다. 밥먹고 가자.' 하길래 우리도 슬그머니 따라 들어가 멀치감치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저때만해도 해외입국자 자가격리가 의무도, 권장사항도 아니어서 음식점이 열려 있는 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전부 닫았다는 듯.

 

밥을 받는 순간 코로나고 뭐고 다 잊은채 잠시 무아지경에 빠져 된장국을 흡입하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 두명이 요란하게 떠들며 가게로 들어섰다. 아닛, 근데, 이 사람은 아까 도하(카타르)에서 자기 열나고 기침난다며, 아무래도 자기는 코로나에 걸린 것 같다며 주절주절 떠들던 바로 그 아저씨 아닌가! 마스크도 턱으로 내려쓴 채 공항이 노래방인양 고래고래 소리지르듯 옆 친구에게 '내가 걸렸으면 너도 걸린거야. 아놔, 진짜 큰일이네. 난 아무래도 걸린 것 같아. 목아파!' 라고 계속 떠들던 그 사람...18$&@*!*@%&18* 

젠장. 저 사람 때문에 비행기를 타지 말까, 승무원에게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엄청 고민을 했는데, 좌석이 멀리 떨어졌는지 안보이더니 여기서 딱 마주치네. 아니 몸이 안좋으시면 그냥 집에 가시지, 밥은 왜 또 드시고 그러신대요...ㅠ_ㅠ

(현재는 한국행 비행기 타기 전에 체온 측정을 해서 열이 있으면 탑승을 못한다. 그리고 입국자는 공항에서 배회할 수 없고, 즉시 집으로 가야함. 그러나 저때는 그런게 아직 없었을 때) 

 

어쨌든 이때도 코로나의 엄청난 전염력에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쉴새없이 침튀기며 떠드는 아저씨를 흘긋거리며 밥을 끝까지 싹싹 긁어 먹고 나왔다.

 

 


 

3월 25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한국에 왔으나 한국이 아닌 것 같고...

 

우리는 해외입국자 자가격리가 의무화되기 전에 들어와서 자가격리가 의무는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 공항에서 누굴 마주쳤을지 모르니 가족, 친구들도 안만나고, 공항 근처 영종도에 작은 숙소를 얻어 두문불출하며 자진해 자가격리를 하고 있었다.

 

근데, 사실 말이 자가격리지 우리는 원래 10년째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여행할 때 이외에는 집 밖에 잘 안돌아 다니는 전형적인 집순이, 집돌이라 평소 생활과 크게 다른 점이 없더라 ^^; 게다가 여독이 풀리지 않아 암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이다보니 오히려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는 좋은 핑계 거리였달까?

(평소에 우리는 너무 안나가는 편이라 '오늘도 밖에 한번도 안나갔네...' 하며 죄책감을 느끼는 날이 많다. 그런데, 자가격리는 넘나 좋은 '안나갈 핑계'거리였던 것!)

다만 홍길동도 아닌데, 간만에 한국에 왔건만 가족들을 찾아갈 수 없어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어머니를 어머니라 직접 뵙고 부를 수 없는게 좀 불편했을 뿐.

 

그런데, 귀국 일주일 후 전화 한통이 걸려 왔다.

 

우리가 해외입국자라 밖에 안나간 것도 있지만 어차피 우리 숙소 주변에 상권이 전혀 없어서 뚜벅이들은 마트를 갈 수도 없는 곳이었다. 음식은 전부 쓱배송으로 해결! 땡큐, 이마트!

 

올해는 여행을 좀 더 체계적으로 해보고 싶은 마음에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을 미리 했음은 물론, 난생 처음 가이드북도 잔뜩 샀었다. 그런데, 진짜 방콕은 못가고 방구석에서 방콕하며 가이드북만 들척이며 지냈다...

 

부재중 통화 1통

응? 뭐지.

모르는 번호라 스팸인 줄 알고 다시 걸지 않았다.

그런데, 연이어 문자가 도착했다.

자가격리 관련하여 전화 드립니다. 전화 주세요 - 전북보건소

 

자.가.격.리?

왜? 내가...?

(이때 즈음 미국 입국자는 의무 자가격리가 시작되었고, 유럽 입국자는 자가격리가 권장사항, 우리 같이 그 외의 지역에서 온 사람은 아무 이야기가 없던 때라 보건소에서 전화를 할 이유가 없었다. 전화가 왔다는 건 뭔가 심각한 일이라는 건데...혹시 그때 그 아저씨?!)

 

잠시 등골이 서늘해지며 긴장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더니, 상냥한 목소리의 여자분이 친근한 전라도 사투리로,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에서 확진자가 나왔는데, 전북거주자라 전북 보건소에서 연락을 주는 거며, 우리가 그 사람의 앞뒤좌우 세번째 줄 안쪽에 포함되어 확진자 접촉자로 분류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접촉자니 오늘부터 의무 자가격리라며...

두둥...!

그순간 그 상냥한 목소리가 저승사자의 목소리로 들리며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하는데, 아...내가 또 이렇게 삶에 대해 집착이 심한 줄 몰랐네... -_-;

(결국 그 아저씨는 확진자가 아니었던 것 같다. 뉴스 검색해보니 같은날 해당비행기 관련 확진자는 아일랜드에서 유학했던 여학생 하나더라. 근데, 하필 왜 내주변에...-_-;)

 

What? 접촉자? 그게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래요?

 

몸조심 하라는 지인들의 안부에 걸리면 낫겠지, 나는 워낙 튼튼하니까. ' 라고 이야기해왔는데, 확진자 접촉자라는 말을 듣는 순간, 헐, 이거 조금 무섭더라.

내가 걸렸다는 것도 아니고 근처에 앉았다는 건데,

기내식 먹을 때 빼고는 마스크 꼭 쓰고 있었는데,

그 긴 비행동안 혹시 몰라 화장실도 한번 안갔는데,

비행기는 기류가 아래로 흐르는 에어커튼이 비말을 아래로 떨어뜨리다보니 기내전파는 잘 안된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세번째 줄 안쪽이라잖아!

확진자가 정확하게 어디 앉았는지는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내가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ㅠ_ㅠ

 

게다가 내가 자진해서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있을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누가 못나가게 하니까 갑자기 막 맑은 공기가 마시고 싶고, 창문 밖으로 들어오는 공기랑 건물 밖에서 마시는 공기랑 막 다를 것 같고...-_-;

 

그러나 전화 이후의 자가격리가 가장 힘들었던 이유는 그냥 밖에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바로 자가격리자는 방과 화장실을 따로 써야한다는 것!

즉, 오이군과 내가 둘다 자가격리자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각방을 써야 하는 것이었따! 두둥 둥 둥!

 

2m 떨어지라!!!

 

자가격리자는 밥도 혼자 먹어야 하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화장실에 갈 때 처럼 거실로 나와야 할 땐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가족간의 대화도 최대한 자제해야 함은 물론. 그래서 일주일 간 우리는 한집에서 카톡으로 대화하는 사이가 되었다. =_=;

 

(우리는 입국 후 일주일, 즉 확진자 접촉 후 일주일 지난 뒤에 의무 자가격리자가 되었기 때문에 격리 기간은 이주가 아니라 일주일 이었다. 외로운 독방생활이 일주일이니 그나마 다행? 귀국 후 자진해서 집콕하고 있었던 것도 민폐끼치지 않았으니 참 다행...근데, 오이군과 나는 이미 일주일동안 한침대서 자고, 한솥밥 먹었는데, 이제와서 둘을 갈라 놓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인가? 하나 걸렸으면 당연 옮겼겠지...그러나 보건소 측은 간혹 한명이 발병을 해도 가족 중 옮기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그냥 오늘부터라도 떨어져 있으라고 하더라. 힝...ㅠ_ㅠ)

 

상상했던 이상적인 자가격리생활 예제컷들

 

자가격리 생활 실제컷. 각자의 길 -_-;

 

 

자가격리 전화를 받은 날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놀래서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나가있었 던가보다. 저녁먹으려고 밥솥에 밥을 했는데, 씻기만하고, 물을 안부은 채 취사를 눌렀어야? 먹을라고 열어보니 쌀이 구워져 있더라. 헐. 쿠쿠에 밥 구워 드셔보신 분?

 

 


 

3월 26일

음성이면 문자가, 양성이면 저희가 갑니다 #찾아가는서비스

 

의무 자가격리가 되면 격리 첫째날, 격리 해제날 이렇게 두번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연락받은 다음날 아침 우리도 검사 예약이 되었는데, 우리는 뚜벅뚜벅 뚜벅이라고 했더니 대중교통 타지 말라고, 영종도 보건소에서 황송하게 구급차까지 보내주셨다. 근데,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아니니 마스크 쓰고, 집 앞에 나와서 기다리라고 하더라.

 

그렇게 처음으로 우리 집 바깥을 보게되었는데, 여기 진짜 오묘하다. 건물이 한 열채쯤 모여 있는데, 그 주변은 황무지고, 한쪽으로는 양방향 4차선으로 된 넓은 도로가 있는데, 차가 단 한대도 지나가질 않는다. 우째 서울 가까운 곳에 이렇게 터엉~빈 유령마을 같은 곳이 있을까나...건물들은 되게 새건데, 주변은 좀비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세기말 분위기가 풍겼달까? 

(나중에 격리 끝나고 동네 구경을 해보니 황무지 인줄 알았던 곳의 대부분은 관리가 잘 안되서 정글같이 변한 공원이었다. ㅋㅋ 아직 개발 초기라 좀 황량한데, 옆에 카지노도 생긴다 하고, 근처에 놀이 동산도 생긴다 하니 10년 후 쯤엔 좋아질 듯 )

 

구급차를 기다리며 덕분에 나는 올해 놓칠 줄 알았던 봄꽃들과 잠시나마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집 앞에 벚나무가 있어서 벚꽃도 보고, 보도블럭 틈에 기특하게 자란 제비꽃과 들판에 점점히 핀 민들레까지. 아, 너희들은 코로나 따위 관계 없이 봄맞이를 할 수 있어서 참 좋겠다.

 

오이군은 참 다양한 한국문화 체험을 한다. 급기야는 구급차까지...근데, 구급차 천정이 낮아요. 오이군 똑바로 앉으면 머리 닿음 ㅋㅋㅋ

 

오. 이곳이 그 말로만 듣던 선별진료소. 도착했더니 내 앞에 한명이 줄서서 기다리는데, 얼굴이 뻘건 것이 열이 나보이고 막 기침을 해야? 흐미. 놀라서 줄 간격이 자동으로 10m 벌어졌다. 바람 방향 계산해서 줄 각도를 조절하고...-_-; / 근데, 날씨는 또 왜 이렇게 미치도록 화장한 것인가. 코로나가 아니라 햇살이 나를 녹여 버리겠다며 위협을 하더라. 집순이 이런 햇살 적응 안되서 셀카 실패... 

 

안내해주시는 분이 일행이랑도 떨어셔 줄서라고 해서 오이군과 또 삼만리 떨어져서 차례를 기다렸다. 근데, 진짜 여기서 저 복잡한 옷 입고 고생하시는 분들 보니 #의료진덕분에 소리가 절로 나온다.

 

검사는 매우 간단했다.

호명을 해서 텐트 안으로 들어가면 일단 알콜 젤로 손을 소독하라 한다.

항상 의사선생님을 보면 일단 긴장되기도 하고, 요즘 바쁘실 것 같아서 빨리 하려고 알콜젤을 막 정신없이 발랐더니 의사선생님이 진정하고, 천천히 해도 된다며 웃는다. 그때서야 긴장이 좀 풀려 의사선생님 눈을 봤는데, (방호복 입고 있어서 눈만 보임) 아...굉장히 어린 의사선생님이시구나...인턴이거나 의사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매우 앳된 얼굴이 친절하게 웃고 있더라. 근데, 그 친절한 눈을 보니 뭔가 애잔한 느낌이 들었다. 전쟁터의 최전방에서 싸우는 소년병과 눈을 마주쳤을 때의 그런 느낌.

 

검사는 세가지인데, 첫번째는 가래 모으기였다.

혼자 구석에 벽 바라 보고 앉아서 시험관에 컥컥거려 가래를 모아야 한다. ^^;; 

근데, 뭐 가래가 아무때나 그렇게 나오나. 침이 아니라 저 깊은 안쪽에 있는 가래를 끌어 올려보라는데, 증상이 있어서 온게 아니라 가래가 없다보니 잘 안나온다. 처음엔 소심하게 컥컥 거리다가 나중에는 크어어어억, 캭캭 난리를 치게 되더라는... 흠흠.

다 모으고 나니 의사선생님과 간호사 언니 얼굴 보기가 갑자기 민망하네.

 

두번째는 목구멍 찌르기.

의사선생님이 스틱같은 것을 목 깊은 곳에 밀어 넣고, 살짝 긁어 점액을 모으는 것으로 별 느낌 없다.

 

마지막으로는 콧구멍 찌르기.

역시 스틱같은 것으로 콧구멍 안쪽을 긁어 점액을 모으는데, 왁. 뭔가 맵고, 따갑고, 짧은 순간인데, 찔린 콧구멍과 같은 쪽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찔끔 솟아 나오는 강렬함이 있다. 딱 수영장에서 코에 물들어간 느낌이지만 워낙 짧아서 할만하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봤던 '음성이면 문자가 자고, 양성이면 저희가 가요.' 라는 안내도 해주셨다. 

친절한 대한민국, #찾아가는서비스 ^^;;

 

마지막으로 양팔 벌리고 서면 소독 스프레이를 쫙쫙 뿌려주시는 것으로 검사는 마무리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손에 자가격리 지원 키트도 들려줬다. 

격리 키트에는 전자체온계(좋아서 탐났는데, 격리동안 매일 체온 보고 하고, 격리가 다 끝나면 수거해간다), 알콜젤(지금도 잘 쓰고 있음), 소독 스프레이(이마트 물건 배송 받으면 이거 쫙쫙 푸려서 물건을 다 소독해서 저장하곤 했다), 일회용 마스크(KF94는 아니라 많이 쓰진 않고, 격리 끝나고 집앞에 쓰레기 버리러 내려갈때 씀), 가글(혹시 모르니 가글 자주해서 목구멍을 깨끗이 하라며), 비누(손도 자주 씻으라고), 반창고 (이건 왜...?)가 들어 있다. 

 

그리고 생각치 못한 것이 의료 폐기물 쓰레기 봉투 였는데, 격리 기간동안 우리집에서 나온 쓰레기는 다 여기다 모아뒀다가 만약 우리가 확진자가 되면 의료 폐기물 수거 업체에서 쓰레기를 따로 수거해가고, 만약 우리가 음성이라 그냥 격리 해제되면 일반 쓰레기 봉투에 한번 더 담아 배출하라고 한다.

쓰레기까지 생각하는 체계적인 관리에 쫌 감동.

 

 


3월 26일 - 4월 2일

확찐자 사태의 서막 

 

뉴스에서는 확진자 접촉되서 자가격리되면 레토르트 식품이나 라면같은 음식키트도 지원해 준다고 들었는데, 우린 그런건 없었다. 뭐 어차피 수퍼마켓에서 주문하면 현관문 앞까지 배달해주는데, 밥을 못해먹어서 문제 될 건 없으니 상관은 없지만 그냥 뭘 주는 것이었을까 궁금했을 뿐.

 

초콜렛의 나라 스위스에서 온 오이군이 향수병을 느낄까 싶어 초콜렛 퐁듀도 해줬다...는 핑계고 내가 먹고 싶어서 하루가 멀다하고 초코 퐁듀 ㅋㅋ

 

일단 집에 오자마자 일주일치 식량과 생필품을 주문했다.

근데, 면역력을 기르려면 잘 먹어야 한다는 핑계로 격리 기간이 일주일인데, 마치 일년동안 집에서 안나갈 사람처럼 음식을 주문해 버렸네... 집에서 심심하다는 이유로 오전 10시, 오후 4시 하루 두번씩 꼬박꼬박 간식까지 챙겨 먹는 것은 기본.

 

 

 

 

수퍼 푸드 아보카도가 좋다길래 박스로 주문 / 밥을 쪄서 난생 처음 떡을 다 만들어 봄. 자가격리 하래니까 왜 좋아하지도 않는 떡이 다 먹고 싶은건지... 

 

국민음식 짜파구리가 빠질 수 없었다. 근데, 고기를 라면보다 많이 넣어서 이게 짜파구린지 짜장맛 고기 볶음 인지 분간이 잘...^^;;

 

그렇게 면역력을 핑계로 격리기간동안 미친 식탐을 폭발시키고 있었다. 우리가 나잇살 찔 나인줄은 생각도 못하고...

 

 


 

4월 3

위로의 기술 

 

그렇게 집에서 끊임없이 먹고, 넷플릭스를 보며 구르다 어느날 거울을 봤는데, 내가 폭삭 늙어서 참 못생겨 보인다.


- 여보야, 나 요새 갑자기 팍 늙은 것 같아. 거울 보기가 싫다. 흑흑.
+ 아냐, 자기. 갑자기 늙은거 아냐. 계속 조금씩 늙고 있었어. 본인은 원래 맨날 봐서 잘 못느끼잖아.
- ...(감자둥절. 저...저거 위로 하는 거 맞지...?) 

 

 


 

4월 7

안드로메다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어느날은 아주 황당한 이벤트도 있었다.
저녁 먹고있는데, 누가 현관문 번호를 틱틱 시도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마스터 키가 있었고, 밖에 나간 적이 없어서 집주인이 설정해 놓은 키패드 번호를 바꿔놓을 생각을 못했는데, 그 누군가가 갑자가 몇번 시도를 하더니 급기야는 문이 벌컥 열렸다. 밥먹느라 마스크도 안하고 있었건만, 오이군도 나도 넘나 놀래서 번개같이 현관으로 순간이동. 거기엔 우리를 보고 상당히 놀란 집주인이 눈을 꿈뻑이며 서 있었다.
그때였다. 조용하던 오이군이 우뢰와 같은 성량으로 ❝뒤로 가세욧!❞ 하고 소리친건.

나도 깜짝. 집주인은 더 깜짝.

뭔소린지 잘 못알아 들었던 집주인이 뒤로 가지 않자 오이군 재차 소리치며 ❝뒤로 뒤로. 2미터 2미터. 뒤로오~❞

비록 격리 2주는 지났지만 만에 하나 우리가 여전히 코로나 위험인자일 수도 있기 때문에 오이군은 집주인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런거라는데, 키도 산만한 외국인이 뭐라 막 소리치자 집주인은 그냥 마구 놀란 듯. ^^;;;

나는 그 상황이 넘나 웃겨서 왜 문을 따고 들어왔냐고 물을 겨를이 없었고, 집주인은 너무 놀랐는지 연신 죄송하다하더니 허둥지둥 떠나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문자가 왔는데, 우리한테 이 집을 3개월동안 렌트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누가 이 집에 불이 켜져 있고, 사람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확인차 왔다는 것. 헐...이분도 우리만큼 안드로메다시네...집 여러채를 관리하는지라 헤깔렸던 모양인데, 어쨌든 그날로 키패드 번호도 바꾸고, 안전고리도 걸어 놓고 지냈다. 그래봐야 집주인은 마스터 키를 가지고 있겠지만.

 

 


 

4월 9

이 또한 지나가리니

 

테러리스트 아님. 우리 둘다 아주 상큼하게 미소 짓고 있는 중이다

 

이미 일주일 전에 그 훈남 의사 선생님 앞에서 다시한번 캭캭거려 가래를 모아주고, 목과 코를 한번씩 찔린 후, 이번에도 음성이 나와서 공식적인 자가격리 기간은 끝이 났다. 

근데, 우리끼리 뭔가 기분이 조심스러워서 일주일을 더 집에서 머물며 자가격리 삼주를 채우기로 했다. 자가격리가 체질에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체질 인 듯 했으나 역시 삼주 쯤 집에만 있으니 좀이 쑤시기 시작한다. 이제 슬그머니 나가봐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드디어 집주변 탐색 시도!

오왕~ 집 밖은 어느덧 따뜻해 졌구나. 집안은 좀 썰렁한데, 바깥은 따뜻한 봄기운이 가득했다.

우리 집 주변은 허허벌판이거나 오랫동안 관리를 안하여 잡초가 보도블럭을 무성하게 뒤덮고 있는 공원이었는데, 이게 코로나 때는 참 좋더라. 아~무도 없어서 편하게 꽃구경을 할 수 있기 때문. 올해는 벚꽃 못보나 했는데, 이 정글같은 공원에 은근 벚나무가 많더라.

 

근데, 사실 여전히 기분이 뭔가 조심스러웠다. 사람이 하나도 없는 그동네도 돌아다니면 안될 것 같아서 나무 사이사이로 닌자 처럼 숨어다니다가 저 멀리 쑥 뜯는 아줌마가 보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이군이랑 반경 10미터는 될법한 반원을 그리며 그 아줌마를 피해서 지나갔다. 헐. 사람 마주치는 것이 두려운 세상이 왔구나...

 

 


 

4월 10

블랙 앤 화이트

 

검은 마스크는 너무 무서운 것 같아서 하얀색으로 변경. 좀 나은가?

 

요즘 미국에서 인종차별 관련하여 시위가 계속되다보니 일반적인 표현에 색이 들어간 것도 금기시 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마스크 쓰고 셀카를 찍다보니 색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검은 마스크 쓰고 찍다니니 영락없는 테러리스트. 안웃어도 무섭고, 웃어도 무서워 보이는 것이 검정 마스크더라. 그래서 하얀색을 구입했다. ^^;

하얀 벚꽃이랑도 쬐끔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집앞에서 생각치도 못하게 벚꽃도 매화도 겹벚꽃도 놓치지 않고 다 볼 수 있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땐 도심이 아닌 시골구석에 사니 산으로 들로 산책을 할 수 있어서 훨씬 좋더라.  

 

근데, 며칠간 자가격리 끝났다고 관절에 기름칠을 해야한다며 열심히 동네산책을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린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잖아?!

간만에 나와서 그런지 몰라도 왜 이렇게 30분 걸어도 힘이 들던지. 

 

 


 

4월 11

사회적 거리두기가 좋은 이유

 

게임이나 하고, 마스크 얹고 영화나 보고...이게 바로 자가격리를 빙자한 신선놀음

 

한 이틀 바깥 공기 마시고 나니 주변에 대한 궁금증이 사라져서 다시 집으로 기어 들어 왔다. 공식 격리때는 밥도 따로 먹고, 방도 따로 쓰래서 심심했는데, 이제 다시 한솥밥을 먹을 수 있게 되니 밖에 나갈 필요를 못느끼겠더라. 

 

사회적 거리두기기가 그리 나쁘지 않았던 이유 : 매일 너를 온전히 내가 독차지 할 수 있다는 것! >_< 언제나 눈뜨면 온세상에 너와 나, 오직 우리 뿐
결혼 14년 차, 우리집에 깨볶는 냄새가 끊이지 않는 이유 : 가끔 참기름을 들이 부어 줌

 

너와 함께라면 그 어디든 파라다이스 ^^

 

오~ 홈 스윗 홈.

여행을 중단 한 이후에도 여전히 임시 숙소에 살고 있지만 이젠 잠옷 입고 데굴데굴 쉴 수 있는 프라이빗 한 공간이라면 세상 어디라도 우리집 같이 느껴진다. 5년즈음 되니 떠돌이 생활에 불편함을 거의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자가격리를 거쳐, 사회적 거리두기로 접어 들면서 본격적인 #확찐자 의 세계로 발을 딛고 있었다. 체중계에서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