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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 평범해서 소중한 일상
1, 2월 일기 : 그리운 코로나 전 일상풍경
2020. 5. 31. 22:21

❝ 평범해서 소중한 일상 ❞

 

오래전 부터 쓰던 블로그 일상 카테고리 제목인데, 코로나 이후 이 제목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마스크없이 활보하던 복잡한 서울 거리, 북적이는 시장골목, 대화는 고사하고 내 목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는 술집에서 친구들과의 의미없는 수다 한잔...그 지극히 평범했던 모든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진짜 소중한 것들이 대게 그렇듯 이번에도 평범한 일상을 잃고 나서야 그것이 정말 소중했었음을 깨닫는다.

 

불과 두세달 전이었는데, 뉴스에서 이제는 다시 돌아가려면 몇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떠드는 평범한 일상이 문득 그리워져 오늘 아침 스마트폰 사진첩을 뒤적였다. 그러다 깨달은 건 스마트폰으로 순간순간 대충 찍은 사진들속에 데세랄로 각잡고 찍은 사진들 보다 사실은 훨씬 더 소중한 모습들이 가득 담겨있더란 것.

나의 사람들.

나의 일상들.

 

 

그런데, 요즘 가끔 옛날 사진 보다 골똘해 질때가 있다.

❛대체 여기가 워디여? 이건 뭐라고 찍어 놓은겨?❜

특별하진 않아도 정말 잊고 싶지 않은 풍경은 사실 이런 것들인데 시공을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진 사진들이 점점 늘어간다. 블로그가 원래는 이런 일상들을 기억하고 싶어서 시작했던 것 아니었던가. 어쩌다보니 여행블로그가 되어버렸지만 기본 취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 저장고였다. 

그래서 또다시 잊혀지전에 정리해보는 토종감자 2020년 겨울 일기.

 

 

2020년 1월 19일

오이군, 잠시만 안녕. 홈 스윗 홈!

 

1년 4개월만에 돌아온 한국.

세계여행중에도 1년에 한번씩은 한국에 돌아와 가족들과 친구들이 한해한해 늘어가는 나의 주름살에 익숙해 질 시간을 주고 싶었는데, 지구가 너무 커서 동선이 잘 안나온다. 결국 1년을 넘기고서야 지구 한바퀴를 대략 돌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오이군이 세계일류 공항이라며 늘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아빠가 특유의 해맑은 미소로 나를 맞이해 주셨다. 1년 4개월만에 뵈어도 얼마전 뵌 것 같이 푸근한 느낌. 캬, 이런게 바로 가족이지. 음? 근데, 아빠는 1년 4개월이 아니라 마치 2-3년만에 딸을 보는 것 같이 길게 느껴졌다 하시더라. 그런게 또 자식과 부모의 차인가보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아이슬란드에서 영국을 거친 장거리 비행으로 매우 시들한 상태였다. 아빠를 보자마자 차에 누워 자고 싶은 생각에 출구로 질주했는데, 내 여행가방을 뺏어든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어이, 딸! 어디가. 기념사진 찍어야지~

얼굴뿐만 아니라 나의 사진중독증도 아빠에게서 내려온 것이라는 게 증명되는 순간.

 

집에 도착하니 엄마표 김치찌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꺄아~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엄마는 뭐 해놓을까?❞ 하고 물으시는데, 나의 대답은 한결같이 김치찌개다. 장거리 비행뒤에 그것 말고는 먹고 싶은것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그건 신기하게도 오이군도 마찬가지.

 

아, 그러나 이번에는 오이군이 이 김치찌개를 맛볼 수 없게 되었다. 365일 굴딱지 마냥 딱 붙어 있는 재택근무 부부라 간만에 '각자의 시간'을 조금 갖기로 했기 때문. 그래서 이번엔 나는 한국으로 먼저 들어 오고, 오이군은 2주간 체코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게 얼마만에 가져 보는 '나만의 방' 인가!

이렇게 떨어져 있으면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유에, 부모님 여행가신 날 혼자 집 전체를 독차지 한 중딩 마냥 설레이면서도 가슴 한구석은 뭔가 허전하여 보고 싶어지는 그런 오묘함이 생긴다. 요런것도 가끔씩 나쁘지 않은 듯.  

 

 

 

2020년 1월 20일

다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해외에 산 뒤로 종종 생기는 일이다.

한국에 들어 오면 가끔 '우리집' 바뀌어 있다. 우리집은 어렸을때 부터 이사를 참 자주 다녔는데, 그게 지금도 마찬가지이기 때문. 아마 내가 디지털노마드를 핑계로 3개월 마다 나라를 바꿔 이사를 다니면서도 별 불편함 없이 사는 것도 부모님이 어릴때 부터 단련시켜 주신 후천적 방랑벽 덕분(?)인듯하다. 이번에도 내가 없는 사이 가족들이 이사를 가서 새로운 동네 구경을 하게 되었다. 집 바로 뒤에 지방천과 산책로가 있어 부모님과 토란이(엄마의 분신인 개)가  매일 산책하기 좋은 곳이더라. 간만에 나도 부모님과 함께 동네 산책.

수십년만에 느껴보는 부모님과의 한가로운 산책. 봄을 질투하는 겨울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이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가족들과 즐기는 여유에 마음만은 따뜻했다.

 

 

2020년 1월 21일

우리집 막내딸, 토란이

 

 

무언가를 평생 보살피며 사셨던 부모님. 이제 자식들이 다 컸으니 드디어 두분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보살핌'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셔도 될 것 같은데, 그게 그렇지가 않은가보다. 자식들이 커버리자 엄마가 예전엔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시던 개에게 애정을 쏟아 주신다. 주먹만하던 어린 애가 유기견 비슷하게 된게 불쌍했고, 힘들때 마음을 위로해 줬다는 뭐 그런 이유라 하시지만 내가 볼때 엄마는 그냥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보살피는 것이 습관이 되신듯 하다.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 

개를 그렇게 무서워 하셨던 엄마가 이제는 개가 엄마랑 떨어져 있기 싫어한다고 등에 업고 다니시는 것도 신기하고, 늠름하지 못하다며 작은 개는 싫다, 아무리 집에서 키우는 개라도 침대에 올라오는 것은 용서 할 수 없다 하시던 아빠가 이제는 다리위에 개를 얹어놓고 주무시는 것도 참 신기하다.

 

 

2020년 1월 25일

막내이모

 

나는 어렸을때부터 이모들하고 사이가 좋았다. 특히 막내 이모는 나랑 9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서 어릴때는 거의 친언니같이 지냈는데, 크고나서는 얼굴보기가 힘들어졌다. 사업하는 이모도 바쁘고, 나도 한국에 거의 없고 해서 5년에 한번 정도 밖에 못보는데, 이번에 설날을 핑계삼아 이모가 바쁜시간을 쪼개어 집에 놀러 왔다. 언제 만나도 어제 본 듯한 우리 막냉이 이모. 생긴것도 조금 닮아서 어릴때 같이 다니면 친언니냐고들 사람들이 물어봤었는데...이제 이렇게 찍고 보니 이모가 나보다 어려보이네. 우째 이런 일이... -_-; 이건 외할머니 닮은 엄마랑 막내 이모가 가진 특권. 저들은 세월의 공격에도 볼쳐짐이 안생긴다는? 나는 고걸 못닮아서 넘나 아쉽다. 

저녁에는 설날 기념으로 한국온지 일주일만에 남푠에게 내 사진 한장을 보내줬다.

(아참참, 내가 남편이 있었지!)

❝여보, 나는 차 한잔 마시면서 데굴거리고 있어. 자기는 뭐해? ❞
떨어져 있으면 처음 며칠은 싱글 놀이 하느라 신나서 생각이 잘 안나는데, 대략 일주일 지나면서부터 슬쩍슬쩍 허전하기 시작하더라.

 

 

2020년 1월 29일

심심한 생명체들

 

원래는 열흘정도는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온전히 시간을 보내고, 한 11일 째 부터 오이군이 오기 전까지 친한 친구들을 만나러 다닐 계획이었다. 근데, 이때 즈음 한국에도 코로나 확진자들이 슬슬 늘어가면서 긴장하는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하더라. 그에 따라 집 밖에 나가지 말라는 부모님의 압박도 슬슬 커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부모님 댁이 서울로 가는 대중교통이 불편한 것도 있고 해서 결국 나는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집밖에 본 것이 없는 집순이로 거듭나고 말았다. 

 

그러자 물만난 토란이가 나를 하루 종일 가만두지 않는다. 계속 내 양말 뺏어가고, 옆에 앉아서 컹컹 짖고, 휴지 갖고 와서 다 뜯어 놓고, 밖에 나가자며 졸라대고, 엄마 안경 물고 와서 내 발 밑에 던져 보고, 개껌 갖고 와서 작게 잘라달라 조르고...

무슨 개가 이렇게 시끄럽고, 요구 사항이 많은지. 예전 같았으면 일주일도 우리집에서 못버티고 엄마가 다른 집에 몰래 갖다 주셨을텐데, 이제는 오히려 이 많은 요구사항을 엄마가 다 알아듣고 들어 주신다. 허허참, 뭐를 하든 어디를 가든 때를 잘 만나야해.

 

그리고, 이제 남편이 돌아와야 할 때가 되었나보다.

나는 그닥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정신 차려보면 자꾸 남편에게 셀카를 보내며 찝쩍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보, 나는 새로산 마스크팩 붙이고 잤어. 피부가 좋아 진 것 같아. 자기는 뭐해? ❞

❝여보, 나는 오늘 속눈썹 붙이고 왔어. 세수할 때 너무 불편해. 자기는 뭐해? ❞

 

 

2020년 2월 2일

13주년 결혼 기념일

 

 

오늘은 감자와 오이가 수퍼 마리오&루이지 옷을 입고 결혼식을 올린지 13주년이 되는 날이다. 내일부터 우리는 14년차 부부. 올해로 결혼 40주년이 되신 부모님 앞에서는 새발의 피지만 그래도 신기하다. 함께한 시간이 그렇게 많아졌다는 것이. (감자 오이의 수퍼 마리오 결혼식 보기)

 

그리고 결기에 맞춰 오이군이 산타모자를 쓰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주만에 보는 우리 신랑, 코로나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마당에 기침을 콜록 콜록 하면서 마스크도 안쓰고...원래 유럽사람들은 마스크를 거의 안쓰기 때문에 잘 팔지도 않아서 어디 살데도 없었겠지만 에이 참. 그래도 공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은 다 썼더만 좀 쓰고 오지. -_-; 아버지의 성화로 kf94 마스크를 디밀었지만 어차피 여지껏 안쓰고 왔고, 이제 차타면 우리끼리 있을건데, 누구한테 옮아 오겠냐며 구태여 마다한다. (이때는 사실 코로나의 전염력이 그렇게 파워풀 한지 몰랐다. 알았으면 기침하는 것 보고 놀래서 시설격리 시켰을 듯.) 그래도 장인어른이 주시는데, 안쓰고 이렇게 고집 부리니 오랜만에 만나 반가왔다가 한대 쥐어박고 싶은 욕구가 불쑥.

 

집에 와서도 계속해서 마른기침을 해대는 바람에 엄마 아빠가 내심 긴장하시며 꿀에 절인 홍삼을 열심히 먹이셨다. 이때까지만해도 코로나 검사를 쉽게 받을 수도 없었고, 하나 걸리면 줄줄이 확진인걸 몰랐기 때문에 이랬지, 어휴 이랬다 진짜 코로나 였으면 생각만해도 참...

어쨌든 꿀절인 홍삼이 기침을 멎게하는 효과가 있는지 사실 잘 모르겠지만 오이군은 이걸 엄청 좋아하기 때문에 하루 세끼 디저트 챙겨 먹듯 신나서 열심히 먹더라. ^^;

 

그러나 사실 오이군이 이때 감기에 걸려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이십년만에 처음으로 머리를 홀랑 밀어 버렸기 때문. 

나는 옛날부터 머리 긴 남자를 좋아했기 때문에 오이군에게도 늘 머리를 약간 길게 유지하라며 잔잔하게 압력을 넣어왔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조금 다른 스타일의 남자도 한번 가져보고 싶더라. ^^; 그때 마침 사진을 정리다하 오이군의 군대시절을 보았고, 나는 그의 짧은 머리를 단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남편 리노베이션 한 것 좀 보게 머리 한번 밀어보라고 농담삼아 던졌는데 그걸 새겨 듣고, 오이군이 체코에 있는 동안 머리를 홀딱 밀어버렸던 것!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산타 모자를 벗겨보라며, 거기 깜짝 선물이 들어 있다고 했다. 모자를 들어 올리니 그 안에 휑뎅그레 빠박이가 들어 있더라. 푸핫.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애그~ 15년 묶은 나의 새 남자 친구♥ 조금 낯설었지만 이 모습도 멋지네. 훗훗. 그러나 훈훈했던 내 마음과 달리 오이군의 몸은 한겨울에 머리가 너무 시원해지자 적응을 못하고, 감기에 걸려 버렸던가보다.

 

 

 

2020년 2월 4일

이름은 들어 봤나, 굴라쉬?

 

나는 굴라쉬가 헝가리 음식인 줄 알았는데, 동유럽 이나라 저나라에서 다 먹는 음식인가보다. 오이군이 체코에 있는 동안 친구가 그 나라 음식을 이것 저것 해 줬는데, 그 중에 굴라쉬가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체코에서 흔히 먹는 빵이 있는데, 이게 신기한게 오븐에 굽는게 아니고 물에 삶는 빵이다. 맛은 한국 시골길에 가끔 파는 옥수수 찐빵 비스므레. 가족들에게 요걸 보여주고 싶었던 오이군이 체코에서 굴라쉬 소스 파우더와 빵가루를 사가지고 왔다.

 

짜잔~ 오늘은 오이군이 굴라쉬 요리사~

뚝딱뚝딱 쇠고기를 볶아 물에 끓이다가 소스 가루를 넣어 굴라쉬를 만들고, 빵가루는 물에 반죽해 둥근 몽둥이로 만든 후 물에 삶아낸다. 그리고 접시에 담아 생 양파와 함께 먹는다. 

맛이 특별하기 보다는 체코에서부터 생각해서 가져온게 기특하다보니 엄청 맛있게 느껴졌다. ^^

 

그리고 지난번에 놀러 왔던 막내이모가 오이군 오랜만에 한국에 온 기념이라며 더 반찬에서 각종 반찬을 보내줬다. 근데, 우리집 식구가 오이군까지 다 합쳐도 5명 밖에 안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듯하다. 한사람에 한 박스씩, 거의 한달먹을 분량의 음식을 보내는 바람에 한국에서 다이어트 좀 하려 했던 우리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맛은 있었지만, 상하기 전에 다 먹어 치우느라 죽을 뻔. 

 

오이군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중 하나는 바로 샤브샤브! 이모는 그 사실을 몰랐을텐데, 반찬에 떡하니 들어 있었다

 

 

2020년 2월 5일

회사원의 아침

 

에공. 우리 안스러운 회사원 동상.

아침에 출근 시간이 6시로 엄청 이르다보니 피곤하고 바쁜가운데 음료수도 마셔야하고, 화장실도 가야해서 정신이 없었나보다. 10시쯤 느지막히 일어나 화장실에 갔는데, 화장실 선반위에 반쯤 마시다 만 음료수가 놓여 있더라.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 줬더니 정작 본인은 음료수를 마셨는지도 잘 기억을 못한다.

 

 

2020년 2월 6일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바위가 깨진다?

 

친정집에 있으니 수시로 간식이 제공된다. 원래도 이렇게 하루 종일 드시는지 아니면 우리가 오랜만에 왔다고 이렇게 음식을 끊임없이 주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끊임없이 뭘 주시더라.

이날은 삶은 계란을 주시길래 평소 하던대로(?) 계란을 오이군 이마에 탁 쳤다. 오이군은 이마가 단단하다며 늘 자랑스럽게(?) 계란을 자기 이마에 깨라 하는데, 이날은 어쩐 일인지 계란 뿐만이 아니라 오이군 이마도 함께 깨져버렸어라? ㅠ_ㅠ

피가 주륵.

헉! 여보! 피나. 어떻게해. 엠뷸런스 불러?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계란한테 졌다고 알리지 말라...-_-;;)

 

 

2020년 2월 7일

다 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2

 

아빠는 매일 토란이랑 산책을 가시는데, 오늘은 오이군도 합류를 했다. 사위가 함께한 기념으로 동네 구경도 시켜줄 겸 조금 멀리 돌았는데, 길목에 운동기구가 보이자 아빠랑 오이군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기구에 올라 열심히 운동을 하기 시작. 오늘따라 같이 나가는 사람도 많고, 멀리 돌아다녀서 한껏 신이 났던 토란이는 왜 갑자기 다들 멈춰서 저러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근처에 오목거울과 볼록거울도 있어서 아빠랑 오목거울 앞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아빠...나도 이렇게 좀 낳아 주질 그랬어. 좀 길고 가늘게...

나도 울 아버지가 나를 이렇게 낳아주질 않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딸아... 

 

나를 보는 모든 사람들의 눈에 오목렌즈를 장착해 주고 싶다.

 

 

2020년 2월 9-10일

제주, 제주!

 

세계를 떠돌며 살다보니 한가지 아쉬운 건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없다는 것. 세계를 두루 보는 대신 가족과 함께 여행할 기회는 오히려 줄어든다. 그래서 급 결정한 제주 가족여행. 근데, 이때 코로나가 한국에 스물스물 퍼져나가고 있어서 아빠는 내심 이 여행에 대해 미심쩍음을 표시하셨지만 나는 당시만해도 코로나가 그냥 사스나 메르스처럼 지나갈 거라고 생각해서 별 걱정 없이 제주도 여행을 강행했다.

 

아빠랑 수입아들
아빠랑 국산아들
아빠랑 붕어빵 딸

이때 어머니는 단체로 여행다니는 것이 힘들어서 싫다며 토란이랑 함께 집에 계시겠다고, 모처럼 혼자있는게 최고의 휴식이라고 하시는 바람에 함께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은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토란이를 이틀이나 집에 혼자 두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오지 못하셨으리라. 예전에 키우던 개들은 일이 있으면 4-5일씩도 밥이랑 물 잔뜩 준 후 혼자 두고 그러셨는데, 토란이는 단 하루도 상상할 수 없다고 하신다. 내참...호강한다 토란이.

 

10년전 가족사진을 찍었던 장소에서 다시한번 가족사진을 남겼다. 이 사진에 엄마가 빠져서 조금 아쉽다고 했더니 어머니 왈.

뽀샵으로 끼워 넣음 되잖아?

시크하기도 하셔라...

 

우리가 제주에서 이러고 노는 동안 어머니는 혼자 여유롭게 피아노 연습을 하셨다며 동영상을 보내오셨다. 독학으로 <나의 살던 고향>을 마스터 하셨다고 ^^ 엄마 피아노 치고 계신 모습을 보니 뭔가 귀엽다. 엄마도 내가 어렸을때 피아노 배우고 와서 집에서 띵똥 거리면 이런 느낌이셨을까? ^^;

 

 

 

2020년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엔 짜파구리를!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

우리집엔 남자가 셋이나 있다는 핑계로 이쁜 초콜릿을 잔뜩 사고 싶었으나 이때 코로나가 점점 심각해져서 밖에 초콜릿을 사러가는 것도, 마트에 가는 것도 가족들이 탐탁치 않아 했다. 그래서 이날부터 이마트 쓱배송 세계에 발을 딛었는데, 그동안 왜 사람 많고 복잡해서 전쟁터같은 마트에 물건을 사러 다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완전 신세계. 

 

배달 리스트를 적으며 오이군에게 먹고 싶은 것을 말하라 했더니 짜파구리가 튀어 나왔다. 기생충 보면서 너무 궁금했다며 한국에 오면 꼭 해 먹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며. 그러나 우리는 재벌은 아니니까 한우까지는 아까워서 못넣고, 호주산 쇠고기를 넣은 짜파구리를 발렌타인데이 식사로 선정했다. 그리고 초콜릿 아예 없으면 섭섭하니 나는 손수 초콜릿 무스를 만들기로 했다. 물론 짜파구리가 초콜릿과 비슷한 색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분이 그게 아니지. 딸기도 듬뿍 얹어놓고 나니 너무 맛있어서 결국 내가 동생이 먹다 남긴 것 까지 싹싹 긁어 먹어버렸다는.

 

 

2020년 2월 15일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 일년 뒤에 또 만나요!

 

어느덧 4주가 번개같이 흘러 다시 또 여행길에 오르는 날이 다가 왔다. 아쉬운 송별 저녁 식사시간.

코로나가 점점 심각해지는데, 거래처 사람들을 종종 만나는 관계로 혹시 모르니 오지 않겠다던 이모도 지금 아니면 조카랑 조카사위를 또 몇 년동안 못볼테니 에라 모르겠다며 와준 덕분에 더욱 화기애애한 송별회를 하게 되었다. 엄마는 오이군이 좋아하는 고구마 케익을 사전예약까지 해서 주문하셨고, 이모는 알록달록 아이스크림 케익을 들고 왔다. 여행지에서 이쁜 비키니 핏을 내고 싶은 마음에 나는 디저트로 딸기만 준비 했는데, 결국 다른 사람들이 협조해 주지 않아서(이렇게 맛있는 케익 공세라니...) 비키니 핏은 물건너 갔지만 그래도 앞날을 축복해 주는 가족들의 사랑에 힘이 나더라.

❛그래. 내가 감사히 다 먹고 조금 뛰지 뭐~❜

케익에는 앞으로 또 다시볼 그날까지 가족 모두의 생일을 한번에 축하하자며 촛불을 왕창 꽂았다.

힝...여행길은 너무나 설레이지만 가족과의 송별회는 언제나 너무 섭섭해. ㅠ_ㅠ

 

그렇다.

이렇게 우리는 1년에서 1년 반 정도 가족들을 못 볼줄 알고, 거창하게 송별회를 했다.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지구 두번째 바퀴는 지난번과 반대 방향, 즉 동남아시아를 거쳐 유럽, 아메리카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며 야무지게 계획을 세웠었는데...

그땐 몰랐지. 전례 없이 세계의 국경이 막히는 황당한 사태가 발생할 줄은...

 

<인생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다>

고 말씀하셨다, 신일숙 작가님이...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