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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 대한민국 볼거리 먹거리/Gyeongsang | 경상도
주산지, 그 신비로운 가을 풍경에 관하여
2015. 11. 19. 17:53

외국인도 홀딱 반한 주산지의 매력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영화속의 바로 그 풍경

 

 

2015년 가을, 1년간의 전국일주를 시작하면서 첫 번째 목적지로 어딜갈까 고민이 됐다. 

그래, 가을이니 단풍이 아름다운 곳으로 가면 되겠구나. 

내장산이 있는 전라도와 주왕산이 있는 경상도가 머릿속에서 치열하게 경합을 치뤘는데, 결국 예전에 한번 와 보고 푸욱 반해버린 적이 있는 경북 안동 근처가 그 첫번째 장소로 낙찰이 되었다. 안동은 감자 오이를 탄복시킨 청량산과 단풍 명소인 주왕산의 딱 중간에 있는 도시였던 것이다. 게다가 농암종택의 강각에 앉아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의 비경을 한번 보고 나면, 그 누구나 안동의 매력에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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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간은 흘러. 드디어 매년 가을, 가고 싶어 벼르기만 하다 시간과 거리에 좌절하곤 했던 주왕산의 단풍을 두 눈에 담는 날이 되었다.

 

 

 

 

 

 

 

 

 

시원한 가을 아침 공기를 마시며 주왕산이 있는 청송에 도착했더니 한주 뒤에 있을 청송사과축제 준비가 한창인 듯 했다. 아직 다 물들지 않은 은행나무아래 사과축제를 알리는 플랜카드가 신나게 펄럭이며 우리를 맞이한다. 청송은 11월 초나 되어야 은행나무가 물드는 모양이다. 안동의 월영교 주변엔 이미 은행잎은 다 떨어지고, 벚나무 단풍이 마지막을 붉게 장식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1박 2일 여행 중, 첫째 날 우리가 걸을 구간이다. 오전 중에 오른쪽의 녹색 구간을 걸어 주산지를 둘러보고, 점심식사를 한 후에 왼쪽의 주황색 절골계곡 구간을 걸어볼 예정이다. 

 

 

주왕산 국립공원에서도 가장 보고 싶었던 곳은 바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였던 주산지였다. 사실 나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곳인데, 오이군이 스위스에서 누나와 함께 이 영화를 보고 무지 좋은 인상을 받았던 모양이다. 스위스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었을때 다들 그 영화 촬영지를 매우 궁금해 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오이군도 이곳을 꼭한번 가보고 싶었다고 이야기 하더라. 그때는 내가 오이군을 알기도 전인데, 다시한번 문화로 나라를 홍보하는게 파워가 얼마나 큰지 실감이 되었다. 사실 스위스 사람들은 한국이 일본 옆에 있는지, 태국 옆에 있는지도 정확히 잘 모르는데, 그럼에도 옛날부터 이 주산지를 한번 가보고 싶었다니 말이다. (스위스 사람들이 한국의 위치를 잘 모른다고 그들에게 반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한국 사람들 또한 스위스가 북유럽에 있는 나란 줄 알거나 사계절 눈내리고 추운나라인줄 아는 경우도 많이 봤으니까 ^^; )

 

 

주차장에서 주산지까지는 약 1km의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말 그대로 산책길이라 누구나 부담 없이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가을이 되니 곳곳에 도토리를 가져가면 안된다는 표지가 붙어 있다. 우리에게는 그냥 한 번의 별식일 뿐인 도토리가 산에 사는 동물들에게는 겨울동안의 생계가 걸린 음식이기 때문. 예전에야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 도토리를 많이들 주워 갔지만, 이제는 도토리가 아니라도 우리는 먹고 살 수 있으니 이쯤은 모진 겨울을 이겨내야 할 산동물들에게 양보하자.

요 표지를 보면서 앞서가던 한 중년의 부부가 나누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남편  허허. 도토리 가져가지 말라네. 사람이 먼저지 동물 먹으라고 먹고 싶은 걸 못먹게 하나 그려.

아내  여보. 쟤들은 저거 없으면 겨울을 못난다잖아요.

남편  그래도. 자연은 다 사람이 다스리게 신이 줬는데, 먹고 싶으면 먹는게지. 에잉~

아내  여보. 당신이 말한대로 다스린다는 건 나만 먹고, 살자는 게 아니라 다스림을 받는 것들도 행복하게 같이 사는거 아닐까요? 좋은 왕이 나라를 잘 다스리면 백성들도 행복하듯이 잘 다스리는 건 서로 같이 행복하게 살아 가는 거예요. 우리는 도토리묵 안먹어도 다른거 먹음 되는데, 다람쥐들은 저것밖에 없으니까 그냥 양보해줘요.

남편  허허. 당신 말이 맞네그려. 우리 마누라 어쩜 말을 이리 잘하누. 내 할말이 없네 그려. 당신이 맞소. 도토리는 그럼 그냥 둡시다, 그럼 ^^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엄마 미소를 짓게 되더라. 현명한 아내와 그 조언에 귀를 열고 들을 줄 아는 어진 남편이구나. ^^;

 

 

드디어 주산지가 그 고요한 자태를 드러냈다. 영화 속에 신비로 왔던 물위의 사찰은 사실 영화를 위한 세트장으로 주산지에 원래 있는 것은 아니라 한다. 사찰이 없자 오이군에게서 약간의 실망이 눈빛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래도 평화로운 풍경에 금새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 일찍 안개가 걷힐 무렵이 가장 신비롭고 아름답다는데, 우리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서 물안개가 걷히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대신 울긋불긋한 단풍이 가을 햇살에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람이 없을 때면 거울같이 잔잔해지는 수면위로 비치는 단풍의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주산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3백년 전 계곡의 좁은 곳을 막아 완성한 인공 호수라고 한다. 2013년에는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105호로도 지정이 되기도 했다.

 

 

풍경에 반해 히죽 거리고 있는데, 저쪽에서 조금 아쉬운 광경이 벌어졌다. 

주산지는 주왕산 국립공원의 일부로 지정된 산책로 이외의 곳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함인데, 어떤 사진사 아저씨가 붉은 단풍의 모습에 매료된 나머지 법을 어기고 산책로를 벗어나 위험해 보이는 물가로 내려가는 게 아닌가. 국립공원관리인이 저편에서 보고 그러면 안 된다고 소리쳤지만 아저씨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점잖게 나오라고 이야기하던 관리인이 여러 번 말해도 듣지 않자 결국 버럭 화를 냈는데, 그래도 아저씨는 힐끔 쳐다 만 보고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보는 우리가 다 얄밉게 느껴질 정도로 dog무시. 결국 화가 난 관리인은 그 아저씨의 모습을 사진찍어 증거로 남기고, 법대로 벌금을 물렸다. 그런데도 사진사 아저씨는 막무가네로 자기는 그딴 법 모른다며 도리어 버럭 버럭. 그 아저씨가 전문 사진 작가인지, 아마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킬 예의는 기본적으로 지켜가며 찍어야 하지 않을까. 그 옆에서 카메라 들고 있던 내 손마저도 부끄러워 지더라.

물론 나도 사진 찍기 좋아해서 그 아저씨의 마음이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지만, 법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지키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우리가 좋아하는 그 자연을 내년에도, 또 그 후에도 계속 아름다운 모습대로 볼 수 있게 하려는 법인데, 조금 아쉬워 지정된 통로로만 다니면 좋겠다.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드나들다보면 자연은 조금씩 훼손되기 마련이니까.

 

 

이번에는 산책로를 따라 주산지의 명물, 왕버들을 보기 위해 연못을 오른쪽에 끼고 걷기 시작했다. 올해는 가뭄이 심해서 대부분의 단풍이 예쁘게 물들 기도 전에 말라 버렸는데, 주산지는 연못가라 싱싱하게 물을 머금은 단풍잎이 한들한들 손짓하고 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물속에서 자라는 주산지의 버드나무들이 하나, 둘 그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냈다. 이 왕버들들은 1720년 주산지가 조성되기 이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었는데, 현재는 수령이 오래돼서 천천히 노쇠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왕버들은 물을 좋아해서 물가에 살지만 물속에서는 숨을 쉴 수 없는데, 이 주산지의 왕버들들은 지형에 맞게 호흡근을 발달시켜 물속에서도 호흡을 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든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자연의 신비. 호흡근은 맹그로브에서나 볼 수 있는 줄 알았더니 버드나무가 그런 걸 가지고 있을 줄이야.

 

 

그리고, 주산지에는 왕버들 말고 또다른 것들이 살고 있다. 바로 어른 팔뚝만한 잉어들. 국립공원이라 낚시가 금지되어 있으므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인지, 커다란 녀석들이 물가로 다가와 물방울을 튀어댄다. 누군가가 빵조각을 던지자 잉어들이 어찌나 힘차게 물위로 튀어 오르는지 별로 깊지도 않은 바닥에 부딛혀서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

 

 

호수의 북쪽으로는 보호 지역으로 더이상 가까이 갈 수 없는데, 그쪽에는 더 많은 나무들이 물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마치 열대지방의 맹그로브 숲을 연상시키는 풍경이다.

 

 

 

 

주왕산도 식후경
주산지 앞 마을의 점심시간은 12시 정각

 

 

주산지를 구경하고, 절골계곡으로 가기 전에 점심을 먹으러 입구에 있는 작은 마을로 갔다. 이 근처에는 음식점이 많이 없고, 주차장 매점에서 오뎅이나 국수같이 간단한 것들을 판매할 뿐이다. 분식말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하시고 싶다면, 주차장에서 되돌아 나와 약 2km정도(차로 5분) 떨어져 있는 부동면으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 여기에도 큰 식당은 없고,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작은 백반집 네 곳과 중국집이 하나 있다. 그런데, 이동네 사람들이 식사를 일찍 하는 모양인지 12시 30분쯤 갔건만, 백반집 3군데가 전부 밥이 다 떨어졌다고 하는게 아닌가. 예상치 못한 사태로 밥을 굶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는데, 다행히 마을 안쪽에 음식점이 하나 눈에 띄었다.

 

 

 

 

 

막창에 고등어, 갈비살을 판다고 쓰여 있어서 나름 큰 음식점 인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평범한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곳인 듯 하다. 우리가 들어가자 마당에서 고추를 자르고 있던 주인 내외께서 놀란 듯 쳐다 보시며, 왜 왔냐고 물으셨다. ^^;; 혹시 식사 되냐는 물음에 두분다 허둥 지둥 방에 불을 켜 주신다. 일반 가정 집에 예고 없이 들이닥친 분위기였지만, 어쨌든 밥이 없다는 대답이 아니라 뭐든 다 되니 주문하라고 하셔서 감지덕지. 

메뉴는 뭐가 있냐는 질문에 다~된다고 대답하셔서 또 다시 잠시 패닉상태가 됐다. 다 된다는 건 또 무슨 얘긴가. 뭐가 있는데, 다 된다는 건지. 스위스 음식도 주문하면 되는건가. ㅋㅋ 잠시 눈을 껌벅이며 바라보자, 그냥 배고픈거지? 백반 주면 되는거지? 라며 부엌으로 총총 들어가신다.

 

 

그래서 먹게된 백반. 요즘 백주부 덕분에 유행하게 된 집밥 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식탁이다. 반찬이 화려한 건 아니지만 한끼 배부르게 먹기는 충분하다.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밥과 반찬이 무한 리필 되니 사양하지 말고 달라 하라며 다시 마당의 하던 일로 되돌아 가신다.

이 밥의 가격은 인당 8천원으로 반찬에 비해 저렴하진 않았으나, 어쨌든 뜨끈한 국과 한끼 소박하게 배를 채울 수 있어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배가 불러지니 다시 마음이 느긋해져 여행 모드로 되돌아와 오후의 일정인 절골계곡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주왕산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절골계곡 이야기는 다름 포스팅으로.

 

 

 

 

 

       

주산지의 뭐든지 다~되는 음식점에 가다

여행날짜 | 2015.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