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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 대한민국 볼거리 먹거리/Gyeongsang | 경상도
경주의 숨은 여행지 동남산 칠불암, 신선암
2015. 9. 29. 14:25

경주 남산은 산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
단풍놀이와 문화재 구경을 한번에, 꿩먹고 알먹고, 경주 남산여행

 

 

지난해 갔던 경주 이야기를 어쩌다 보니 계절을 놓쳐 한해를 넘기게 되었다. 단풍이 들락 말락하던 때, 차없이 떠나는 주말여행 코스북 작가님들과 함께 갔던 여행인데, 수학여행이후 20년만에 만난 경주는 완전히 새로운 감동으로 나를 사로 잡았었다. 이번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경주 남산의 칠불암과 신선암 이야기다.

※ 차없이 떠나는 주말여행 코스북은 감자와 오이같은 뚜벅이 족을 위한 책으로, 당일, 1박 2일, 2박 3일 등의 여행코스를 소개해 주는 책이다. 꽤나 자세하게 나와 있고, 경비, 숙소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어 지난 한해 꽤나 유용했던 책이다. 뭐 차가 있어도 교통을 제외하고 이 코스대로 움직인다면 알찬 여행을 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

 

 

 

 

동남산으로 가는 길, 가을을 느끼게 해주는 풍경

 

경주하면 대부분 대왕릉이나 첨성대, 불국사, 석굴암을 돌아보기에 바빠서 경주 남산은 생각도 안하는데, 이 남산이 사실은 경주의 또다른 보석같은 장소였다. 산 전체에 문화재가 얼마나 많은지 야외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 알려진 왕릉이 13개, 탑 96개, 불상 118개라는데,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숨은 불상들이 있을거라고 한다.

첫날은 동남산 둘레길을 따라서 불상들과 탑, 왕릉을 구경하고, 둘째날은 산 위에 올라 경치 좋은 사찰을 구경하기로 했다.

 

 

첫째날 이야기 보기

 

신라의 숨결 따라 걷는 경주 남산 1박 2일 : 동남산 산책길 Part1

신라의 숨결 따라 걷는 경주 남산 1박 2일 : 동남산 산책길 Part2

 

 

경주는 현대적이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부티가 흐르는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횡단보도만 해도 그렇다. 횡단보도에 센서가 있어서 사람이 근처에 서면, 자동으로 불이 바뀌는게 아닌가! 옴마나, 옴마나. 해외에서도 본적 없는데, 럭셔리 하여라. ^^;

 

 

오늘의 트래킹 시작 장소는 남산동 동서 삼층 석탑.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처럼 두 탑의 모양이 다르게 만들어졌다.

 

첫째날은 오른쪽 끝의 월성부터 노란길(동남산 둘레길)을 따라 서출지까지 걸었고, 둘째날은 서출지 다음에 있는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부터 계속 왼쪽으로 향해 칠불암으로 올라간다

 

걷다보면 머지않아 염불사지에 도착하게 된다. 염불사지에도 두개의 탑이 있었는데, 모두 깨어지고 현재의 탑은 잔해를 모아 복원작업을 거쳐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 사찰은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다. 원래는 피리사라 불렸던 곳인데, 삼국시대의 한 스님이 이곳에서 언제나 염불을 외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소리가 워낙 맑고 청량하여 사방으로 울려 퍼졌고, 듣는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이 사찰의 이름을 피리사에서 염불사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염불소리는 들리지 않고, 파아란 가을하늘에 지저귀는 새소리만 들린다. 그 또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정신이 몽롱했는데, 이곳에 가만히 서서 새소리를 들었더니 천천히 잠에서 깨어나는 것 같다. 

 

 

 

칠불암 가는 길
음...가벼운 산책길은 아닙니다. 약간의 마음의 준비를...

 

 

염불사지에서 마을을 거쳐 칠불암으로 올라가는 산 아래 다다랐다. 그런데, 입구에 요런 지게들이 놓여 있고, 칠불암으로 뭔가 가져다 달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칠불암으로 소포같은 것이 도착하면, 우체부 아저씨가 매번 한두시간씩 등산을 할 수 없으므로 이 산아래에 놓고 가는 모양이다. 그러면 절에 오르는 사람들이 하나씩 가져다 주는 방식. 우리도 쌀가마니가면 좀 곤란하겠지만, 크게 무겁지 않은게 있으면 가져다 주려고 둘러 봤으나 아무것도 없더라.

 

 

그 옆에는 자율 매점도 있다. 꽁꽁 언 물이 그득 담긴 아이스박스가 있고, 가격이 써 있는 화이트보드 뒤에 돈을 넣는 통이 있다. 서로에대한 신뢰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시스템. 마음에 든다. 이런 시스템이 일반화 되도록 사람들의 마음이 순수해 졌으면 좋겠다.

이용해 보고 싶었으나 나는 이미 가방에 가득찬 물통이 이미 자리를 떡 차지 하고 있었으므로 다음 기회에 ^^ 특히 아무리 더운날도 아침부터 찬물마시면, 그대로 배탈이 난다. 이래뵈도 섬세한 녀자. -_-;

 

 

꺄악, 너무 예뻐!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찰칵 찰칵 들린다. 블로거들과 단체로 왔더니 구태여 찾지 않아도, 카메라 소리만 따라가면 흥미거리를 발견할 수 있다. ^^; 사찰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작은 사과 과수원이 있었는데, 빠알갛게 익은 사과가 어찌나 이쁜지 도무지 안사고는 베길 수 없게 생겼더라. 그건 나 뿐만이 아니었는지 이미 다른 분들이 잔뜩 사서 한개씩 나눠 주신다. 고놈 참 이쁘게도 생겼지. 사과같은 내얼굴, 호박같은 니얼굴~ 하던 노래가 그냥 나온게 아니구나. 사과가 진짜 이쁘긴 이쁘다 ^^;

 

동남산 오르는 길. 단풍이 들락 말락. 이번 여행의 객원모델, 그린데이 온더로드님 ^^;
사찰은 아직 멀었다는데, 산 아래부터 사람들의 소망을 쌓아놓은 돌탑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띈다
지은지 일주일이 채 안됐다던 칠불암 아래 쉼터. 여기서 한숨 고르면 위에 바로 사찰이 나오는 줄 알았더니, 훗. 어림없다. 좋은 풍경을 그리 쉽게 보여줄 수 없지

 

칠불암에 오르는 길은 아름답지만, 숨이 턱에 턱턱 차는 등산길이다. 가볍게 산책하는 줄 알고 따라왔다가 준비안된 저질체력이 깜짝 놀라며 비명을 질러댔다. 평소에 살좀 빼 둘걸. 이렇게 등산할 일이 있으면 내 다리에게 너무 미안하다. 혼자 무거운 나를 다 짊어지고 가야 해서. 어릴때 계단에서 넘어져서 시원찮은 무릎도 이럴때면 우두둑 거리며 아는 척을 한다. 

미안하다 몸뚱아. 막쓰고, 막살찌고, 그냥 다 미안하다...-_-;

 

이렇게 혼자 주절 거리기도 하고, 가끔 일행들과 수다를 떨며 오르다가 어느 순간 모두들 조용해 졌다. 그냥 열심히 산만 오른다. 깔딱고개에 다다른 것이다. 어느 산엘 가나 정상 근처에 오면 어김없이 나타난다는 깔딱고개. 숨이 깔딱 넘어갈 것 만큼 가파르다고 해서 깔딱고개다. 이제 거의 다 올라온 모양이다. 

 

 

 

 

 

깔딱고개를 헉헉거리다 못해 컥컥거리며 오르고, 새로 지어서 나무 냄새가 은은하게 나는 쉼터에 앉아 숨을 골랐다. 이제 바로 위가 칠불암이군. 이라고 확신했으나...

칠불암은 그렇게 호락 호락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쉼터 뒷쪽에 계단으로 이어진 죽녹원을 방불케하는 대나무고개를 지나서야 비로소 그 멋드러진 자태를 드러냈다.

 

 

 

절벽위에 아슬아슬 칠불암
아슬아슬하면서도 포근한 그 느낌!

 

 

바로 이곳이 칠불암이다. 절벽에 가로로 길을 내어 만든 사찰이라 공간이 무지 협소해서, 서로 보겠다고 밀치기라도 하면 다 굴러떨어질 것 같다. 평소엔 한적하다는데, 오늘은 일요일 설법이 있는 날이라 말씀을 들으러 온 사람들도 있었고, 단체로 들이닥친 관광객들이 우리말고도 몇팀 더 있어서 좁은 사찰이 복작 복작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저 멀리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산과 더불어 환상적인 풍경은 그 자태를 한껏여유롭게 뽑내고 있었다.

 

설법이 있는 날이라 염불을 외우고 계신 스님들. 그 뒤로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경건히 기도를 하고 있는 이들을 구경한다고 방해할 수 없어서, 자세한 것은 조금 후에 구경하기로 하고, 일단 칠불암보다 더 위에 있는 신선암을 먼저 보기로 했다. 겨우 좀 쉬나 했더니 그야말로 산넘어 산. 숨고를 틈도 없이 또 다시 등산이 시작되었다.

 

 

 

신선암 그 가슴 탁트이는 풍경을 찾아서
힘들지만 후회하지 않을 선택

 

 

훗, 여지껏의 칠불암까지 오르는 길은 귀여운 편에 속했다. 신선암은 그야말로 산 꼭데기에 있어서 흙길도 아닌 바위길이 이어진다. 어떤 곳은 바위 폭이 넓어 그냥 네발로 기어 올라가는게 마음이 편하다. 롱다리 오이군이 같이 왔으면 긴다리를 뽑내며 척척 올라갔겠지만, 오늘은 전부 나와 비슷비슷한 키의 여자들만 가득히 몰려와서, 다들 네발로 낑낑데며 기어오르며 동지애를 발산했다.

 

 

그리고, 거의 다 왔을 무렵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밖에 없다. 이런 멋드러진 풍경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저어 멀리 경주시의 풍경과 황금빛 논 그리고 낮은 산들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단풍이 가득 들었더라면 조금 더 감동이었을텐데, 사실 이것만으로 충분히 여지껏의 힘든 산행을 깨끗이 잊고도 남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다른 블로거분들, 즉 카메라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이렇게 내 사진도 남았다. 보통 오이군과 둘이 여행할 때 풍경 멋진 곳에 도착하면, 내손에 카메라가 들려 있으므로 오이군만 잔뜩 찍히는데, 내 사진이 이렇게 몰카(?)로 찍혀 있으니 신기하기 그지없다. 몇장 없는 귀한 사진 ^^;

 

바위가 웅장하게 섞여 있어 낮아도 위엄있는 경주 남산
개인적으로 왔더라면 또 하염없이 하루종일 앉아 있을 뻔 했다. 이맛에 산에 오른다는 식상하지만 진리인 표현을 연신 내뱉어 가며...

 

사실 신선암은 사찰 자체가 아니라 바로 이 절벽위에 새겨진 마애보살반가상 때문에 유명하다. 이 아슬아슬한 절벽위에 어쩜 이렇게 온화하고 멋진 보살상을 새겨 놓았을까. 불상이 마치 절벽 위의 구름에 앉아 있는 듯 보인다. 그 위치가 아까 지나온 칠불암의 바로 위쪽에 있고, 그 눈은 칠불암을 온화하게 내려다 보고 있다고 한다. 설명을 듣다보니 그 옛날에 그런 걸 다 생각해서 만들었을 선조들의 정교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설명하시느라 보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 후들 떨리는 저 앞에까지 다가가 하나 하나 짚어주시는 해설사 선생님의 열정에 또한번 놀란다. 저러다 떨어져도 그 열정에 감동한 부처님이 구름으로 떠올려 주실 것 같다는. ^^; (원래는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는 문구가 사방에 붙어 있다. 그러나 기도하는 분들은 그 앞에 엎드려 절도 하는 듯. 직접 보면 가라고 떠밀어도 별로 가고 싶지 않게 생겼다.)

 

 

 

 

살짝 오락 가락하는 진달래 한송이가 가을에 피어나서 바깥구경 중

 

신선암의 아름다움에 감동하고나니 조금 힘들어도 올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또 오래도 올 수 있을 것 같다는 ^^

이 계단도 완성된지 일주일이 조금 넘었다고 한다. 이주 전까지만 해도 이 바위를 막 엉금 엉금 기어서 올라오곤 했다고. 날짜도 딱 맞춰 잘 왔다며 감사한 마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그냥 맨몸으로도 올라오기 힘든데, 인부들은 대체 이 자제들을 어떻게 싣고 올라 온걸까.

 

 

 

다시 칠불암으로
절밥이 또 이렇게 맛난 줄이야

 

 

신선암을 구경하고 다시 칠불암을 찬찬히 보기 위해 내려왔다. 이제 설법이 끝나고, 사람들이 여기 저기 앉아 도란 도란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밥을 보니 군침이 꼴딱 넘어갔지만, 일단 유명한 마매불상군을 감상하기로 했다. 불상이 커다란 바위 두개에 2중으로 조각되어 있어 특이하다. 막 고개를 쭉 빼고 봐야 뒷쪽 불상 3개가 다 보인다는. 앞에는 사방불로 조각되어 있다. 이것은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국보 제 312호로 지정도 되어 있다고.

 

불상아래 돌틈에서 이름모를 다육식물들이 자라며 화사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드디어 행복한 밥시간. ^^

교회도 그렇지만 절도 식사시간에 가면 무료로 밥을 얻어 먹을 수 있다. 딱 맞춰온 김에 우리도 자리를 잡고, 줄을 섰다. 메뉴는 비빔밥과 미역국. 고기한점 안든 비빔밥과 미역국이건만, 이렇게 꿀맛이 날 줄이야. 절터에 주저 앉아 수다를 떨어가며 맛나게 밥을 먹었더니 뱃속가득 행복감이 몰려온다. ^^

그렇게 절 구경을 많이 다녔건만 밥을 얻어먹어보기는 사실 처음이다.

 

 

먹고난 그릇은 이렇게 각자 씻어야 한다. 그런데, 일행이 많아서 밥도 많이 얻어 먹어 미안했던 우리는 아예 자리잡고 앉아 다른 사람들이 먹은 설거지도 해주기 시작했다. 공장 돌아가듯 한명은 밥풀떼고, 한명은 비누칠, 한명은 행굼질, 한명은 말리기, 한명은 위 사찰 부엌으로 전달하기를 맡았다. 일사천리로 착착 진행되어 그 많던 설거지가 순식간에 끝났다. ^^

 

 

경주 남산은 경주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관광객 그득한 여느 여행지들과 달리 소박한 모습의 유적지들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어 더욱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물론 우리 일행이 많아 사람이 많은 것 같이 느껴졌지만, 대부분 어딜가도 우리 일행이 전부였다. ^^;) 

올가을 단풍놀이를 생각하고 계신다면, 경주 남산의 칠불암이 좋은 후보지가 아닐까 싶다. 단, 아랫동네라 단풍이 10월 28일-30일쯤이 절정일 듯 하니 참고하시기를.

 

 

 

 

       

경주의 가을

여행날짜 | 2014.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