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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eania | 태평양의 섬들/West Australia | 서호주
칼바리 국립공원 암벽 현수하강 (앱제일링, 레펠)
2015. 1. 7. 07:00

칼바리 국립 공원을 향해서 Way to Kalbarri national park
얼떨결에 절벽을 타고 내려오다

 

 

※ 중간에 비디오에 등장하는 오이군의 횡설 수설 퐁듀 이야기는 이 페이지를 보시면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진짜 건물 벽에 매달려서 퐁듀를 먹었어요. 십오년전 뽀송 뽀송한 오이군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익스트림 퐁듀

 

Au silo de St-Aubin | Extrême Fondue

Au silo de St-Aubin Le samedi 5 mai 2001, nous nous sommes donc motivés pour aller manger notre fondue suspendus au silo de St-Aubin. L’opération avait été minutieusement préparée, en effet, ce fut, je crois la fondue la plus technique que nous ayo

extremefondue.ch

 

서호주 어드벤쳐의 두번째 날. 오늘도 어제와 비슷하게 5시30분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어째 휴가가 이리 빡빡한가. 자고로 휴가란 늦게 일어나고, 데굴거리는 것 아니던가...게다가 어제밤 별사진 찍는다고 늦게까지 꼼지락 거렸더니, 아침이 두배로 힘들다. 일행들이 움직이는 소리에 귀신같이 부스스 일어나, 토스트 한쪽을 우적우적 씹어먹고, 멍한 상태로 차에 올랐다. 눈을 반도 못뜨고, 차에 앉아있는데, 여명 아래로 죽어라 도망가는 토끼 두마리가 보였다. 오래전 봤던 호주 영화 래빗 펜스 프루프 라는 영화가 생각나네. 호주엔 여전히 토끼가 많구나... 

 

토끼는 호주의 토착 동물이 아니다. 옛날 영국인들이 재미삼아 들여왔던 24마리가 엄청난 번식력으로 수억마리가 되며 생태계를 파괴하는 바람에 호주에서는 괴수 취급을 받고있다. 그들을 보니 우리나라에서 괴물쥐라 불리며 사냥당하는 뉴트리아가 떠오른다. 그냥 제 고향에서 평화롭게 살게 두지, 인간들은 왜 동물들을 이리 저리 옮겨놓고, 못죽여서 안달일까...뉴질랜드의 포섬도 마찬가지. 호주에 있는걸 옮겨다 놓고 이제는 토착새알을 먹는다는 이유로 길에서 보면 가차 없이 치어 죽이라고 한다. 헐... 동물들은 그냥 주어진 조건에 적응하며 열심히 살아갈 뿐, 아무 죄가 없거늘 그들의 유일한 생명은 존중받지 못한다. 

 

 

오늘은 서호주 특유의 붉은 흙과 바위가 늘어서 있는 칼바리 국립공원 Kalbarri National park에 가는 날이다. 드디어 진짜 영화속에서 봤던 그런 호주의 아웃백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평소 대로라면 아침부터 두근두근 해야 맞지만, 시간이 너무 일러서 그냥 멍~

사실 그곳에는 나의 심장을 덜컹하게 했던 엄청난 것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당시 나와 오이군은 전혀 오늘 뭘 하게 될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평화로이 멍한 아침을 보냈다. 바로 앱자일링(abseiling), 레펠(rappel), 레펠 하강(rappelling)이라 불리는 현수하강이 그것이었다. 사실 스케쥴 표에 앱자일링 Abseiling이라고 당당히 써 있었는데, 우리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었다. 

 

 

 

 

그나저나 나무에 저게 다 뭐지?

 

 

전부 코카투 Cockatoo구나! 

갈라 Galah라고 불리는 분홍 배를 가진 코카투들이 나무에 빽빽히 앉아 요란하게 떠들고 있었다. 코카투들도 앵무새의 일종이라 혀가 두꺼워, 어릴때 부터 집에서 기르면 말도 따라 한다. 그러나 야생에서 자란 녀석들은 말을 배운적이 없으므로 그냥 꽥꽥 거리는 괴성을 지르는데, 그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탁 트인 공간에서도 저렇게 몰려 앉아 소리지르면 귀가 다 멍멍할 지경.

 

 

뭐 어쨌든 시끄러운 코카투 덕분에 잠이 좀 깼다. 푸른 하늘과 노오란 솜털같은 꽃들을 보니 상쾌함이 우루루 몰려든다.

아, 신나는 서호주의 둘째날이 드디어 시작되는 구나~ (사실은 이미 아까 시작 했...)

 

 

 

들어는 봤나 앱자일링, 현수하강이라 한다네
25m 암벽타고 내려오기

 

 

층층히 쌓인 붉은 암벽이 인상적인 칼바리 국립공원 Kalbarri National park에 도착했다. 우리가 갔을 때는 호주의 건기라 메마른 모습을 상상했건만, 그곳은 기대 이상으로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게다가 곳곳이 노오란 솜털같은 꽃들로 뒤덮혀있어 화사한 봄날 한들한들 나들이를 온 기분이 들었다. 그랬었다. 그곳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기 전까진...

 

 

두둥.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이렇게 25m의 절벽위에 매달려서 낑낑대고 있더라. 아직 잠이 덜깬 몸뚱이가 한없이 둔하게 느껴졌지만,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매달렸다. -_-;

 

 

강사의 어설픈 한국어 발음으로 Sexy 엉덩이 is coming down 이라는 외침과 함께 바들바들 떨며, 절벽에 발을 딛었다. 미션임파서블처럼 빅 점프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샌들이 좀 미끄러웠다. 조금 더 멋지게 내려올 수 있었는데, 어디까지나 신발 탓이다. 산행 할때마다 등산객들에게 한마디씩 듣게 만드는 우리의 만능 스포츠 샌들이 여기서는 살짝 밀리네.

사실 절벽위로 올라온 순간, 내가 왜 돈내고 이짓을 하나 싶었지만, 하다보니 은근 스릴있는게 꽤 재밌다. 이날따라 지구가 나를 더 잡아당기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괜찮다. 난 팔힘 하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우니까. 부들부들.

 

 

오이군도 갑자기 벽을 타게 되서 살짝 동요하는 눈빛을 보였지만, 그래도 예전에 한번 해봤다며 나보다 여유롭게 내려가더라. 원래부터 겁이 좀 없기도 하고.

위에 돌출된 턱까지가 고비이고, 그 아래부터는 벽을 퉁퉁 차며 죽죽 밀려 내려오면 된다. 25m 미터가 위에서 볼때는 하염없이 높게 느껴지는데, 맨위에 턱만 벗어나면 순식간에 발이 땅에 닿는다. 돈이 슬쩍 아까울 만큼...^^; (2회에 20불)

 

 

그러나 여기서도 드러나는 숏다리의 비애. 절벽 위의 돌출된 턱 때문에 밧줄과 아랫쪽 벽에 공간이 한참 뜨는데, 나는 그 덕분에 벽을 차려면 줄을 엄청 많이 흔들어야 했던 것이다. 오이군은 그냥 다리를 뻗으면 벽에 바로 닿아서 흔들 필요 없이 벽을 걸어 내려오더라. 벽을 걷는 오이.

 

벽에 바...발이 안닿는다 -_-;

 

결국 벽에 발이 잘 안닿아서 퉁퉁 차지를 못해 거의 팔힘으로 내려왔다. 덕분에 두번을 하고 나니 팔이 후덜덜. 가만히 있어도 그냥 혼자 진동운동을 한다.

두번째 내려 왔을 때, 장비를 풀다가 로프의 속도를 잡아줬던 O링에 얼굴이 닿았는데, 마찰열 때문에 무진장 뜨거웠다. 자칫 잘못해서 얼굴에 O자로 화상을 입었더라면, 매우 인상적인 기념마크를 얻을 뻔 했다.

 

 

 

머치슨 계곡 Murchison Gorge
미니 그랜드 캐년?

 

 

짜릿한 두번의 암벽하강을 마치고 나서, 본격적으로 칼바리 국립공원 탐험에 나섰다. 오늘 우리가 걷게 될 곳은 제트 밴드 Z-band라 불리는 머치슨 계곡 Murchison Gorge.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암벽 사이로 좁은 직선의 길이 지그재그로 나 있는 것이 이곳의 특징이다.

 

 

가는 길목 사이 사이에 신기한 모양의 꽃들이 우리를 반긴다. 파란 하늘과 어울려 비비드한 색감이 인상적인 서호주의 꽃들.

 

 

한시간 쯤 걸어 도착한 곳은 바로 이런 풍경의 계곡이다. 이때는 6월 말로 호주의 건기라 물이 거의 말라 있었다. 

고요한 풍경을 마주하니, 절로 도를 닦게 된다. 아무 요가 동작하나만 잡아봐도 뭔가 있어보였을 텐데, 아쉽게 아는 동작이 하나도 없네...

 

 

요가? 이런 동작?

음. 햇살은 마음에 드는데, 뒤에 물이 별로 깨끗하지 않아서 NG.

 

호주의 오지에는 건기와 우기가 있는데, 우기동안 비가 많이 내리면 계곡들의 수위가 엄청 높아져 사방팔방에서 홍수가 난다. 따라서 서호주와 북호주의 많은 지역들이 호주의 여름, 즉 11월-3월까지는 출입 금지 구역이 된다. 4월 말부터 수위가 줄어들어 5월부터는 다시 모든 국립공원이 문을 여는데, 이때가 서호주가 가장 예쁜 시기라고 한다. 그 이유는 한껏 물기를 머금은 자연이 싱싱하게 빛나고, 계곡마다 아직 깨끗한 물이 흐르며, 사방에서 꽃이 피어오르기 때문이라고. 우리가 갔던 6월 말에도 이미 물이 많이 줄어들어 계곡이라기 보다는 웅덩이를 이루며 조금씩 썩어가고 있었다. 이것이 8월쯤 되면 완전 썩어 냄새도 나서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서호주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5월에서 6월 중순까지.

 

 

 

 

그렇지~ 이 포즈가 나와줘야 오이군이지 ^^ '오이군 칼바리에 가다'

 

무른 사암 밑으로 나무 뿌리가 자란건지, 나무 뿌리 화석인건지 독특한 표면을 가진 바위들이 곳곳에 있었다.

 

절벽 끝에서
깨금발. 눈높이를 맞춰주세요 (헥헥)

 

 

 

제트 밴드 z-band 의 절경 감상
트래킹의 달콤한 보상은 뭐니 뭐니 해도 숨막히는 풍경

 

 

계곡에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와 중간에 있던 갈림길로 들어섰다. 이곳은 제트밴드 z-band의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일종의 전망대 같은 곳인데, 계곡으로 내려왔던 길을 올라 갈 때 다시한번 오이군의 긴 다리가 심히 부러웠다. 난...뭐...유연하니까...짧아도 쭉쭉 벌려 올라 가면 되니까...헉헉...신이 그래도 나름 필요한 건 다 챙겨 주셨다며, 낑낑대며 열심히 바위를 기어 올랐다.

 

 

짜잔. 이것이 z 밴드의 풍경. 그곳에서 볼 때는 정신 나갈 만큼 멋졌는데, 사진으로 보니 그 감동이 느껴지질 않아서 아쉽다. 어딘지 사진속에서 본 그랜드 캐년도 떠오른다.

 

이렇게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지형에 물이 흐르면서 벽을 깎아 내어 계곡을 형성했는데, 사암에 결이 있으므로 일직선으로 깎이게 된 것이다. 그것이 지층이 바뀌는 지역에 이르르면 방향을 바꿔 다시 직선으로 깎인다. 그러다 보니 이런 특유의 지그재그 제트 모양의 계곡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이 계곡 이름은 머치슨이지만 모양을 따라 제트밴드라고 부르게 되었다.

 

천길 낭떠러지 위에서

 

전망대라 했지만, 그냥 계곡을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포인트로 난간이 있거나 한건 아니다. 각자 알아서 주의하며 풍경을 감상해야 한다. 멋지다고 흥분해서 너무 오버하다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대로 대자연의 품에 영원히 안기게 되니, 아직 세상에 할일이 많이 남았다면 조심하시길.

 

저 멀리 낮에 뜬 반달

 

길이 꽤 잘 나 있어서 개인적으로 방문해도 별로 잃어버릴 일은 없어보인다. 코스는 주차장부터 계곡까지 내려가는데, 왕복 2시간, 전망대까지 가는데 왕복 1시간이 걸린다. 우리처럼 두곳을 다 돌아보면 넉넉하게 두시간 반쯤 걸린다고 보면 된다. 물론 계곡에서 휴식을 취하고, 길목 길목마다 감탄사를 지르며 사진 시간은 제외 하고 말이다. 다른 멤버들은 이 멋진 풍경을 어떻게 그냥 눈으로만 보고 휙휙 가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사진을 찍고 찍고 또 찍어도 뭔가 허전하구만...

 

 

 

 

프레디 컴백

 

칼바리 국립 공원에 오니, 드디어 영화속에서 보던 서호주를 만난 느낌이 들었다. 붉은 땅, 파란 하늘 메말랐음에도 뭔가 풍요로운 느낌을 주는 따사로운 그곳. 야생미가 넘치지만 한없이 섬세한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는 서호주. 벌써부터 나는 이곳에 단단히 빠져버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꽁무니도 안보이는 일행을 따라가야 하는데, 또 이 예쁜 꽃이 내 발목을 잡네...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만큼, 이곳도 나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오이군~ 기달려~ 같이가. 사막에서 미아되면 나 도마뱀 잡아먹고 살아야 된다~

 

 

       

칼바리 국립공원에 발목 잡히다

2013.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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