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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 대한민국 볼거리 먹거리/Seoul, Inchon | 서울, 인천
여의도 공원, 가을에 정신줄 놓았다 봉변당한 꽃들
2014. 12. 8. 15:37

정신 바짝 챙기고 삽시다
여의도 공원, 인생의 쓴맛

 

지난 일요일 여의도 공원을 지나는데, 진달래 한송이가 피어있는게 아닌가?

아니 눈내리고, 얼음얼고 난리가 났는데, 진달래가 무슨 깡다구로?

신기한 마음에 가까이 가 보니, 눈오기 전 그럭 저럭 따뜻했던 날씨에 봄인줄 알고 냉큼 피어났던 진달래가 핀 상태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상황은 철쭉도 마찬가지. 

가만히 제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성질 급하게 피었다가 봉변을 당하고 말았다. 한껏 제 인생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사라져 버린 가여운 녀석들. 아직 봉우리를 펼쳐보지도 못했는데, 그대로 겨울을 맞이해 버린 모습을 보니 측은하기 그지없다. 잠깐 정신줄 놓고, 삽질한 댓가가 꽤 크네.

 

삶이란 그런거다. 

내가 운이 없다고 한탄하기 전에 내가 성격 급하게 제때를 기다리지 못했는지, 정신을 놓고 살진 않았는지, 나를 한번 되돌아 보자. 세상이 나를 봄이라고 속일지라도, 내가 정신 똑바로 챙기고 살면 제대로 살아 남을 확률도 높아진다. 아무리 맞는 것 같아도 진짜 봄인지 한번 더 돌다리를 두들겨보자.

 

게으르거나 너무 집착하며 사는 것도 문제다.

사실 눈내리기 한주 전 까지도 여의도 공원에는 단풍잎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붉은 잎이 화사하게 오래 오래 반겨주니 나야 사실 좋았지만, 적절한 때에 물러날 줄 아는 것도 현명한 삶을 사는 방법이겠다. 게을러서 못떠난건지, 매달려 있는데 너무 집착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끝까지 남아 이쁜척 하다 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우아하게 속시원히 하늘을 한번 팔랑팔랑 날아 보지도 못하고, 결국 나무에 붙은 채로 그대로 말라 비틀어져 버렸다. 너무 모으는데, 일하는데 집착해서 인생을 제대로 한번 날아 보지 못하고 시들어 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라 착찹한 기분이 들었다.

 

 

 

텃새들의 겨울나기
미리 미리 적당히 준비하는 습관

 

옹기종기 모여있는 까지들. 몇몇은 망을 본다

 

그렇다고 늘 쉽게 놔 버리고, 날아다니기만 하자는 건 또 아니다. 적당한 때 놓을 줄 알고, 적당한 때 준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소리다. 물론 말은 쉽다. 특히 적당히라는 애매모호한 말.

 

어쨌든 눈이 내리자 미리 미리 준비하지 못한 새들은 비상이 걸렸다.

지난 주 까지만해도 이렇게 뭔가 줏어 먹을 것이 많은 듯 했는데, 

 

열매 따먹는 직박구리

 

한주만에 땅이 꽁꽁 얼어 붙어버리자 남은 열매 쟁탈전에 공원전체가 요란했다.

 

마른 나뭇 가지에서 눈조각도 떼어 먹어 보고, 

 

얼음도 쪼아 먹어 보고.

그런걸로 배가 부르겠나...

 

음식 사냥중인 박새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어딘지 안스러워 곡식이라도 한푸대 뿌려줘야 싶기도 하다. 

지금은 미안하게도 내가 빈손이네. 다음번엔 강냉이라도 들고 오마.

 

내가 사진을 찍느라 한자리에 가만히 서 있자, 뭐 먹을 거라도 주는 줄 알았는지 주변 새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그런데, 별게 없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의 눈뭉치를 콕콕 쪼아본다. 

빈손이라 미안하다, 얘들아. 

우리집 먹개비 까비가 생각나서 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가방 수색중인 까비

 

나갔다 들어오면 사람은 1초 반겨주고, 들고 온 가방은 5분 반겨주는데, 결국 아무것도 못찾아내면 잔뜩 실망해서 꼬리를 축 내리고 툭툭툭 침대로 되돌아 간다. 그 뒷모습이 늘 웃기고, 미안했는데, 눈을 쪼아대며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참새들을 보니 그 모습이 떠올라, 다음엔 꼭 싸구려 낱알이라도 들고 와야지 싶었다.

 

탐스러운 붉은 열매가 가득한 낙상홍

그런데, 집에오다 진짜 까비 같은 녀석을 발견했다. 가느다란 낙상홍의 가지가 휘청휘청 하길래 뭔가 궁금해 다가가 보니, 뚱뚱한 비둘기 한마리가 그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라 앉아 열심히 열매를 따 먹고 있는게 아닌가. 자기 다리보다도 가는 가지에 올라앉으니 나무가 꺾어질 듯 요동을 치는데도, 악착같이 먹겠다며 공중 곡예를 하고 있다. 뚱뚱한 몸매와 음식에 대한 집착이 까비와 완벽히 일치해서 단번에 친근감이 들었다. ^^;;

 

하긴 저 체구를 유지하려면 많이 먹어야 할 텐데, 좀 우스워 보여도 이해해 줘야 겠다.

직박구리가 저러고 있을때는 날렵하니 이뻐 보였는데, 비둘기가 저러고 있으니 뭔가 좀 추한 것 같기도...

음 역시 새나 사람이나 날씬하고 볼일이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이렇게 다른 느낌이라니...

 

나도 다이어트...

해야지. -_-;

 

 

나홀로 여의도 공원 산책 feat 주절주절 the end.

 

 

 

       

그러니까 결론은 다이어트!!!

2014.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