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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rica | 아프리카/Seychelles | 세이셸
[마헤] 세이셸의 수공예 시장 도맨 드 발 데 프레 (크래프트 빌리지)
2014. 11. 12. 17:13

도맨 드 발 데 프레 Domaine de Val des Pres 가는 길
초기 정착민들의 플렌테이션 농장이 예술가의 마을로

 

 

오전내 세이셸의 앙증맞은 수도 빅토리아를 돌아다니고, 공원에서 도마뱀들과 함께 식사도 마친 후 차를 몰고 외곽으로 향했다. 빅토리아에서 동쪽 해안 도로를 타고, 20분쯤가면 19세기 초기 정착민들이 농장을 하며 살았던 작은 빌라촌이 나오는데, 이곳이 지금은 수공예품 판매장으로 쓰이고 있다기에 구경을 하기로 했다.

 

 

관련글  마헤섬의 참새역은 도마뱀이 맡는다?

 

 

세이셸은 일본, 호주, 영국처럼 운전대가 우리랑 반대인데, 생각보다 그리 헤깔리지 않는다. 가끔 깜빡이 넣는다는게 와이퍼를 작동하게 되지만, 세이셸에서는 그 마저도 거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나 양방향 1차선 도로였던 것. 차선을 바꿀 일도 없고, 가끔 골목에 진입할 때 필요할 법 한데, 사실 그것도 빅토리아 시내 이외에는 거의 통행 차량이 없기 때문에 딱히 넣어야 할 필요성을 못느낀다. (수신제가 하라 하였건만...^^;)

 

우리가 렌트한 차는 나름 자동인데, 네비게이터같은 옵션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날로그 감성을 듬뿍 살려야 했다. 그러고 보면 대학다닐 때 까지도 부모님이랑 여행다닐 땐 항상 두꺼운 전국도로지도 책을 들고, 운전하는 아빠 옆에서 엄마가 인간 네비게이터가 되어 주셨었지. (그러다 길 잘못 들면, 칼로 물베기 싸움이 터지곤 했었다.) 우리도 켄윈하우스에서 받은 지도를 펴들고, 옛감성을 살려 보았는데, 사실 뭐 찾고 어쩌고 할 필요도 없다. 세이셸의 마헤섬엔 도로가 몇 개 없기 때문 ^^;

 

 

관련글  켄윈하우스는 어떤 곳?

 

마헤섬의 웅장한 화강암 산은 매일 볼때마다 새롭게 감동을 준다.어쩜 저렇게 멋드러지게 생겼을까.

 

 

 

 

 

 

앙스 오 뺑 Anse aux Pins
나홀로 그대를 기다리며

 

세이셸의 국제공항 바로 아래쪽에는 앙스 오 뺑 이라는 작은 해변이 하나 있다. 수공예촌 가기 바로 전에 위치하고 있는 곳인데, 갑자기 오이군이 이곳에 차를 세웠다. 해변 옆에는 알록달록 놀이터가 있고, 그 옆에는 테이크 아웃 점심식사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풍경이라면 뭘 먹어도 꿀맛이겠구만...

 

세이셸도 밀물과 썰물때의 격차가 큰 편인데, 밀물때 였는지 바닷물이 해변안쪽까지 들어와있었다. 모래위의 작은 산들은 전부 게구멍. 세이셸의 해변에는 게가 참 많다. 귀엽고, 예쁜 해변이지만 이미 훨씬 더 멋진 곳을 봐서 대단한 특색을 느끼지 못하겠는데, 오이군은 왜 여기 차를 세운걸까?

 

감자  자기야. 우리 여기 왜 온거임?

오이  나의 추억의 장소야. 여기서 혼자 여자친구를 기다렸었지.

감자  뭥미? 세이셸 처음 와 봤잔아. 무슨 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야.

오이  한국에서 날아올 여자친구를 기다렸었어. 5주동안 못봤거든.

감자  아...토요일 아침에 4시간동안 여기서 시간 보냈어? (따로 출발했기때문에 오이군이 나보다 세이셸에 4시간 먼저 도착했다.)

오이  응. 바다를 바라보며, 그녀가 타고 있을 비행기를 기다렸지.

감자  헤헷. 낭만 적이네. 그러느라고 렌트카 자동 빌렸는데, 수동 준 것도 못 깨닫고 있었어?

오이  응.

감자  그래서 수동에 기름 만땅 채워 넣었어?

오이  응. 그...그래도 다시 자동으로 바꿔줬잖아. ^^;;

감자  그 수동에 채워넣은 기름값 5만원 안돌려 준대. 계약서에 이미 싸인한 후에 기름 넣었다고. 아침에 주인이 그러더라.

오이  으응. 거 세이셸 인심 사납네...

감자  그래서 그 여자친구는 만났어?

오이  아니. 여친대신 마누라가 왔나봐. 어떤 여자가 옆에서 바가지 긁어.

감자  ㅋㅋㅋㅋㅋㅋ

 

 

 

크래프트 빌리지
고요하고, 아름다운 예술가들의 마을

 

 

도로에 미리 표지판이 있는게 아니라 들어오는 입구에 딱 한번 써있기 때문에 잘 보지 않으면 마을 입구를 놓치게 된다. 크래프트 빌리지가 아니라 도맨 드 발 데 프레 Domaine de Val des Pres 라고 쓰여 있다. 입구에 그림같이 놓여 있던 이 집은 예전에 농장의 하인들이 머물던 곳인 듯 했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않은 폐가.

 

안쪽으로 들어와 주차를 했는데, 여기가 대체 지금 운영을 하고 있는지, 안에 사람이 있기는 한건지 의심스러울 만큼 조용했다. 나름 관광지인데, 이렇게 고요하다니. 빅토리아 시내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곳도 북적이지 않는다는 것이 세이셸의 매력인 것 같다.

 

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 바로 오래전 농장 건물로 농장 주인들이 살던 곳이다. 인도양의 많은 섬들이 땅따먹기 시절 강대국의 식민지가 되어 농장으로 쓰였는데, 세이셸도 그 중 하나였다. 무인도였던 세이셸이 프랑스, 영국 식민지를 차례로 거치면서 노예와 노농자 였던 아프리카인, 중국, 인도인이 유입되었다고 한다. 현재 다민족 국가이기는 하나 국민들의 대부분은 아프리카계 인 듯 했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의 90%는 아프리카인 처럼 보였으므로.

 

건물 내부에는 옛날 영국인 가족이 살았던 시절의 모습을 보존해 놓았다. 1870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1972년 정부에 판매할 때까지 농장주였던 발리 Bailey 가족의 소유였다고 한다. 건물 한쪽이 레스토랑으로 쓰인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이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부수리 중인 듯. 공사장 징크스가 세이셸에도 따라왔다. ( 이집트 신혼여행때 부터 시작된 감자 오이의 공사장 징크스. 뭔가 보러 가면 늘 한쪽이 공사중이다.)

 

텅빈 공간에 목재가 놓여 있었는데, 먼지가 잔뜩 쌓인 것으로 봐서는 별로 바쁘게 공사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얼음이 동동 뜬 주스가 아까부터 생각났는데, 켄윈하우스도 카페가 아니고, 이곳도 레스토랑은 운영을 안한지 좀 된 것 같고. 아쉽지만 또다시 가방속에서 미적지근해진 생수로 목을 축였다. 

 

음료수 안팔면 기념사진이나 찍지 뭐.

어쩜 하늘이 이렇게 파랑고, 식물들이 알록 달록 할까나. 이러니 아프리카 미술품들이 총천연 색으로 알록 달록 할 수 밖에.

 

 

 

 

정부는 이 건물과 부지를 사고는 뭘 할까 고민하다가 관광객에게 세이셸의 공예품을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재정적인 이유로 8년 정도 계획만 세웠는데, 1985년에 드디어 미국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미국이 왜 이런데다 돈을 썼는지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12동의 새로운 건물이 마당에 늘어서게 됐다. 그 건물들이 위 사진 속의 알록 달록한 건물들이다. 따라서 이름이 크래프트 빌리지, 즉 공예품 마을이기는 한데, 가게 12개가 전부인 미니 사이즈 마을이다. 하긴, 세이셸 수도의 규모를 보면 이것을 마을이라 부를만도 하지. ^^;

 

내부는 이런 소박한 느낌의 공예품 가게.

한쪽에서는 가게 주인이자 예술가인 사람들이 직접 물건을 만들고 있다. 바닷가 문화니 당연히 조개 껍질 장신구가 많고, 그림은 항상 알록달록.

 

야자나무 껍질을 이용해 만든 모자들이 인상적이었다. 보고 있자니 영화속의 19세기 여인들이 무릎까지오는 흰색 원피스를 차려입고, 이런 모자를 쓰고, 일요일날 교회를 가려고 플렌테이션 농장 건물에서 나오는 모습이 떠올랐다. (구...구체적이기도 하지.)

 

판매하고 있는 공예품들은 장신구, 옷, 스카프, 모자, 비누, 그림, 조각 등이었고, 그중 가장 인상적인 물건은 바로 이 배 모형이었다. 저 위에 앉아계신 아주머니가 친구와 즐겁게 담소를 나누며 만들고 계셨는데, 자세히 보면 정말 엄청나게 정교하다. 너무 멋져서 하나 안고 들어오고 싶었지만, 저 세세한 부품들이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까? 줄이 빠지기라도 한다면, 저걸 대체 혼자 어떻게 수리한단 말인가. 세이셸로 AS보낼 수도 없고. 어떤 관광객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이걸 살까 싶었는데, 나중에 오이군 친구가 하나 사왔다고 자랑하더라. 오. 진짜 사는 사람이 있긴 하구나.

 

그리고, 가게에 들어갈 때마다 신기했던 점은 가게 주인들이 우리를 본체만체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먼저 인사를 하면 그때서야 인사를 하는데, 우리가 뭘 살지 별로 관심이 없는 눈치다. 이 곳 자체가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엄청나게 조용한 것으로 봐서 하루종일 사람 10명이 들어올까 싶은데도 딱히 뭘 팔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사실 워낙 사람이 없길래 한번 들어가면 물귀신 같이 물고 늘어져서, 꼭 사야만 나올 수 있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대체 이들은 뭘로 가게와 생계를 유지하는 걸까? 하긴. 생각해보니 세이셸의 어떤 가게 주인도 상냥하게 인사를 건넨적이 없는 것 같다. 그냥 이곳의 문화가 그런 듯.

 

그런데, 마지막으로 들어간 수제 비누집 주인아저씨는 다른 사람들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역시 친구랑 수다중이셨는데, 우리에게도 싱글벙글 인사를 건넨다. 그 역시 딱히 물건 팔 생각은 없어보였지만 친절함의 레벨이 다르다. 어디서 왔냐, 뭐하러 왔냐, 뭐 구경 했냐, 뭐 할거냐, 둘이 무슨 사이냐, 어떻게 만났냐...수다의 수다로 이어져 생각치도 않게 40분이나 가게에 앉아 같이 웃고 떠들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는 네팔 사람으로 (역시 그래서 손님 맞는 태도가 달랐던 거였어.) 전에 와본적도 없는 세이셸에 친구따라 와서 그냥 눌러 앉아 살게 됐다고 한다. 마침 여기 가게자리가 나서, 세이셸에서 나는 아로마 향료를 이용해 비누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뭐 딱히 손님은 없지만, 사시사철 따뜻하고(덥고), 분위기가 즐거워서 만족한다고 했다. 직접 그 나라에서 살게되면 생각하던 낙원은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지만, 또 마음 먹기에 따라 세상 어느 곳도 낙원이 될 수 있다는 심오한 말도 했다. 그런면에서 세이셸은 일단 보기에 예쁘기 때문에 낙원이라 착각하며 살아가기 좋은 곳이라고.

 

그의 그런 마음가짐 때문일까? 다른 가게들은 고요한 분위기였는데, 아저씨와 친구만 축제분위기다. 그들 때문에 나도 같이 기분이 업되서 예쁜 비누 몇개를 구입하게 됐다. 성인 여자 주먹만한 비누 하나에 8.5유로 였으니 전혀 싸지도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수다에 말렸구나...어쨌든 수제비누는 지인들에게 가볍게 돌릴 참 적정한 기념품인 것 같다. 지역 아로마가 들어있으니 지역색도 좀 묻어나고, 가방에서 부서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흘릴 염려도 없고, 받는 이도 쓰면 없어지므로 어설픈 열쇠고리처럼 집에 귀찮게 굴러다닐 이유도 없다.

 

아름다운 물방울 모양 정원과 싱싱한 나무들. 알록달록 꽃이 보이는 넓은 발코니를 가진 집. 식민지 통치자들이 얼마나 럭셔리하게 살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다 지나간 영화지만...

 

 

 

 

철조망에 걸린 천조각을 물어 뜯으며 놀고 있는 이 새가 무엇일까? 다름아닌 세이셸의 참새다. 암컷은 한국의 참새와 똑같이 생겼는데, 숫컷은 이렇게 어마어마 화려하게 생겼다. 포르르 날아가면 새콤 달콤 오렌지 향이 날 것만 같은 진한 주황빛.

 

이 새를 물끄러미 보니 그 네팔 아저씨의 말이 이해가 갔다. 먹을 것과 쉴 곳만 있다면, 그 어느 곳도 마음으로 낙원을 만들 수 있다고. 저 새는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래. 내마음이 즐거우면 세상 어느곳에 있어도 낙원이지.

그래서 오늘 우리는 낙원에 있다.

 

 

 

       

우리들의 낙원 fin.

2014.03.31

 

 

 

 

도맨 드 발 데 프레 Domaine de Val des Pres

위치  마헤섬 동쪽 생 로쉬 오 캅 St Roch Au Cap 해안. 빅토리아에서 남쪽으로 16km, 국제공항에서 남쪽으로 6km 떨어져 있음.
운영시간  평일 9시~17시 / 토, 일 휴무
홈페이지  www.seyheritage.sc/heritage-sites/domaine-de-val-des-pres (영문)
입장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