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추석 맞이

고향의 풍요로움 맛보기

우리는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미리 추석 식사를 해서, 정작 추석 당일은 평일같이 흘려 보내고 있었다. 한국에 살아도 스위스 회사에서 일을하는 오이군에겐 추석이 그냥 평범한 하루 일 뿐이니, 평소대로 일어나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으나...사방에서 고소한 전냄새와 달콤한 갈비향이 퍼져오는데, 조용히 않아 일만 하려니 좀이 쑤시는 모양이다. 연휴라 한국어 학원도 헬스클럽도 모두 쉬는 날인데, 웬지 일하고 있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나보다. 결국은 오후 반차를 낼테니, 추석 행사가 있는 곳을 찾아가자고 슬그머니 제안을 한다. ^^;

그래서 그의 전담 여행컨설턴트인 감자는 급히 서울내 추석 행사 리스트와 대중교통 노선을 뽑아 유일하신 고갱님 전달, 고갱님은 남산 한옥마을을 오늘의 여행지로 선정하셨다.


가볍게 대중교통으로 가려 했는데, 모두 지방 어디론가 빠져나가 서울 시내가 한적한 연휴이니 택시를 타자는 고갱님의 요구사항. 여행 컨설턴드이자 전담 가이드는 고갱님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서, 특별히 평소 잘 타지 않는 택시로 한옥마을 입구까지 모셨다. 오잉. 그런데, 다들 시골 내려 간거 아니었나? 어찌 이리 바글 바글? 멀리 골목 입구 부터 공영 주차장까지 긴 자가용 행렬이 이어졌고, 수많은 인파 덕분에 귀성길 민족 대 이동을 한옥마을 입구에서 경험하고 말았다. 서울에 있는 외국인들일까 싶었지만 외국인은 5%도 안되는 듯 하다. 내가 어릴적엔 명절에 서울이 텅텅 비었었는데, 요즘은 문화가 많이 바뀌었는가보다.


어쨌거나 사람 많으면 피곤한데, 왜 이런 사서 고생을...잠시 주춤 했으나 이미 엎지러진 물이다. 벌써부터 피곤해져, 부스트 업하기 위해 평소 즐겨마시지 않는 커피를 한잔 약처럼 원샷하고, 씩씩하게 입구로 걸어 들어갔다.


막상 한옥 마을에 들어서자 푸른하늘과 예쁜 기와 지붕, 그위로 싱그럽게 자라고 있는 박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남산 타워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살짝 흥이 나기 시작했다. 흥 많은 언니, 고갱님 보다 신이 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 방금 마신 카페인이 몸에 돌기 시작한 건지도 모르겠다. 


첫번째 눈에 띈 이벤트는 떡 방아 찧기.

찹쌀 밥에 물을 발라가며 커다란 망치로 두드려 떡을 만들어 보는 시간이었는데, 조금 여러군데에 이 이벤트가 있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저 방아 한번 내리쳐 보겠다고, 긴긴 줄을 서서 30분씩 기다리기는 싫어서, 결국 집에서 찹쌀밥 지어 우리끼리 치고, 패고 하기로 했다. 아이들을 체험시켜주고 싶은 부모님들만 사랑으로 줄을 서 계시더라. ^^;


가장 우리의 흥미를 끓었던 것은 짚공예 시연장이었다. 짚으로 다양한 생활 용품을 만드는데, 다양한 바구니는 물론 인형도 만든다.

그 중에는 닭이 올라 앉아 알을 낳을 수 있는 닭 둥지도 있었다. 짚으로 만든 닭둥지가 의외로 우리집 강아지 까비양에게도 하나 만들어 주고 싶게 포근해 보이더라. ^^


시연장에서는 체험도 할 수 있는데, 짚공예를 하시는 장인분들께 계란 꾸러미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주변에 옹기 종기 앉아 짚공예를 배우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치 시골집을 방문한 아이들이 할아버지와 정겨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계란을 움직이지 않게 잘 싸서 들고다니기 좋게 끈도 달아 준다. 짚이 말라 뻣뻣하면 잘 꼬아지지 않기 때문에 중간 중간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는 것이 팁.


사실 내가 만들어 보고 싶었던 것은 계란 꾸러미보다 바로 이 지푸라기 황소. 코뚜레가 없었다면 돼지인 줄 알았겠지만, 어쨌든 너무 귀엽다. 참, 사람들 솜씨도 좋고, 아이디어도 좋다.


짚 공예 외에도 연 만들기, 팽이 만들기, 활 쏘기 등 여러가지 공예 체험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버나놀이를 직접 해 볼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가운데가 가죽으로 되어있는 원반을 막대기로 돌리는 건데, 요것이 생각보다 어렵네. 게중에는 잘 돌리는 사람도 있던데, 대부분은 원반 돌리기가 아니라 원반 날리기. ^^; 애견과 함께 했다면 원반을 물어다 주겠지만, 대부분은 날아간 원반 찾아오느라 다리만 바빴다.


드디어 성공? 성공한 자의 여유?

에헴. 정지동작으로는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저 원반 사실 돌고 있지 않다. ^^;


간단하면서도 은근히 승부욕을 불러일으키는 투호놀이.


축제에 사물놀이가 빠질 수 없지. 모두가 흥에 겨워 어깨를 들썩이게 했던, 사물놀이와 전통 인형극 등이 펼쳐졌다. 인형극은 어린이를 위한 것인 듯 했지만, 사실은 어른들이 더 재밌게 보고 있었다. 



여담1. 아이 앞세운 공연장 진상 부모


대부분은 가족 모두가 정답게 즐기는 모습이 모기 좋았는데, 가끔 아이들을 앞세운 얌체족들도 눈에 띄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공연 시작 전부터 한참을 기다리던 사람들도 있는데, 뒤늦게 도착한 아이를 대동한 부모가 잠깐만요, 아이 좀 앞으로 보내주세요. 안보이니까...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이해하고, 배려해 줄 수 있지만, 왜 아이핑계대고, 온가족이 다 따라서 앞으로 오는 건가? 게다가 앞자리로 와서도 앉아 있는 사람들 때문에 아이가 안보인다고 칭얼댄다. 그러자 당당하게 목마까지 태우는 그의 아빠. 그럼 그 뒤에 있던 공연시간 전부터 기다리던 사람들은 억울하게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하는 거다. 뒤에 있던 대학생 커플이 조심스레 안보인다고 말해 보았지만, 그 얌체족 가족들은 죄송해요, 아이가 안보여서요.라고 당당하게 대답하며,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해준 뒷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그렇게 아이에게 공연을 보여주며 전통문화를 가르쳐 주고 싶었으면, 조금 미리와서 기다리며 인내하는 법과 다른 이를 배려하는 예절도 가르쳐 주면 좋으련만. 

앞자리서 목마까지는 아니지만, 아이 핑계대며 당당하게 밀치고 앞으로 나가는 부모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늦게와서 아이만 앞으로 보내기 불안하면, 일찍왔었어야지. 아이데리고, 힘들어서 기다리는건 싫지만, 우리아이는 꼭 앞에서 봐야하고, 나는 보호자니 같이 갈거다 라는 건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기다리는 건 아이가 있건 없건 다 힘들다. 

오이군을 비롯한 관광중인 외국인들이 밀치고 앞으로 나가는 부모와 아이를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길래, 민망해서 내얼굴이 다 빨개지는 것 같더라. 가끔 아이라서 피해 끼치는 게 어쩔 수 없는거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그것을 벼슬 삼아 자신이 이득을 챙기는 몇몇 부모님들, 예의 바른 내 아이가 어디가서도 예쁨 받는 다는 사실 왜 모르나요?


원래 남산 한옥마을 내에는 음식점이 없다. 국악당이 있는 곳에 전통카페가 전부인데, 오늘은 특별히 전도 부치고, 떡, 뻥튀기도 만들어 판다. 당연하지, 축제에 음식이 빠지면 되겠는가~

막걸리도 한사발씩 팔았었는데, 우리가 줄서는 사이에 이미 동이 나서 매우 건전하게 부침개만 먹게됐다. ^^;


전통 카페에서는 다도를 배워볼 수 있다. 강습 이외의 시간에는 몇몇 전통차를 야외에서 판매했는데, 가장 눈에 띄었던 연잎차. 맛이나 향보다 커다란 연꽃이 통째로 들어있어 비주얼이 압도적이었다.



가을이 살그머니 내리고 있는 한옥 마을 풍경

가을 하늘에 여름 햇살

공연과 놀이에 빠져 한옥마을 풍경은 눈여겨 보지 않았는데, 우연히 둘러 보다 살짝 단풍이 들기 시작한 나뭇잎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벌써?


하늘은 높고 푸르러서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겼지만, 아직 기온도 높고, 살짝 남은 습기 때문에 한낮에는 여름 분위기가 났는데 말이다.


여전히 물가에 앉아 있는게 좋고, 흐르는 시내를 보면 그것이 인공이라 할 지라도 발부터 담그고 싶은데, 벌써 가을이 소리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올해도 벌써 한해가 다 간 것 같아 마음이 싱숭 생숭 해졌는데, 생각해 보니 아직도 1/4이 넘어가는 많은 시간이 남았다. 물컵에 절반 남은 물을 보고, 절반밖에라고 생각하며 슬퍼하기보다는, 절반이나라고 생각하는 긍적적인 사람이 되야지. ^^;


우리도 가방에든 쿠키를 꺼내 먹으며 물가에 앉아 늦여름을 즐겼다. 

오이군이 어디선가 읽은 셀카 잘찍는 방법에는 얼굴을 앞으로 살짝 밀라는 문구가 있었다고 한다. 턱살이 뒤로 당겨져, 턱선이 또렷하게 이쁘게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물을 보니 별로 공감이 되지 않...^^;



여담 2. 행사장 진상 사진작가

앉아서 노닥거리고 있는데, 저쪽에서 누군가 말다툼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들어보니 대포만한 카메라를 든 사진사가 어떤 부부의 아이 사진을 마구 찍었던 모양이다. 멀리서 도촬한 것도 부족해서 가까이 다가와 막 들이대고 찍은 모양인데, 불쾌하게 느낀 부모가 아이 사진 마구 돌아다니는 것 싫으니 지워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사진사는 이거 별거 아니예요. 제가 예술가거든요. 프로 사진 작가예요. 아이가 예뻐서 찍은 것 뿐이예요. 라며 슬그머니 내뺄려고 하는게 아닌가. 게다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이유. 계속해서 부모가 삭제를 요청하자 마지못해 지우면서 궁시렁 거린다. 거참 별것도 아닌걸 가지고, 유별나게...쯧. 아니 그렇게 별게 아니면 찍지를 말지, 프로라는 사람이 초상권에대한 개념도 없단 말인가. -_-; 사실 가끔 나도 진짜 귀여운 아이나 멋진 사람, 독특한 사람을 보면 카메라에 절로 손이 가는 경우가 있다. 사실 그런 경우에는 찍어도 되냐고 동의를 구하는게 맞는거지, 지워달라는 사람에게 도리어 화를 내다니. 카메라 팔때도 인성검사 해야된다. -_-;


▲ 감자 장군과 오이 아기씨


1994년에 묻은 서울 천년 타임캡슐.

서울이 수도가 된지 600년을 기념하는 대형 타임캡슐을 이곳에 매설했다고 한다. 400년 뒤인 2394년에 개봉 할 예정인데, 그 리스트를 보니 재미있는 것들이 몇가지 있다. 정력팬티? 그런게 다 유행했었나? 그때 나는 어려서 잘 몰랐던 모양이다. ^^; 그 외에 삐삐, 버스표, 토큰, 인천공항이 아닌 김포공항 정보 등 20년이 지난 지금도 벌써 추억을 자아내는 것들이 있다.


남산 한옥마을 나들이 덕분에 도시에 남은 우리도 추석 분위기를 느껴 볼 수 있었다.

20년 뒤 어느날, 이 블로그를 보면, 저 타임캡슐 리스트처럼 우리에게 작은 향수를 불러일으켜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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