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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 평범해서 소중한 일상
꽃으로 기억하는 당신 없는 봄
2014. 3. 28. 19:49

벚꽃 엔딩

 

올해는 봄을 오이군 없이 감자 혼자 맞이 했다. 

그리고 어제 그가 없는 서울에 벚꽃이 피어 버렸다. 서울에는 4월 중순에나 필거라던 예보가 무색하게 아파트 입구에서 화사하게 미소 짓던 벚꽃. 5주간의 짧지 않았던 원거리 연애를 마칠 무렵이었다.

 

 

 

 

 

 

첫째주 : 당신 없는 봄

 

언제부턴가 매년 나른한 봄바람을 같이 학수 고대 해주던 오이군이 올해는 봄이 살그머니 다가 올 즈음 5주간의 장기 출장을 가버렸다. 이미 원거리 연애에 익숙한 우리라지만, 5주는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다. 예쁜 꽃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느라 발걸음을 멈춰도 '빨리 좀 와~ '라고 다그쳐 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 나는 더이상 익숙하지 않다.

 

그가 없는 하늘 아래서 산수유가 제일 먼저 봄을 알렸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한번도 1년을 고스란히 함께 있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국적이 달랐으니 처음 연애할 때야 말할 것도 없고, 결혼을 하고 난 후에도 마찬가지 였다. 스위스는 군대를 30살까지 매년 3-4주씩 가기 때문에, 한해에 3주는 기본으로 떨어져 있었다. 내가 가끔 혼자 한국 친정집에 와 있을 때도 그렇다. 한국으로 거주지를 옮긴 지금은 오이군이 매년 스위스에 한달씩 다녀온다.

해마다 우리는 이별과 만남을 경험한다.

 

 

 

둘째주 : 꽃비가 내리네

 

올해의 이별은 연인들의 날, 화이트 데이를 끼고 있었다. 

결혼한지 7년이나 됐다며 무슨 연인들의 날의 신경 쓰냐고? 우리는 매년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 때문에, 늘 새로 시작하는 연인이다. 1년이 채 되지 않은 풋풋한 연인. 헷 ^^;

 

3월 14일. 안챙겨도 그만인 날이지만, 달콤한 초컬릿을 쌓아 놓은 거리의 상점들은 나와 의견이 다른 모양이다. 또 오이군의 의견도 달랐다. 평범하게 시작한 나의 하루에 첫번째 꽃폭탄이 투척 됐다. 2월 14일에 선제공격으로 전달했던 초컬릿과 선물들에 대한 보답이리라. 아파트 숲에 피어난 3월의 붉은 장미.

 

오이군이 없는 동안 자주 못본 친구들을 모두 만나겠다고 다짐, 하루도 쉬지 않고, 감자는 마실을 나갔다. 덕분에 밀린 일들이 방 문을 여는 순간 아우성이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매일 점심 약속을 잡았다. 바쁘면 시간이 빨리가니까.

 

오늘은 노오란 프리지아처럼 명량한 미소로 나를 즐겁게 하는 오랜 친구를 만나는 날이다. 벌써 지난 주에 향기로운 프리지아를 불쑥 들이밀며, 나에게 봄 구경을 시켜주었던 친구. 그녀와의 만남은 늘 나를 설레이게 한다.

 

행복한 나들이를 마치고, 일더미가 쌓여있는 나의 작은 작업실이 있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밀린 한지등 주문을 채우며, 혼자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저녁식사는 뭘까를 고민하면서.

그런데, 저게 누구?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자 커다란 꽃바구를 안고있던 경비아저씨가 나를 부르신다.

두번째 꽃폭탄이 도착했다며.

 

이쯤 이면 혼자먹는 저녁도 딱히 외롭지 안겠다고, 생각하는데, 세번째 꽃폭탄이 투척됐다. 작은 감자 피자와 함께. 오이군도 어느새 능숙한 배달의 민족이 되어가고 있다. 한글로된 싸이트에서도 온라인 주문을 곧잘한다.

 

 

 

 

 

 

셋째주 : 서울의 봄

 

오이군이 없어도, 내가 더이상 만날 친구들이 없어도, 봄은 계속해서 성큼성큼 다가온다.

 

봄이니 하루 세번 산책을 가고 싶다는 까비양도 슬슬 자신을 매일 꼬박고박 데리고 나가주던 녹색눈의 누군가가 그리운 모양이다.

 

 

 

넷째주, 다섯째주 : 고향의 봄

 

까비양과 룰루랄라 안면도 나들이.

근 십년만에 하는 엄마와의 풀타임 데이트였다. 시간이 흘러도 나는 늘 어리광쟁이 딸, 엄마는 늘 외계인 엄마.

왜 엄마가 외계인이냐고 물으신다면...나의 안드로메다에서 온 것 같은 성향과 성격은 다 엄마한테서 온 것 같다는 오이군과 친구들의 결론. 그러니까 엄마가 외계인 임이 틀림 없다. 나는 서울에서 왔으니까. ㅋ

 

안면도는 봄이 살짝 늦은 것 같다. 이제서야 담장마다 동백이 활짝피었다.

 

작다고 무시하지 말라.

그 아름다움은 누구보다 못하지 않으니.

단지 보는자가 마음을 닫고, 눈을 감고, 자세히 보지 않을 뿐.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부터 들꽃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덕분에 크기는 작아도 그안에 빛나는 우주를 가득 담고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산에는 꽃이 피네. 꽃이 피네.

산길을 걸으니 어릴적 읽은 책의 제목이 생각났다.

아직은 갈색빛의 숲이지만, 진달래도 잔뜩 머금은 봉우리를 터트릴 준비를 하고, 올해의 첫 개나리도 방글방글 웃는 듯 했다.

 

연로하셔서 날로 시력이 떨어지는 까비양도 향기로운 풀내음을 만끽하며 행복해 했다.

그렇게 안면도의 봄이 무르익었다.

 

 

 

 

 

 

D-1 :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화사한 벚꽃처럼 내마음을 활기찬 웃음소리로 가득채워주는 곰파 친구들과의 밤을 마지막으로 올해의 싱글라이프는 끝이 났다. 이제 내일이면, 나는 새로 태어나는 신부처럼 설레이는 미소를 가득 담고, 그가 기다리고 있을 세이셸로 떠난다.

칠년이 지나도, 오십년이 지나도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여전히 설레이리라.

 

 

2014년 감자꽃 독수공방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