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의 설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어승생악

왕복 한시간에 이런 풍경이! 노력대 성능비 최고의 등산코스


제주살이 7개월. 제주는 한라산 위가 아니고서야 겨울에 웬만하면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겨울에도 눈대신 비가 오더라. 작년에 폭설로 도로가 마비 될 정도였다기에 눈 좋아하는 오이군은 내심 기대를 했는데, 올해는 그런 행운(?)은 없는 모양이다. 

중부지방에 눈이 많이 왔던 며칠 전, 제주에도 눈이 오락가락 하긴 했는데, 전혀 쌓이지를 않아서 감질난 오이군과 한라산 어승생악을 찾았다.



세상에, 여기 제주 맞아?

1100도로 주변에 눈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리목 주차장에 이르자 전혀 다른 나라에 온 듯했다. 집 주변에는 말들 먹일 목초 씨앗을 뿌려놔서 여전히 초록 잔디가 가득한데, 한시간도 안되는 이곳은 눈의 왕국이라니. 이것이 제주의 매력인가보다. 하루에 다양한 계절을 구경할 수 있다.



어승생악은 한라산 중턱에 있는 오름으로 한시간이면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다. 한라산이 보고 싶은데, 백록담 정상까지 가기는 부담되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곳이다. 탁 트인 시야로 한라산의 아름다움과 제주시내를 비롯해 주변의 오름, 제주 북쪽 바다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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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올라가는 길이 겨울엔 이렇게 눈의 왕국. 경사가 대단하진 않지만 전부 계단이라 조금 힘들기는 한데, 그래도 가는 길과 정상의 풍경은 노력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아니 적은 노력으로 너무나 훌륭한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오히려 미안한 곳이랄까?



신원을 알 수 없는 외국인 오X군이 한글 표지판을 읽지 못하고, 길 밖으로 벗어나고 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어리목 광장과 어승생악을 찾는 외국인들도 참 많았는데 각종 표지판이 대부분 한글로만 써있다는 점. 뭐 대부분 내용이 짐작 가능한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영어랑 한자로도 써있다면 조금 더 친절한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명실공히 한국 대표 관광지 제주 아닌가. 그 중에서도 제주의 상징인 한라산이니 말이다. ^^



정상이 가까와 오자 나무들이 작아지고, 시야가 밝아진다.

그리고 그 위에서 우리를 맞아 준 것은...



엄청난 까마귀군단.

새우깡을 노리는 바닷가의 갈매기 처럼 까마귀들이 쪼르르 대기하고 앉아 여행객들의 간식을 곁눈질 한다. 커다란 부리가 위협적으로 느껴졌는데, 가만보니 까만 눈이 초롱초롱 은근 귀여운 구석이 있다.

그러나 너희들은 있다가 상대하기로 하고, 나는 일단 기쁨의 세레모니를 하련다.



어승생악 정상까지 1,160m를 바닥부터 올라온 듯 의기양양하게 한장.

뒤로는 하얀 모자를 쓴 한라산 정상이 보인다.



한라산 근처만 오면 언제나 날씨가 흐리거나 안개가 꼈었는데, 이날은 웬 조화인지 오히려 날씨가 개이고, 새파란 하늘이 하얀 눈산 위에서 시리도록 빚났다. 겨울 한라산의 매력을 200%느낄 수 있었던 감사한 날.



눈이 쌓인 어승생악 너머로 보이는 서쪽의 오름들



정상에만 눈꽃이 핀 한라산. (클릭하면 큰 사이즈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예쁜 곳에 어이없게 벙커가 하나 있어서 보니, 옛날 일제 시대의 잔재였다. 여전히 견고해서 들어가 볼 수도 있다.



+ 이게 한국이 만든거야, 일본이 만든거야?

- 일본넘들이 우리한테 만들게 했지.

+ 그럼 일본이 만든거구나?

- 아니아니. 그넘들 핍박에 우리나라 사람이 고생해가며 만든건데 우리가 만든거지.

+ 그니까 내말은 일본이 설계하고, 만들게 해서 기지로 쓸려고 그런거냐는...

- 아냐. 우리가 피땀흘려 만든거야. 우리꺼야.

+ 아니 그러니까 내말은...

- 몰라몰라. 우리가 만들었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들었어.




오이군이랑 일본 얘기만 나오면 왜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게 되는지...  ㅡ.,ㅡ;



어승생악 정상의 멋진 풍경들과 지하벙커를 탐색하고 났더니 드디어 배꼽시계가 기별을 하기 시작한다. 

밥 내놓으라, 밥!

그래서 고분고분 삼각김밥을 꺼내 배꼽시계를 진정시키고 있는데, 이번에는 까마귀들이 모여들어 기별을 하기 시작한다. 

밥 내놓으라, 밥!

또랑또랑 기대에 찬 눈빛을 져버릴 수 없어서 찬공기에 딱딱해진 밥풀을 던졌다. 그러자 하얀 눈산 위로 우아한 까만 날개들이 쫘악쫘악 펴지며 공중에서 밥풀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스케이트 선수 자세로 밥을 기다리는 녀석



먼산 보는 척, 뒷눈 질로 밥을 기다리는 녀석



한라산과 똑같이 머리에 하얀 모자 쓰고 앉아 삼각김밥 먹는 오이군



벤치가 하나밖에 없는데 누가 앉아 있어서 그냥 바닥에 철푸덕 앉아 딱딱해진 삼각김밥을 우적우적 씹었다. 그래도 눈 앞에 펼쳐지는 눈꽃핀 숲과 제주 시내, 푸른 바다 풍경에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았다.



사실 이날 저기 보이는 한라산 정상에를 가고 싶었는데, 이게 밤낮이 바뀐 우리에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12시 전에 진달래 대피소까지 가야 한다던데, 그건 늦어도 집에서 아침 7-8시에 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 그러나 10시 기상 리듬에 완전 길이 든 우리는 아무리 알람을 세개씩 맞춰놔 봐야 스누즈도 아닌 완전 취소를 눌러놓고 다시 잠이 든다. 나도 오이군도 전혀 기억이 없는데 대체 누가 맨날 알람을 꺼버리는 걸까.



늦게 일어나져서 그냥 가지말까 하다가 어승생악이라도 가자 했던건데, 안왔더라면 너무나 아쉬울 뻔 했다. 나무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린 걸로 봐서 이곳은 영하라는 소리건만 제주의 겨울로는 드물게 바람도 없고, 햇살도 쨍쨍해서 하얀 눈이 아니라 벚꽃이 핀 봄같이 느껴졌다.



지나가다 나무 위에서 쏟아져 내린 눈꽃벼락 맞고 좋아(?)하는 중.



- 아니 자긴 왜 영유아기도 아닌데, 사물을 입으로 가져가는 거야...

+ 어릴 때 눈 가끔 먹었는데, 눈맛이 똑같네.

- 그럴리가. 스위스 청정 알프스 눈 이랑 같을 리가 없잖아. 우리는 중국눈(chinese snow)이야.

+ 뭐? 중국인(chinese) 눈? 고기들었어? ㅋㅋ

- 아니. 미세먼지 들었다고. ㅋㅋㅋ




미세먼지가 들었을지언정 어승생악의 설경은 스위스 알프스가 부럽지 않았다.

겨울에 제주에 간다면 꼭 한번 가보시라고 추천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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