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뵈브 보호구역 The veuve special reserve

기다란 까만 꼬리의 매력적인 세이셸 토종새를 찾아서


세이셸의 참새들


라 디그 섬 la digue island 에서의 아침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아주 일찍 시작한다. 

어제봤던 아름다운 바다가 눈 앞에 아른거려서 저절로 눈이 떠지기도 했지만, 꼭두 새벽부터 온동네 닭들이 수선을 떨기 때문이다. 한 6시쯤 되자 차라리 코끼리라면 믿을만한 목청으로 닭들이 울어 제끼더니, 연이어 섬에 사는 모든 새들이 따라서 일제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노래도 여러곡을 한번에 틀면 잡음으로 바뀌기 마련. 오이군이 괴로운지 베개로 머리를 싸맨채, 온몸을 뒤틀고 있다. 결국은 내가 먼저 일어나 그럼 이 시끄러운 녀석들 사진이나 찍어볼까 하고 발코니로 나갔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주변이 고요해진다. 아침 8시에 이미 아침식사 마치고 다시 자러간 모양. 오이군이 좀비같이 발코니로 나오면서 남의 잠은 다 깨워놓고, 지들은 다시 자러 갔다며 투덜 투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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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뵈브 La veuve 보호구역으로 가는 입구


오늘은 라 디그 섬내의 세 장소를 구경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세이셸의 라 디그 섬에서만 사는 딱새 flycatcher의 일종인 뵈브 보호구역을 탐험하고, 두번째로는 내셔널 지오그래피에서 선정한 세계의 가장 아름다운 해변 앙스 수스 다정에서 감동의 오후를 보낸 후, 자전거를 타고 섬 가운데를 가로질러 내려가 그랑 앙스라는 해변에서 드높은 파도에 몸을 맞기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 하기로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의 맛나는 아침을 먹고, 첫번째 목적지인 뵈브 보호구역으로 향했다.

자전거를 타고 스쳐지나가는 모든 풍경속에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이 섬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서두르는 법이 없다. 

슈퍼마켓 물건계산도, 레스토랑 서비스도, 유일한 공공교통수단인 소달구지도 모든 것이 너무나 느린데, 그 어느 누구도 인상 찌푸리는 경우가 없다. 우리에게 느림이라 느껴지는 그 속도가 그들에게는 느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이라는 것이 모두에게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풍경이었다.

시간이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늘 시간이 없다.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에게는 늘 시간이 많다.



잠시 풍경을 구경하며 페달을 밟았더니 그새 보호구역 입구에 다다랗다. 섬이 가로 세로 3km, 5km밖에 안되서 모든것이 가까이에 모여 있다. 그렇지만 그 작은 섬안에 멋진 풍광들이 꽉꽉 눌러 담겨 있기 때문에 절대로 하루 이틀로는 이 섬의 매력을 모두 섭렵할 수 없다. 여행을 계획할 때도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라 디그에서의 일정을 더 늘리는건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보호구역이라고 해서 입구가 뭔가 거창할 것 같았는데, 그냥 이렇게 펫말하나 딱 붙어있는 숲이다. 마을과 숲 경계를 따라 길이 나 있는데, 딱히 울타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미리 지도를 보고 오지 않았더라면 여기가 보호구역인 줄도 몰랐을 것 같다.



탐방로는 흙길인데, 길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듯 하여 신나게 자전거를 탄채로 들어섰건만...

한 10m도 안돼서 되돌아 나오고 말았다. 길에도 튼튼한 판근을 가진 나무들이 뿌리를 내뻗고 있어서 MTB를 타고 왔다 하더라도 난감한 지형. 하물며 게스트하우스에서 빌려준 시장바구니 달린 자전거로는 어림없는 길이다.



결국 자전거를 다시 끌고 나와 입구에 세워뒀는데, 그러기를 정말 잘했다. 조금 더 들어가자 길이 이렇게 변했다는 ^^;


불어로 라 뵈브 la veuve라고 부르는 세이셀 검은 딱새 Seychelles black flycatcher는 참새만한 작은 새로 그 수가 많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보호종으로 지정되었다. 그 새들이 세이셸에서 타카마카Takamaka라 불리는 이 뿌리큰 나무들을 좋아해서 이곳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 나무들은 세이셸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나 호주, 아프리카 등 열대 지방에서 혼히 볼 수 있는 나무다. 그러나 뵈브는 오직 세이셸에서만 그것도 115개의 섬중에 라 디그에서만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다른 섬들에도 이주시킨 몇마리가 살고 있는데, 대부분은 이 작은 섬 안에 모여사는 희귀한 새다.



근데, 얘들아, 너희 대체 어디있니?

다른쪽 입구에 가보니 탐방센터가 있어서 기념품을 약간 팔고, 새 찾는 방법등의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탐방센터 직원과 함께 돌아보는 프로그램은 마련되어있지 않다고 한다. ㅠ_ㅠ 그냥 알아서 열심히 찾아 보는 수 밖에. 뵈브는 사람 머리 높이의 낮은 나뭇가지에 많이 앉아 있고, 보통 암수가 함께 다니기 때문에 암컷이 보이면 근처에 반드시 숫컷이 있다고 한다. 근데, 이름이 왜 뵈브 일까. veuve는 불어로 과부라는 뜻이다. 암수가 함께 그렇게 사이가 좋으면 연인, 사랑하는 이들이란 뜻의 아무뢰 Amoureux 같은게 맞지 않나...? ^^;


그런데, 여기...사실은 새 보호구역이 아니라 모기 보호구역이었던 모양이다. 세이셸에 온 뒤로 거의 볼 수 없었던 모기들이 숲속으로 들어오니 엄청나게 나타났기 때문. 보통 나보다 모기들이 선호하는 오이군은 계속 춤을 추며 걸어다녀야 했는데, 뒤에서 보니 모기 구름이 그를 쫓아가고 있었다. 정말 시각적으로 구름처럼 보였다는...



나도 모르는 사이 계속 보게 되는 오이군의 모기쫓기 댄스 ^^;


새를 찾아다니는 두시간 동안 오이군은 2백군데가 넘게 물리고, 나도 한 50군데 물렸는가 보다. 모기 쫓는 약이 필수인데, 우리는 마침 모기약이 똑 떨어져서 속수 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다.


아래에는 사람에따라 혐오동물로 분류되는 사진이 두장 나갑니다. 잽싸게 넘기세요. ^^



사람을 마주치면 오히려 놀랄만큼 한적한 곳이었는데, 저쪽에서 4명의 그룹이 쥐죽은 듯 숨소리도 안내고 무언가를 보고 있다.

앗! 뵈브인가?

기대에 차서 나도 살금 살금 다가가 봤는데, 주인공은 꼬리가 둘로 갈라진 도마뱀.

아쉬운대로 일단 이거라도 찍자.



열심히 나무 위를 탐색하면서 걷는데, 오이군은 종종 머리를 숙이고 지나가야 했다. 이녀석들이 공들여 지어놓은 집을 부수지 않기 위해서.

뭐 물론 집 부서진 거미뿐만 아니라 우리도 그닥 기분이 좋을리 없지 않은가. ^^;



뵈브가 혹시 놀라 날아가 버릴까 조심 조심 걷고 있는데, 저편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난다.

오옷, 이번에는!!!

새는 새인데, 그리 희귀한 녀석들은 아닌 듯 ^^; 인근 집에서 키우는 것인지 야생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닭과 병아리들이 숲속을 산책하고 있다. 그래. 동물들이 저렇게 살아야 되는데 말야. 귀여운 닭가족이 지나가는 걸 엄마미소머금고 쳐다보는데 어디선가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진다.



엄마야, 깜짝이야.

다른쪽에서 아빠닭이 모가지를 180도 돌린채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족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어라는 결의가 느껴지는 부리부리한 눈.

걱정말렴. 행복하게 잘 살아 닭들아. 근데, 너희 뵈브 못봤니?



다시 모기와 싸우며 숲을 헤메는데, 작은 새 한마리가 보인다.

이넘인가 라고 하기엔 그림으로 보던 것과 너무 다르다.

오늘은 운이 없는가보다.

아쉽지만 모기가 너무 괴롭혀서 그냥 숲을 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나가는 길이 어디지? -_-ㅋ



이번엔 새가 아니라 나가는 길을 찾아 헤메고 있는데, 저쪽에 어떤 새 한마리가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앗, 암컷 뵈브!

그렇다. 이게 바로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바로 그 뵈브의 암컷이다. 밝은 갈색 꼬리와 날개, 흰 배, 검은 머리. 탐방센터 사진에서 봤던 바로 그녀석이 분명하다.

암컷이 있으면 근처에 숫컷도 있댔는데...

숫컷이 그 특유의 긴 꼬리를 가지고 있고, 이름처럼 푸른빛이 살짝 도는 검은 색이기 때문에 사실 숫컷이 더 보고 싶었다. (내가 여자라서 그런게 아니고!) 암컷이야 뭐...솔찍히 참새와 비슷해서 딱히 신기하게 느껴지진 않았으니까.



열심히 주변을 살폈는데, 가까운 곳에 앉아있던 암컷 두마리만 더 발견했다. 

뭐야. 항상 커플로 있댔는데. 이녀석들은 레즈비...흠...

아니면 정말 뵈브라는 이름처럼 과부클럽이라도 되는 건가?



 이것이 숫컷 뵈브의 포스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결국 우리는 숫컷을 찾지 못했다. 암컷이 있는 주변으로 반경 10m 이내를 샅샅이 훑었으나 눈에 띄지 않았다. 암컷을 봤으니 숫컷도 분명 어딘가에 있을텐데, 모기 쫒는 약이 없어서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세이셸까지 언제 또?! -_-;)


뵈브 보호구역은 세이셸의 고유 식생을 간직한 곳으로 어딘지 제주도의 비자림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습한 열대 우림과는 다르게 살짝 건조하면서 피톤치드가 쏟아져 나오는 느낌. 고요함 속에 은은한 나무 냄새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 가득해서 그냥 산책을 하기도 좋은 곳이다. 단, 모기기피제를 잔뜩 뿌리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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