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여행지, 강원도의 설경을 찾아서

그런데, 날이 왜 이리 따뜻해? 이상과 현실의 차이


집 테라스에서 바라본 동네 풍경


전국일주 100일째.

낭만 가득했던 안동에서 3개월을 보내고 두번째 여행지인 원주로 왔다. 사실 내 마음같아서는 따뜻한 남쪽으로 더 내려가고 싶었지만, 여행지를 고민하는데 오이군이 겨울에 흰눈이 펑펑오는 곳에서 스키를 질리도록 타보고 싶다며 슈렉의 고양이 눈을 하는게 아닌가. 남자든 여자든 애교 공략은 가장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엘사의 겨울 궁전도 녹일 법한 고양이 눈에 녹아서 그 추운걸 싫어하는 내가 어느새 강원도 산골짜기의 월세방을 알아보고 있더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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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머물고 있는 집 뒷쪽은 산인데, 초저녁 무렵에는 고라니가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진 가운데 나뭇가지 뒷편)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기왕 추운 강원도로 가기로 한거 스키를 신나게 타고, 눈구경도 질리게 하도록 평창이나 태백 인근의 강원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래서 몇날 며칠 월세집을 찾아서 열심히 인터넷을 뒤지며 전화기를 가열시켰으나 현실이 꿈과 100%부합하기는 어려운 듯. 인적이 드문 산속에는 겨울에 2개월을 보낼 수 있는 마땅한 집이 없었다. 스키장 앞은 전부 시즌방으로 돌려 놓은 상태라 하고, 작은 도시들의 부동산에서는 2개월짜리 풀옵션(침대와 이불, 주방도구까지 제공되는) 집은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펜션에 머물자니 가격이 발목을 잡는다. 결국 제일 만만한 에어비앤비로 돌아서서 몇날 며칠 열심히 토끼눈을 만들다 드디어 적정가격선의 괜찮은 집 한채를 발견했다. 위치는 원주. 원했던 스키장 앞도 아니고, 첩첩산중 골짜기도 아니지만 이 정도면 어느정도 타협이 가능한 위치인 것 같았다.



동네 신고식은 역시 자전거로


용평이나 하이원같은 대형 스키장은 아니지만 오크밸리와 약 30분쯤 떨어져 있고, 깊은 산속은 아니지만 뒷쪽으로 저녁 무렵 고라니가 돌아다니는 나즈막한 야산이 있다. 무엇보다 이 집에서 우리를 사로잡은 것은 2층 테라스 앞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논과 밭과 과수원. 이 집은 한번쯤은 살아보고 싶었던 현대식으로 지어진 전원주택이었던 것이다. 1층에는 집주인 부부가 살고, 우리는 2층의 작은 방하나와 작은 거실 그리고 커다란 다락방을 빌려 쓰게 되었다. 여자들의 로망인 아기자기한 다락방인데, 아쉽게도 바닥에 난방이 안들어와서 겨울에는 한낮에 잠깐 가서 놀만은 하지만 해가 떨어지면 바로 손가락에 감각이 사라지는 골방으로 돌변한다. 여름에 왔더라면 환상적인 공간이 될 뻔 ^^;



다행히 걱정하던 주거문제는 해결이 되었는데, 이번엔 날씨가 또 문제다.

도대체 겨울이 오지를 않는거다. 눈구경 한다며 애써 강원도로 찾아온 보람도 없이 매일 매일 늦가을인지 초봄인지 알 수 없는 기온과 풍경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집 아저씨는 매일 매일 열심히 장작을 만드셨다. 저걸 다 파는건지 직접 쓰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겨울은 도무지 저게 필요할 것 같지가 않은데...



날씨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게 아니라서 우리는 아쉬운대로 눈길 트레킹 대신 자전거 하이킹을 선택했다. 

눈이 없다며 투덜거렸는데, 동네 방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보니 그새 기분이 날아갈 듯 행복해진다. 개천에 들쭉 날쭉 자라나는 억새가 햇살에 반짝이니 영락없는 늦가을 같았지만 뭐면 어떠랴. 



동네 과수원에 첨단무인경비라고 붙어 있는데, 과수원 문은 활짝 열려있고, 안쪽에 작은 개 세마리가 묶여 있었다. 첨단 무인경비는 다름아닌 저 개 세마리인듯. ^^;



집 근처에 백운산 휴양림이 있는데, 가는 길목에 가로수가 온통 산수유였다. 봄철에 산수유 꽃이 활짝피면 얼마나 또 예쁠지. 과수원이 전부 복숭아 과수원이라 봄철에는 꽃동네로 바뀔 듯 하다. 



날이 전혀 안춥다고 했더니 그래도 응달에는 조금씩 얼음이 얼고 있었다. 수면부터 천천히 얼어가며 생긴 결정이 신비롭기 그지없어서 논가의 또랑에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얼음사진을 찍었더니 동네 사람이 지나가다 뭔가 하며 또랑을 한번 쳐다 보고, 나를 한번 쳐다본다. 그러다가 그 앞에 서있던 오이군을 발견하고 움찔 놀란다. ^^; 안동에는 외국인이 꽤 많아서 오이군의 존재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는데, 원주에 와서는 시내가 아니라 외곽의 시골마을이라 그런지 동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헬로우하며 오이군을 한번씩 불러 보며 신기해 한다. ^^;



내친김에 자전거로 백운산 휴양림까지 가봤더니 계곡의 그늘진 부분은 나름 겨울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얼음이 얕게 얼어 그 위로 걸어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겨울이긴 한가보다.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얼음결정



동네에 나 있는 도로는 한적한 편인데, 때문에 어쩌다 지나가는 차들이 무지 쌩쌩 달려서 오이군이 저렇게 다리를 다 올리고 자전거를 타면 소심한 마누라는 뱃속이 시리다. 그러나 하지말래면 더 하기 때문에 청개구리 아들 키우는 심정으로 그냥 가슴 졸이며 뒤따라 가는 수 밖에...ㅠ_ㅠ 





신나게 동네 일주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저편의 이웃집에서 닭을 풀어 놓은 것이 보인다. 울타리도 없는 마당에 닭들을 가끔 자유롭게 풀어 놓곤 하는 듯. 그럴때면 평소 자유롭던 고양이가 줄에 메이는 신세가 되지만 말이다. 저 고양이는 전형적인 개냥이로 사람을 어찌나 잘 따르는지 집 밖에 나서면 어디선가 달려와 처음보는 우리에게 몸을 부비적 거리며 애교를 부리곤 한다. 벌써 3미터 전방에서 기분좋아 골골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라는 ^^



날이 별로 안추우니 좋은 점도 있다.



겨울이라 포기하고 있었던 테라스에서 숯불구이 바베큐를 할 수 있다는 것!



전원생활의 매력이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시도 때도 없이 반찬거리 생각 안나면 바베큐를 하면 된다 ^^;

고기 두덩이를 사고, 냉장고에 있는 야채들을 다 꺼내와 불위에 얹으면 한끼 식사 준비 끝.



남아서 굴러다니던 치즈도 불위에 얹었더니 감칠맛 나는 사이드 메뉴가 되어 주었다. 같은 고기도 숯불에 얹어지면 최고급으로 재탄생. 츄릅...



그리고 마무리는 언제나 고구마.

잔열이 남아 있는 재에 던져 놓고, 한시간 쯤 있다 가보면 단물이 끈적하게 나온 따끈한 고구마가 향기를 솔솔 풍기며 대기하고 있다. 달달 따땃한 고구마로 간식까지 완벽하게 챙겨먹고나니 눈에대한 아쉬움은 멀리 멀리 사라지고 전원생활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



평화로운 시골 마을, 원주에서의 두달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남은 두달동안 오이군 소원대로 눈이 펑펑 와 줄까 조금 걱정되지만 아니면 또 그 나름대로의 매력을 찾아 갈 수 있겠지.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 그게 바로 인생의 매력 아니겠는가!


난생 처음 레알 전원생활

여행날짜 | 2016.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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