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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 대한민국 볼거리 먹거리/Gyeongsang | 경상도
한국의 체르마트, 분천역 산타마을
2015. 12. 18. 20:36

오지마을 분천역은 사계절 내내 크리스마스
조금 일찍 찾아가 본 산타마을

 

호주에서 온 산타일까? 반바지 입은 산타들 ^^

 

우리나라에도 산타마을이 있다고? 이름도 생소한 분천역이라는 곳에?

경북 봉화에 위치한 작은 산골마을 분천역. 한때는 하루에 대여섯번 지나는 기차가 아니면 다다를 수도 없었던 이 마을에는 주민 200여명만이 고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곳 역시 여느 산골 마을들 처럼 빈집이 하나 둘 늘어가며, 젊은 사람들의 모습을 점점 찾아 볼 수 없게 되어 가고 있었다고 한다.

 

창문이 천정까지 길게 이어져 있어 풍경을 감상하기 좋은 V 트레인

 

그러던 어느날 이곳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분천역이 관광테마열차 V트레인의 기착역이 되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고요한 이곳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산골짜기에 울려 퍼지고,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마을 주민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 올랐다. 그에 힘입어 역도 새단장을 하며 산타마을이라는 테마도 입게 되었다. 역 전체가 크리스마스 테마로 꾸며져서 등산객들이 좋아하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물론 한겨울에도 늘 활기에 찬 마을이 된 것이다.

 

 

 

 

지금 머무르는 곳에서 안동 기차역까지 마땅한 버스가 없어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중

 

우리가 이 곳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된 것도 다름아닌 V 트레인 때문.

관광테마열차 V 트레인 광고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띄길래 궁금해 찾아보니, 바로 현재 여행하고 있는 경북 안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출발을 한다는게 아닌가. 사진속의 열차 창문이 큼직 큼직 한 것이 예전에 스위스에서 탔던 글레이셔 익스프레스(빙하 특급열차)를 떠올리게 했다. 스위스의 중심을 가로지르며 끝없이 펼쳐지는 알프스의 대자연과 한여름에도 새하얗게 반짝이던 빙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이 열차도 우리나라의 오지 산간마을들을 지난다고 한다. 게다가 분천역은 바로 그 빙하특급열차의 출발역인 스위스의 체르마트와 자매결연을 맺어서 한국의 체르마트라 불리기까지 했다. 스위스 원산지인 오이군에게 어찌 이곳을 소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곳은 우리 커플에게는 필연적이었던 여행지였다.

 

기차역 보관대에 자전거를 세워 두었다. 자동차는 하루종일 마땅히 세워 둘 곳이 없어서 자전거를 선택. 간편하고, 도심에서는 차보다 기동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어느 단풍이 소복히 물든 가을날 아침, 우리는 안동역으로 향했다. 안동역에서 분천역까지가는 기차를 타고, 산타마을을 구경한 뒤, 백두대간의 아름다움을 천천히 음미하며 승부역까지 약 10여 킬로미터를 걷기로 했다. 승부역에서 분천역으로 돌아올 때는 경북의 명물 V트레인을 탈 예정이다.

한국에서야 체르마트에서처럼 빙하를 볼 수는 없겠지만, 단풍이 곱게 물든 태백산 자락은 또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겠지.

 

이때만해도 들판이 온통 노오랗게 물들어 있었는데, 다음 주 크리스마스에는 이곳이 새하얀 눈으로 덮여 주려나?

 

 

드디어 분천역에 도착. 아직 흰눈이 들판을 뒤덮지는 않았으나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울긋 불긋 단풍과 어우러져 꽤나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올 겨울 산타마을은 12월 19일날 개장해서 2016년 2월 14일까지 약 두달간 이어진다고 하니 겨울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은 참고하시기를. 산타마을이 운영되는 기간에는 산타할아버지들이 캐롤도 불러주고, 얼음썰매, 이글루 등 여러가지 이벤트가 진행된다고 한다.

 

분천역의 글씨체와 짐을 들고가는 역무원이 어딘지 영화속에서 보던 60-70년대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살아 본 적 없는 시대지만 무언가 향수가 피어오르는 풍경이다

 

산타마을 이벤트기간에 V 트레인은 좌석을 구하지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 없다. 역 자체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이니 일반 무궁화호를 타고도 산타마을의 매력을 충분히 즐기고 올 수 있다. 

역에 도착하자 몇몇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내리며 깊게 심호흡을 했다. 기차의 문이 열리는 순간 얼굴에 닿는 공기의 느낌이 하도 청량해서 나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여마셔보게 된다. 분천역이 관광열차덕분에 활기를 찾았다고는 하나 도심에서 살던 우리에게는 여전히 한적하고, 평화로운 느낌이다. 

 

 

 

 

나는야 스위스 오이, 한국의 체르마트에 오다!

 

분천역의 한쪽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스위스 체르마트역 자매결연 기념으로 스위스 샬레(산장) 풍으로 꾸며 놓았다. 사전정보 없이 이곳에 도착해서 체르마트 역표지를 발견한 오이군은 무지 신기해하고 기뻐했음을 말할 것도 없다. 나도 해외 어느 곳을 갔는데, 서울역 같은 이름이 떡 붙어있으면 신기하고 반갑겠지.

 

 

사실 나라, 학교, 도시 등이 자매결연을 맺으면 뭐가 달라지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국-스위스 커플인 우리에게 이 팻말이 붙어있는 분천역은 뭔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안동이 아니라 분천역으로 이사왔어야했나. ^^;

 

역 안에는 오래된 난로도 놓여있다. 쌀쌀한 날씨에 손을 녹이는 사람들도 이 난로를 보니 옛추억이 떠오르는지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지 않는다

 

아쉬운대로 가짜 사슴 썰매에서 일단 기념사진 ^^;

 

이때는 산타마을 개장 전이라 아직 캐롤을 불러주는 산타들도 없고, 트리도 놓여있지 않았다. 개장 후에는 커다란 트리들과 조명등이 추가로 설치되고, 사슴까지는 아니지만 꽃말들이 모는 마차도 타 볼 수 있다고 한다. 연인, 친구는 물론 어린이가 있는 가족들에게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심어주기 더없이 좋은 장소일 듯 하다.

 

산타마을 개장 기간이 아니더라도 여러 장식물과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어 사계절 크리스마스를 느낄 수 있다

 

지금으로 부터 약 10년 전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이렇게 오이군을 선물로 가져다 줬더랬지. ^^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예쁜 카페가 빠질 수 없다. 스위스 자매결연 도시다보니 카페 테마도 스위스의 인기 소설 하이디가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우리에게 유명한 하이디 일본 애니메이션 버전을 진짜 스위스 사람인 오이군은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 스위스에서는 하이디가 드라마로 방영이 되어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가끔 오이군과 하이디 이야기를 나눌때면 오이군이 묘사하는 하이디와 내가 묘사하는 하이디가 전혀 다르다. 그래도 한가지 공통점은 촌년병에 걸린, 즉 볼이 빨간 아이였다는 것 ^^ 우리는 어릴적에 우스개 소리로 볼빨간 친구들에게 촌년병에 걸렸다고 했었는데, 스위스에서는 농부 병에 걸렸다고 한다. ^^; 국경을 불문하고 햇볕과 찬바람을 많이 쐬고 돌아다니면 볼이 빨개지기는 하나보다.

 

 

 

 

 

이날은 트래킹이 목적이라서 마을 안쪽까지 세세히 둘러보지 않았는데, 담장을 색색깔로 칠해 놓아 전체적으로 활기찬 느낌을 준다. 겨울에 하얀 눈과 어우러지면 더욱 예쁠 것 같다.

 

 

역사 건물의 한쪽은 분천 사진관이라는 이름으로 주변 풍경과 옛모습등을 담은 갤러리로 꾸며 놓았다. 아이디어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따왔다고. ^^

 

 

코레일에서 자전거 대여도 하는 모양이다. 겨울에는 힘들겠지만 꽃피는 봄부터 녹음이 우거진 여름, 단풍이 알록달록한 가을까지는 자전거를 빌려 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이 외에도 분천역에서는 역무원 옷을 입어볼 수도 있고, 마을 사람들이 직접 재배해 기른 재료들로 만든 식사도 할 수 있다.

가을에 단풍이 알록달록한 모습도 너무 아름다왔지만, 겨울에 눈이 왔을 때의 풍경이 무지 기대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겨울, 기차를 타고 흰 눈위의 따뜻한 추억여행을 꿈꾸는 분들께 추천하는 곳이다.

 

돌아오는 길 V트레인 내부. 좌석이 한쪽은 창을 마주보고, 놓여 있고, 반대쪽은 일반 기차처럼 두좌석씩 놓여있다
기찻길은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나 있으므로 산과 어우려져 여행하는 내내 수려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See you again in winter!

 

 

분천역 산타마을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

여행날짜 | 2015.10.22

 

 

       

가을날의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