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이 있는, 그래서 더욱 찬란한 세계여행 이야기

그리고 다시 또 하나, 둘, 셋


오랜만에 내 눈을 사로잡은 여행 책이 있었다.

넘쳐나는 세계 여행 이야기들의 홍수속에 이 이야기가 유독 눈에 띄었던 이유는 바로 잠시멈춤 이라는 단어 때문. 그렇다. 이 책은 영원히, 멈추지 않는, 계속되는 여행 이야기가 아니라 눈코뜰 새 없이 바쁘지만, 안정적이라는 강력한 일상의 족쇄를 과감하게 풀고, 잠시 쉼표를 찍은 이들의 이야기이다. 

세계여행을 갔다 왔다는 이들의 이야기는 많지만 우리는 늘 그 뒤가 궁금하다.

그래. 나도 그렇게 전세금 빼들고, 나름 안정적인 생활을 주던 직장을 때려치고, 갈 수는 있는데, 그런데, 그 다음은? 돌아와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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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선뜻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여행에서 뜻하지 않게 만날 위험에 대한 두려움 보다, 돌아와서 다시 안정적(?)인 삶을 이어갈 확신이 없기 때문이리라. 나도 그랬었으니까. 직장에 용감하게 사표를 던지만 마냥 시원할 줄만 알았는데, 통쾌함 보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크게 다가 오더라. 

나, 이거 제대로 사고 치는 거 아냐?

그 당시에 내가 생각 할 수 있는 가치있는 미래라는 것은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서, 차도 사고,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돈 모아서 어쩌구 저쩌구...하는 것 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건 오직 좋은(?) 직장 잡아서 쉬지 않고, 계속 치열하게 일을 해야지만 가능한 미래인 것 처럼 느껴졌다. 아니, 어디선가 그렇게 보고, 듣고, 배웠던 것 같다.


이 책의 서두에 여행 준비를 하는 이야기에 그런 이야기들이 나온다. 어느 순간 나의 꿈이 빨리 해 치워야 하는 업무로 전락하는 것 같이 느껴져서 서글펐다고. 더 없이 공감되는 말이다. 나의 꿈 조차도 결과를 내고, 손익을 따져봐야하는 일로 전락시켜 버리는 삶이 과연 내가 배운 그 가치있는 삶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하고 싶으니까, 오로지 재미있으니까 해보는 건 절대 안돼는 걸까? 여기서는 여행이 그 꿈이지만 그 어떤 것이라도 좋다. 인생에 하나 쯤은 어떤 결과물을 가져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좋아서 하는 것이 있다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물론 그 뒤가 걱정되는 건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사실 끝이 아닐까 싶었던 그 뒤에도 삶은 어떻게든 계속해서 이어진다. 한비야의 책에 나왔던 구절 중에 이런 게 있다. 밤중에 운전을 하고 가는데, 헤드라이트는 기껏해야 50미터 앞 정도밖에 비춰주질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그 긴긴 밤길을 끝까지 갈 수 있지 않는가. 삶도 마찬가지다. 하던 일을 때려치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 지금 이 지점에서 보이는 헤드라이트 불빛의 끝이지만, 사실 그 지점에 도달해 보면 조금 더 먼 길에 대한 힌트가 생겨 있다. 그들이 내려 놓은 안정적인 삶은 영원한 끝이 아니라 잠시멈춤이었다.



이책의 묘미는 그들의 여행 중 에피소드도 있고, 몰랐던 깨알 여행 정보을 얻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여행을 통해 생각이 바뀌어 가고 있는 과정을 보는 것이었다. 삶을 바라보는 각도가 더 다양해 지고, 그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상황을 대처하게 되고, 바싹 코앞에 대고 봐서는 보이지 않았을 삶의 모습들을 여행의 끝에서는 멀리서 조망하며 넓게 바라 볼 줄 알게 되는, 그런 시선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행여나 나의 무언가를 갈취할까 싶은 마음에 달려드는 삐끼들을 잔뜩 움츠린 고슴도치처럼 톡 쏴서 찔러버리지만, 나중엔 여행을 거듭하며 서로 기분 상하지 않게 그들을 가볍게 물리치는 마음의 여유를 얻는다. 어떤 곳에 가서도 이것 저것 다 보고, 다 해야 한다고 마음이 바쁘지만, 남겨둠으로써 또 다른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삶의 지혜도 배운다. 한국에서는 대기업에 다니며 딱딱 계획에 맞춘 삶을 살았을 그들이 어느 순간 지도를 집어 던지며 여기서는 길을 잃어도 좋다며 틀에 박힌 생각을 내려 놓는 모습도 보게 된다. 미리 미리 준비하고 살아왔을 그들이 아프리카에서는 하쿠나마타타를 외치며 무작정 도착비자를 내 놓으라고 땡깡도 쓰는 배짱도 갖게 된다. (그리고 정말 비자가 나왔다. 틀에 박힌 생각으로 시도도 안하는 것 보다 가끔은 재치있는 말로 용기를 내어 시도해 보면 생각치도 않게 고정관념을 깨고 원하는 것을 얻을 때가 있다. 심지어는 비자도?!) 


그리고 중간에 스페인에 어학연수 겸 몇개월 멈췄을 때, 여행을 떠나기 전 미리 준비해 둔 상자를 한국으로 부터 배달 받다. 그리고 그들은 그 상자를 준비할 당시 미래에 필요하리라고 예상했던 물품과 실제로 그 미래에 필요한 것들이 확연히 다른 점에 스스로 놀란다. 불필요한 것들이 그득히 끼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잘 준비하고 있다 믿고 있는 그 미래에 실제로 필요한 것들이 얼마나 될까? 절반 이상의 불필요 한 것들까지 꽉꽉 채워 넣느라 지금 당장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지는 않는지? 그 때문에 나는 지금의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지쳐버려서 그 준비한 미래가 막상 다가 왔을 때 즐기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궁금했던 여행의 끝. 그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들은 다시 일을 하고 있다. 저자의 남편은 네덜란드에 있는 회사에 취업을 했고, 저자는 이렇게 책을 낸 여행작가가 되었다. 여행을 시작했을 땐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결말이었다. 둘다 한국에 있는 회사에 재취업을 해서 열심히 바쁜 일상으로 돌아갈 줄만 알았지, 네덜란드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헤드라이트 불빛 끝에 기다리고 있던 길은 상상하던 것과는 달랐지만 어쨌든 계속해서 길은 이어지고, 그들은 계속해서 삶을 살고 있다.

뭐 바로 바로 직장이 잡히지 않아 답답한 순간도 있을 것이고, 예전만큼 좋은 직장을 못찾는거 아닐까 두렵기도 하며, 나만 혼자 뒤쳐진 것 같아서 속상하기도 하겠지만, 훗날 뒤돌아 봤을 때 꿈을 따랐던 그 순간을 후회하진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두려웠던 것과 달리 삶은 그냥 또 그런대로 무난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들을 자연스러운 문체로 편안하게 풀어 놓고 있다. 에세이 집이라고, 있어보이는 단어들로 가득채운, 감정만 듬뿍 담은 책이 아니라, 친구에게 이야기 하듯 편안하게 들려주고 있어서, 금새 빠져들에 휘리릭 읽게 되었다. 그리고 여행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여행정보도 가득 담아 놓았다. 몰디브를 럭셔리 신혼여행이 아닌 배낭여행으로 가는 법이라든지, 아프리카 사파리를 투어를 따라가지 않고, 렌트카로 셀프투어하는 방법, 개인여행이 금지된 부탄 여행하는 방법 등 몰랐던 여행정보들을 자세하게 적어 놓아 여행 정보서로도, 에세이로도 손색이 없다. 


더운 주말 오후, 에어콘 앞에 앉아 수박을 쪼개 먹으며 잠시 멈추고, 이 책과 함께 세계여행을 떠나 보는 것은 어떨까?



[실질적인 여행 정보로 가득한 저자의 블로그] 
빛나는 세계여행 bitna.net


[Yes 24 도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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