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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Log | 평범해서 소중한 일상
17살 꽃다운 까비의 우주 여행
2015. 5. 20. 00:29

다시만날 그날까지, 잠시만 안녕!
Dedicated to our beloved Kaby

 

 

2015년 5월 12일, 우리 가족 까비양이 꽃다운 나이 17살에 우주여행을 떠났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우연히 우리 가족이 되어주었던 까비. 17년 동안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가족으로서 톡톡히 한몫을 해 내었던 듬직한 녀석입니다. 

언젠가 떠날 줄을 알았지만, 이렇게 갑자기 가 버리니, 그녀의 빈 자리는 상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크네요. 곳곳에 있어야할 그녀의 모습이 보이질 않으니 무지 허전합니다.

 

 

오이군이 벗어 놓은 옷 더미 위에 어김없이 또아리를 틀고 자고 있던 검은 털뭉치가 보이질 않아요. 예전엔 까비 침대려니 하고, 옷을 정리하지 않아도 그냥 뒀는데, 이제는 치우라 잔소리 하게 되네요.

 

 

식사 준비를 할 때면 언제나 제 등을 따라오던 기대와 신뢰가 가득찬 검은 눈동자가 이제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냥 오이군과 우두커니 앉아 조용히 밥을 먹습니다.

 

 

거실에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려고 빈백을 찾으면, 언제나 어김없이 미리 자리를 차지하고 자고있던 녀석도 없어졌습니다. 두개의 빈백 중 까비가 앉아 있지 않은 다른 한개를 서로 차지하려 오이군과 전쟁을 벌이지 않아도 되네요. 그냥 말없이 각자 한개씩 차지하고 앉아 조용히 화면을 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파트 화단 모든 곳에 킁킁 거리며 안전점검을 해 주던 그녀가 이젠 없습니다. 몇동 화단에 무슨 꽃이 피는지, 이제는 볼 일이 별로 없겠네요.

 

 

매년 오이군이 스위스에 가 있을 때면, 다정하게 같이 집을 지켜주던 그녀가 이젠 없습니다. 이제는 오이군이 없으면 저는 정말 혼자남네요. 그래서 친정으로 도망와 있습니다. 혼자 집 구석 구석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요.

 

 

창문을 열면 총총 다가와 앉아 구경하던 토실 토실한 궁딩이도 이제는 볼 수가 없네요. 그래서 집안이 답답해도 더이상 창문을 열지 않아요.

 

 

새해면 부모님과 함께 세배를 받고, 뻔뻔하게 세뱃돈 아니 새배개껌은 따로 챙기던 할마씨가 이제는 더이상 개껌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있는 그곳에는 개껌이 지천으로 깔렸을 테니까요.

 

 

겨울이면 오이군의 배나 다리를 따뜻하게 품어 줄 새로운 쿠션 하나 장만해야 겠군요. 안그래도 매서운 겨울이 더 춥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까비야.

일년 넘게 그렇게 빼려하던 살이 일주일만에 4kg 빠졌어. 가면서도 엄마 소원 다 들어주는 구나. 다이어트, 니 덕분에 성공할지도 모르겠어.

 

그 먹성 좋은 네가 입맛이 없다며 음식을 거부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서, 유기농 황태를 조금 샀었어. 소금기 다 빼서 국물 우려 줄려고, 두번이나 삶았는데, 결국 너는 한입도 못대고, 그 모습 보느라 속이 다 뒤집힌 내가 북어국 끓여 먹었다. 너 따라서 계속 배아프고, 배탈났는데, 덕분에 나는 조금 나아졌네. 나 혼자 나아져서 미안하다.

 

가족들 삶이 안정되어 가니까 니가 한숨 놓듯 휙 떠나버렸네. 너도 가족들이 잘 사는거 보고 가려고 계속 남아 있었던거지? 넌 원래 우주동물이니까 고향으로 돌아가는거라 슬퍼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 너를 꼭 안을 수 없다는 사실에 나는 자꾸 눈물이 나. 이제 너도 여행갔으니, 우리도 슬슬 준비해야겠다. 네가 우리를 자유롭게 놓아 주려고 이렇게 급히 간거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그러니 너의 배려를 헛되히 하면 안되겠지? 우리도 이제 세계를 구경할 준비를 해야겠다. 언젠가 세계여행마치고, 달 구경도 마치고, 우리도 너처럼 우주여행떠나면 신나게 꼬리 흔들며 반겨 줄거지? 그때까지 무지 보고 싶을 것 같지만, 꾹 참고 기다릴께. 

사랑한다 까비야.

 

생각도 못했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슬퍼할 줄은.

이해하지 못했었다. 키우던 개가 죽었다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그녀석을 품에 안고 웃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석이 내게 얼마만큼이나 소중한지를.

 

 

 

       

이별은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

2015.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