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 노란 꽃그늘 아래

샛노란 개나리 산 동심의 세계로


 개나리로 뒤덮힌 샛노란 응봉산


지난 주말엔 여기 저기서 다양한 꽃축제가 있었던 날이다. 

남쪽엔 유명한 진해 군항제도 있지만 멀어서 포기하고, 경기도 이천과 양평에 있었던 산수유 축제를 갈까 하다 날이 흐려서 접어 뒀다. 이렇게 또 꽃을 보기위해 1년을 기다려야 하는건가...아쉬운 마음에 꿀꿀하게 하늘을 쳐다보는데, 그때 번뜩 떠오른것이 바로 응봉산의 개나리. 응봉산 아래만 특별히 해가 반짝 나오지는 않겠지만, 가까우니 부담없이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우울하게 뒤덮힌 하늘 대신 개나리가 노오란 햇살을 사진속에 담아 주겠지. 



날이 흐린데도 중앙선 응봉역에 내리니 축제장을 향하는 인파로 가득했다. 조금 찌푸려졌던 마음도 사람들의 북적거림에 덩달아 살짝 설레이고.

산으로 가는 입구까지 역에서 십분쯤 걸어야 하는데, 이미 길목에 개나리와 벚꽃이 가득해서 축제 분위기가 난다.



산에는 아직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공원에도 길목에도 온통 개나리 천지다. 길목 길목 마다 멈춰서서 사진 찍느라 바쁜 사람들. 



나는 어릴 적에(초, 중, 고, 대딩때까지) 개나리와 진달래, 철쭉이 참 촌스럽다고 생각했었다. 특히 개나리는 내가 다닌 초등학교 교화여서 학교 담장을 비잉 둘러 심겨 있었는데, 왜 이런 촌스러운 샛노란 꽃과, 분홍꽃을 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샌가부터 이 노란빛과 분홍빛을 보면, 어릴 적이 향수에 젖으며 반가운 느낌이 들기 시작하더라.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개나리를 보러 옛생각을 하며 진달래빛 분홍 옷을 입었다. 내 머릿속에 언제부턴가 개나리와 진달래는 셋트 메뉴가 되었달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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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은 사실 산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작은 언덕에 가까운데, 중간에 암벽등반놀이를 할 수 있는 곳도 있고, 운동 기구도 설치되어 있어,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휴식을 책임지는 공원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평소 같으면 삭막한 아파트 숲이었을 텐데, 노오란 개나리와 함께하니 한결 정다운 느낌이 든다


중간 중간에 멈춰 사진을 찍느라 해발 81m밖에 안되는 낮은 산에를 무려 40분을 걸려 올라갔다. ^^; 어찌나 많이 찍었는지 집에 와서 추릴려니 하루 온종일. -_-;



행사가 있는 팔각정에 도착했는데, 날이 흐려서 참여율이 저조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어 깜짝. 봄은 사람들의 게으름을 걷어가는 마력을 갖고 있는 걸까? 예전엔 봄이 오면 더 나른하고, 만사가 귀찮았던거 같은데...


행사 프로그램중에 어린이 백일장과 사생대회가 끼어 있어서 군데 군데 엎드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과 그들을 코치하는 부모님들로 북적였다. 아이가 쓰는건지 엄마가 쓰는 건지 모르게 마구 불러주는 분도 계셨고, 그림을 못그리거나 맞춤범을 틀린다고 구박 받는 아이들도 있었다. 흠...이런날은 그냥 좀 풀어주지, 거 이 즐거운 날 아이들 인상을 구겨 놓을 것은 또 뭐람. 살짝 안타까운 풍경이 끼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화기애애하고, 가족적인 분위기.



전부 아이들을 한둘씩 데리고 왔길래 우리 애 없어 여기 와도 되는 것 맞냐며 잠시 앉아 구경만 하다가, 그래도 인증샷은 남겨야 하겠기에 팔이 긴 오이군에게 카메라를 맞겼다. 롱다리, 롱팔이라 셀카봉 없어도 쓸만한 거리가 나온다는. 단 사진이 모두 오이군 위주로 찍힌다는게 단점. 

여보야, 나도 좀 이쁘게 찍어도~ -_-;





사실 개나리가 없었더라면 응봉동은 딱히 예쁜 동네라고 할 수는 없다. 뭔가 삭막하고, 공장도 있고, 대부분의 산에는 꼭데기까지 집들이 들어차 있었으며, 공사까지 겹쳐 전반적으로 황량한 느낌이었는데, 이 샛노란 개나리가 가득 피어줌으로써 반전 매력을 선사한다. 그 황량함을 모두 커버하는 것을 넘어서 활기를 가득 불어 넣어 주는 것이다. 이거구나. 샛노란 개나리의 매력이.





축제장에 음악 공연과 먹거리가 빠질 수 있나. 막걸리와 파전 그리고 떡볶이를 지역 단체에서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는데, 파전은 금새 동이 난 듯. 당연히 지역 축제장에 오면 막걸리가 땡겼지만 파전도 없고, 무엇보다 오이군과 내가 사이좋게 감기에 걸린지 어언 한달이 다 되어 가므로 술로 몸을 더 혹사 시키고 싶지 않아 이번만 특별히 건너 뛰기로 했다. ^^;



그래서 떡볶이를 한접시 시켜 먹었다. 개나리와 떡볶이. 정말 학창시절 분위기 제대로 나네.

오이군은 이 기분 이해할 수 있으려나?

어릴적에 봄이면 으레 학교 주변에 개나리가 폈고, 병아리를 팔았으며, 겨울을 밀어낸 햇살아래 아이들은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학교앞 떡볶이를 먹곤 했다.



뭐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마누라 사진찍느라 바쁜 사이에 오이군은 옆에서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이 풍경 마저도 구형 겜보이를 두들기던 같은반 남자아이들을 떠올리게 해서 옛생각이 나더라 ^^;



 지금 게임 할때가 아니고~ 자연을 보라고 좀 자연을~


이렇게 말하고 보니, 어릴적 가족여행 중에 난 늘 책을 읽거나 잠을 자는 등 창밖에는 관심 제로 였는데, 그런 내게 엄마가 하셨던 말씀이라는 걸 깨달았다. ㅎㅎ



언젠가 오래전에 오이군이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널 좋아하는 이유가 뭔줄 알아? 그건 네가 가끔 정말 제정신이 아니어 보이기 때문이야.

음...욕인지 칭찬인지 지금도 애매한데, 저 사진을 보면서 어쨌든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만은 이해 했다. 꽃밭에 미친X같네...



 당신과 함께라면 어디든지 꽃길


이 컨셉의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래서 열심히 커플들의 손을 주시했건만 대체 오늘따라 손잡고 가는 커플이 하나도 없네. 싸람들이 삭막해가지고 말야. -_-; 결국은 남의 손을 도촬하는 걸 포기하고, 우리가 직접 잡고 찍기로 했는데, 이게 정말 고난이도의 유연성을 요구하는 포즈였다. 손을 자연스럽게 잡고, 뒷쪽에서 찍으려니 각도가 진짜 안나오는거다. 개나리가 좀 더 가득 찬 배경에서 찍고 싶었는데, 그럼 맞잡은 팔을 위로 치켜 들어야 하고, 반대 손으로 무거운 카메라를 뒤로 돌려 한손으로 찍으려니 후들 후들 떨려서 촛점도 안맞는다. 그닥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내 허리에서 삐걱 소리가 나서 여기까지만.





노오란 세상. 

어릴적에 검정과 노랑이 명시성이 좋아서 교통 표지랑 전봇대 같은 곳에 많이 쓰인다고 들은 것 같은데...어쨌든 내가 배경인지 꽃이 배경인지 모르겠다.



또 내가 이렇게 컬러추출 모드에 심취하고 있을 때, 오이군은 게임기로 지루함을 달래고 있길래, 조금 미안해져서 그만하고 배를 채워 기분을 달래주기로 했다. 꽃 좋아하는 남자도 많던데, 오이군은 어찌나 관심이 없던지. -_-;




 뜨끈한 도가니탕과 된장찌개 그리고 된장찌개와 교감중인 오이군



산을 느긋 느긋 돌아보았건만, 워낙 작은 산이라 내려왔는데도 아직 일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중랑천을 따라 걷다 서울숲에도 들러보기로 했다. 가는 길목에 고양이 두마리를 만났는데, 두마리가 사이 좋은게 귀여워서 사진좀 찍을랬더니 어찌나 소리지르며 싫어하던지. 결국 그 사나운 녀석은 못찍고, 뒤에서 얌전히 쳐다 보던 녀석만 찍었다.

가옹~ 가라고옹~ 찍지 말라고오오오옹~~~ 

알았다고. 싫다면 안찍는다고.



응봉동은 산 뿐만 아니라 골목 골목 온통 개나리다



중랑천에 도착했더니 철새가 무지 많이 있었다. 각종 오리들이 물위에 가득했고, 왜가리도 우아하게 놀고 있더라. 딱히 물이 깨끗해 보이진 않는데, 철새들은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러다 놀라운 풍경을 발견했다. 

응봉산을 되돌아 보니 이런 멋드러진 풍경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온통 노란 빛으로 가득한 산 전체가 한눈에 들어 왔다.




응봉산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산 위에서가 아니라 중랑천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산속에 파묻혀 있을때도 좋지만, 이산의 신비로움은 한발자국 떨어져 바라볼 때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어쩜 이 산엔 이렇게 개나리가 많을까. 뭔가 흔해서 딱히 사랑받는 꽃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산을 뒤덮고 있으니 그역시 장관이구나. 개나리의 밝은 아름다움을 오늘에서야 제대로 느끼게 됐네. 



기분좋게 노오란 환희를 가슴속에 가득 품고 룰루랄라 집에 오던 중 번뜩 떠오른 것이 있었다. 

개기월식!

우리가 개나리 축제에 갔던 지난 4월 4일은 올해 두번 있다는 개기월식 날이었다. 그런데, 9월에 있을 것은 대낮에 일어나므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고,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것이 9시에 절정을 이루어 대박 잘 보일 예정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날이 흐려 달이고 별이고, 콧베기도 비추질 않았던 것이다. 쿨쩍.

지하철에서 이쪽 저쪽 창문으로 기웃 기웃거리는 나를 보더니 차라리 내려서 속 시원히 찾자며 내 팔을 잡아 끄는 오이군. 그러나 아쉽게도 하늘은 온통 구름으로 가득했다. 내가 하도 아쉬워하자 오이군이 달 위치를 구글 스카이맵으로 찾아 그 부근을 사진으로 찍어 주며 마음으로 보랜다. 풉. 고맙다, 남편...

내마음엔 달대신 오이가 둥실 떠올랐다.



 개기월식 못봐서 아쉬워하며 다시 지하철로...



월식은 못봤지만, 산 전체에 가득 핀 개나리 덕분에 우리는 노오란 봄을 품고 행복하게 4월을 시작했다.

개나리는 오래 남아있는 꽃이니 축제때가 아니더라도 이 개나리 산을 한번 찾아보시길 바란다. 흐린날도 하루종일 해를 본 듯 기분이 밝아질테니.


여행날짜 | 2015.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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