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설레이지 않는 나이

아직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릴적 11월 초부터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며 들떠있는 내게 엄마가 "그 때나 크리스마스가 그리 설레이지. 나이를 먹으면 그런건 아무래도 좋게 돼."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난 절대 그렇지 않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는데, 이제 카드만들기가 귀찮음은 물론이고, 그런 날 나가 돌아다닌 것이 무의미하게 되어 버렸다. 그땐 그렇게 되는것이 너무 슬픈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되어보니 조용하고, 차분한 방법으로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고, 사실 그것을 선호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며칠전 부터 키키가 크리스마스분위기가 안난다고 투덜댄다. 나름 창문에 장식도 달아 놓고, 반짝거리는 루돌프도 한마리 입양했건만 하루종일 집에서 일을 하다, 저녁때 잠깐 한국어 학교에 왔다갔다 하는 오이군으로서는 연말 분위기가 안날만도 하다. 원래 그런느낌은 길에 울려퍼지는 캐롤과 동네방네 반짝이는 트리 장식 불빛과 함께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성탄절을 가족과 함께 잘 차린 정찬을 하고, 선물도 주고 받는 외국과는 달리, 일명 커플의 날로 되어 버린 한국 분위기가 적응이 안됐으리라. 그래서 오이군에게 한국에서의 즐거운 크리스마스 추억을 만들어 주고자 몇가지 계획을 짰다. 첫번째로 크리스마스 장식이 휘황찬란한 교회에 가서 캐롤 듣기. 마침 23일 밤,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성탄음악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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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남편이 좋은 이유

어부지리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였던 순복음교회가 궁금하다던 키키는 '생각보다 작은데?' 라는 눈치다. 사실 건물 자체의 크기가 아니라 등록된 교인의 규모라는 것을 듣고, 신기해 한다. 어찌 예수님이 태어난 곳에서 거의 지구  반바퀴를 돌아야 올 수 있는 이 아시아 땅에 크리스천이 그리 많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 이질적인 외모의 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이유가 뭘까?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특히 외국인에 대해 매우 보수적이었던 한국 사람들이 말이다.




우리는 늘 그렇듯 30분도 안걸리는 거리에 살면서도 20분을 지각해 교회에 도착했다. 순복음 교회는 어릴때나 지금이나 인산인해를 이루어 늦으면 자리가 없다. 계단에 앉아 봐야하나 하고 있는데, 어, 외국인과 함께 시네요. 외국인 자리는 저쪽에 따로 있습니다. 따라 오세요라고 한다. 외국어 번역기가 부착되어있는 자리가 외국인들에게 배려되어있는 것이다. 아싸! 덩달아 외국인석에 어정띠게 해드폰을 받아들고, 추운 겨울 돌바닥 신세를 면하게 되었다. 그런데, 번역기에는 불어를 포함해 여러 언어가 쓰여있었지만, 되는건 영어밖에 없다. 특히 음질이 목감기 걸린 아저씨가 담배 3갑 피고, 노래하는 수준이어서 한국어를 거의 모르는 오이군도 헤드폰없이 듣는게 더 이해가 쉬울 정도 였다. 


뭐 음악회니 그다지 들을 내용은 없었는데...진짜 중대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성탄음악회라 당연 캐롤이나 가스펠일것을 생각하고 왔는데, 이런. 정말 '음악회' 였던 것이다. 왜 그 진지한 창법으로 웅장하게 뱃심을 울려 부르는 그 음악회 말이다. 일명 가곡. 아...그들은 뱃속을 울렸으나 우리는 몰래 코를 울렸다. 2시간 공연에 대략 30분 늦었으니 1시간 반이었는데, 어찌나 길고, 졸리던지...한국에서의 즐거운 성탄 추억이고 뭐고, 사진기만 만지작 거리다 펑펑 졸다 와서 기억 자체가 없게 되어버렸다. 외국인 남편이 없었더라면 차가운 돌계단에서 1시간 반을 어떻게 잤을꼬.




졸아도 사랑받는 우리

당신은 사랑 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참, 송구스럽게도 계속 딴짓하고, 졸다 나온 우리도 작은 선물을 받았다. 졸때 춥지 말라는 것일까? 선물은 무릎담요. 이 철딱서니 없는 자식들의 차원을 넘어선 어버이의 마음이라니...


교회 앞에 나오니 온 세상이 새하얗게 덮여있었던 것이다! 내 평생 처음 한국에서 맞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분위기다. 꾸벅 꾸벅 졸던 알프스 소년 오이군도 눈을 보더니 막 흥분한다. 크하~한국도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구나! 스위스 친구들은 안믿을텐데...그렇다. 특별히 관심이 있지 않으면 스위스 사람들은 한국이 난대성 기후, 심지어는 태국같은 열대 기훈줄 아는 사람도 많다. 한류가 빨리 스위스도 덮쳐 버려야 이런걸 구구 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어지는데...



어쨌든 잔뜩 신이난 우리는 교회앞에서 전구들고 노래도 하고, 사람들이 안 밟은 눈위를 콩콩 뛰어다니며 즐거워 했다. 그렇게 뛰다 보니 어느새 한강 고수부지를 달려 마포대교까지 걸어버렸네. 달도 안뜬 밤에 체조 엄청 해버렸다. 


그런데, 7년 정도 안가본새 한강 고수부지 엄청 변했더라. 뭐 서울에서 어딘들 안변했으리랴마는 ^^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다는 말, 잊고 살았다. 영원불변이란 단어가 더 어울릴것 같은 스위스에 묻혀있다보니..






이렇게 놓고 보니 키키가 마치 노래를 자주 부를것만 같은데, 실상은 노래방을 가도 초지일관 침묵이다. 위 사진들은 당근 포즈만 취한것. 술 엔간히 마셔도 노래 절대 안한다. 마리오 아빠인 미야모토가 싸인해 준다면 부를까나?


어쨌거나 이렇게 한밤의 눈위를 달리며 상쾌한 성탄 연휴를 시작했다.




※ 여행일자 : 201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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