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여름의 기억



나는 여름이 좋다.

정작 여름이 되면 후덥지근한 날씨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다며 투덜거리지만, 그래도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은근히 벌써 부터 내년 여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나를 발견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태어난 달이 있는 계절을 좋아한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정말 나는 내가 태어난 여름, 특히 8월이 가장 좋다. 무한대 기호(∞)와 비슷한 숫자 8을 바라고보 있으면, 마치 이세상에 내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무한하게 열려 있으니 그저 오기만 하라는 듯 활기차게 손짓하는 것 같다.


그런 나의 여름이 어느새 지나가 버린 것이다. 정신없이 이리뛰고 저리뛰는 사이에 여름은 둘째치고, 가을도 이미 저만큼 물러간듯 자판을 치는 손끝이 시려온다. 오늘은 손을 가끔 호호 불어가며, 발에는 수면 양말을 신고, 오랜만에 조용히 앉아 사진을 정리하다가 7, 8월에 찍힌 사진들을 보았다. 올해는 연초부터 쉴틈없이 돌아더닌 덕분에 화려한 여행 사진뒤로 조용히 묻혀버린 내 일상의 단편들. 여행을 떠난 순간만큼, 사실은 그 이상으로 소중한 나의 일부인데, 늘 우선순위에 밀려 결국은 계절이 지난 사진이 되어 조용히 한구석으로 밀려난다.


구석에 밀린 사진들에게도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써보는 

밀린 여름방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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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

자하연 웰컴백


오늘은 아일랜드에서 일하는 친구가 오랜만에 들어오는 날, 간만에 자하연 멤버들을 보게 되었다. 

자하연이라 함은 예전 아직 인터넷 접속이 느리고 불편하던 시절, 한국통신의 하이텔 서비스에 있던 자우림 팬클럽 이름이다. ^^ 말이 팬클럽이지 콘서트때 말고는 자우림과는 별 관계 없이 홍대앞, 대학로 앞을 기점으로한 친목회에 가까왔는데, 97-8년, 수능끝난 후부터 대학 2학년까지 나의 술판과 문화, 공연등을 책임져 주었던 멤버들이다. 지금은 다들 이나라, 저나라, 한국에서 조차 지방 여기저기로 흩어져 살아서 자주 못보는데, 그래도 이렇게 잊을만 하면 누가 한번씩 들어와서 모임이 생긴다. 

제작년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와서 이 멤버들을 만나고 깜짝 놀랬는데, 여전히 말술을 퍼붓는건 나 하나인가보다. 웬 맥주. 그것도 달랑 한잔씩. 말술과 그런지함으로 기억되는 친구들이 시크해져서 조금 낯설었지만, 그래. 이제 건강 챙겨야지. ^^;


   


오늘은 특별히 오이군을 대동하고 나갔는데, 뜻하지 않게 오이군은 새로운 음식문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바로 번데기가 그 주인공. 매번 길에서 보고, 궁금하지만 돈주고 사먹기 아깝다며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는데, 오늘 드디어 무료 안주로 나왔던 것이다. 나도 어릴적엔 멋 모르고 먹었는데, 뭔지 알고 나니 선뜻 손이가지 않는 번데기. 갑자기 곤충 음식 문화를 접한 외국인에게는 당연히 잔잔한 충격일 수 밖에 없다. 한마리를 그야말로 벌레먹듯 먹고는 이제 됐다며, 다시 먹을 일은 없겠다고 한다. 그렇게 이상한가? 나도 뭐 좋아하진 않지만 대략 구수한 맛이었던것 같은데...





7월 31일

스위스 건국 기념일 전야제


8월 1일은 스위스 건국 기념일이다. 스위스에 있었더라면 밤에는 마을마다 불꽃 놀이가 열리고, 낮에는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열리는 축제를 구경하겠지만,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 8월 1일은 그저 평범한 하루일 뿐이다. 그런데, 올해는 스위스 대사관에서 초대장이 하나 날아왔다. 오이군이 대사관에 인적등록을 했더니 건국기념일 파티 초대장이 날아왔던것. '스위스인 관계자'에 속하는 나도 덩달아 초대를 받았다.


   


파티가 열리는 곳은 종로구에 있었던 대사관저. 서울시내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만큼 평화로운 단독주택에 수영장까지 있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우리는 잠시 수영장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오래전 애써 꾹꾹 눌러 재운 권력욕과 명예욕이 잠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저나 곧 고개를 설레 설레 휘젔는다. 우리는 지금이 좋다. 자유로운 일정과 스트레스 적은 삶. 수입이 많아도 쓸 시간이 전혀 없었던 짖눌린 삶보다는 조금 없어도 삶을 즐길 시간이 많은 지금이 좋다. 자연은 있는 사람에게도 없는 사람에게도 모두 아름다우니, 자연으로의 여행이 인생의 전부인 우리 부부에게는 지금 그다지 부족할 것이 없다. 수영장 딸린 집에 저녁 늦게 지쳐 들어와 집 마당에서 고물 고물 수영하기 보다는 드넓은 바다로, 호수로 나가 수영할 시간이 있는 지금이 좋다며 오이군과 마주보고 끄덕거렸다. 새삼 이렇게 취향이 맞는 남편을 만나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러나 불시에 저녁때 수영이 하고 싶다면?

구민 체육관 가면되지 뭐...


스위스에 살때도 한번 들어보지 못한 알프스의 요들송이 꾀꼬리 같은 목소리의 한국 가수분 목에서 청아하게 흘려나왔다. 

세상에. 이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도 있구나. 노래하는 분 주변에 작고, 귀여운 새 두마리가 뱅글 뱅글 도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파티가 무르익고, 배가 부를 무렵, 저쪽에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스위스 살 때 알고 지내던 스위스 국적의 터키소녀가 파티에 도착했던것. 한국을 좋아해서 한국에 와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이렇게 만나니 신기하기 그지없다. 세상이 참 좁구나.



   


스위스 각 칸톤의 깃발이 주르륵 내걸렸다. 여기 우리가 6년가까이 살았던 뉘샤텔의 깃발도 있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다. 


파티가 끝날 무렵, 어떤 나이많은 할아버지가 오더니 반갑게 인사하며 내 손을 꼭 붙들고 너는 누구냐고 묻는다. 어영 부영 내소개를 마치고, 손을 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그러는 너는 누구냐고 물었다. 여전히 내손을 꽈악 붙든채, 싱글 싱글 웃는 할아버지가 자기는 스위스 대사라고 한다. 아...남의 집에 와서 집주인보고 너 누구냐고 물었구나. -_-;





8월 3일

곰파와의 홍대 나들이



만나기만 하면 목이 쉬는 유쾌한 곰파와의 불타는 토요일. 

오늘 우리가 웃음소리로 떠내려가게 할 장소는 홍대앞이다.

곰들과의 조우를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교촌치킨집 앞 빨간 의자에 앉아 불바뀌기를 기다리는 오이군.



   

   


오늘도 어김없이 집에오는 길에 목이 쉬었다. 

귀도 멍멍하다.

스트레스도 확 풀렸다.

눈도 다 풀렸다.

우리 곰들 덕분에 한국 생활이 한결 더 컬러풀 해졌다.





8월 14일

감자 귀빠지기 하루 전날


광복절날 귀빠진 감자양.

부모님께 감사하다. 기억하기 쉬워 연락이 뜸한 친구도 어김없이 축하문자를 보내온다. 어릴적에는 조금 안좋은 점도 있었다. 여름방학 한가운데 끼어있어서, 친구들이 시골 친척집이다, 휴가다 뿔뿔히 흩어져버려 생일파티를 열기가 수월하지 않았던 것. 그러나 학창시절이 지나고 나니 좋더라. 광복절이 공휴일인지라 14일날 친구들과 맘편하게 생일 파티를 하고, 15일은 생일파티를 빙자한 여행을 갈 수 있었던 것. 그런데, 이런. 15일이 공휴일이 아닌 남편이 생길줄 이야. 더이상 생일날 여행을 떠나는 럭셔리 파티를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대신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전업주부로 전향하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육아로 시간이 그리 자유롭진 않지만, 점심시간을 전후로 아이들이 어린이 집에 가 있는 동안 이들과 깨알 만남을 가질 수 있다. 그 중 하나인 나의 베프 장순양이 생일기념 점심식사를 제안했다. 우리 장순양, 별명이 무색하게 요즘 골골한데, 몸소 감자양이 사는 근처까지 출두해 주셨다. 디큐브 바르미 샤브샤브에 갔는데, 의외로 인테리어가 고급스럽더라. 대신 국물이 매워서 오이군과 감자양은 캘록거리며 간신히 고기만 건져 먹었다. 아니 왜 샤브샤브를 맵게 하는거시얏! 야채커플의 정서로는 이해할 수 없다. 샤브샤브는 안매워서 좋은건데...훌쩍.




장순양의 센스 있는 선물, 소주잔. ^^ 애주가의 집에 소주잔이 없었다. 그래서, 본의아니게 소주를 물컵에 마셔왔었다. 오늘이 오기 전까지는...

아기자기한 성격의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다. 





8월 15일

생일이 뭔지



생일따위 귀찮은 나이가 됐다. 

작년까지만해도 매번 어떻게라도 건덕지를 만들어 파티할 궁리를 했었는데, 올해는 극한으로 귀차니즘에 시달리고 있다. 파티는 무신...배달온 밥 떠먹는 것도 귀찮은 지경에 이르렀다.


오이군이 점심때 부엌으로 달려가 뚝딱뚝딱 만들어낸 라이스 샐러드. 밥을 파스타 삶듯이 삶아 찬물에 식힌 후, 각종 생 야채와 통겨자소스, 올리브오일, 화이트 발사믹식초 등을 넣어 만든 유럽식 샐러드로, 스위스 살 적에 늘 밥이 그리웠던 감자양이 좋아했던 샐러드이다. 누가 밥해주니 참 좋다. 매일 생일이었으면 좋겠다.


저녁에는 오이군이 외식을 하자며 나를 데리고 나갔는데, 휴일이라 음식점이 문을 닫았더라. 배가 고플대로 고픈상태여서 신경이 곤두선 감자양은 예약은 고사하고 문여는지 체크도 안해놓은 오이군을 깨물어 먹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8월 16일

아파트에 장 서는 날


우리 아파트 단지 내에는 언제부터인지 일주일에 두번 조그마한 장이 선다. 과일과 야채, 건어물을 판매하는데, 딱히 저렴하진 않지만 매우 싱싱하다. 창밖으로 내려다 보니 오늘도 장이 서서 가볼까 옷을 입는 사이, 비가 주룩 주룩 내리기 시작한다.




밖에 있을 때 비를 맞는 것은 좋은데, 실내에 있을 때 비오는 곳으로 나가는 것은 싫다. 뭐 그러냐고 하겠지만 하여간 그렇다.

바로 액티비티를 변경, 빗줄기 찍기에 몰입.

근데, 이거 잘 안되네...카메라 비 안맞게 보호하랴, 삼각대 없이 고정하랴 신경쓸게 너무 많다.

그래도 잘 보면 아래 나무 있는 쪽에 굵직한 줄기 몇개를 비롯해 잔줄기가 좀 찍혔다.





시원한 장대비가 그치고 나니 그새 화사한 햇살이 생긋. 

나뭇잎에 맻힌 빛방울이 그렇게 싱그러울 수가 없다.

이래서 여름이 좋다.

가을, 겨울, 봄에 오는 비는 추운데, 여름에만 비가 시원하게 느껴진다. 



   


비온뒤 상쾌한 햇살아래 싱싱한 야채들을 보니 흥이 절로나서 나도모르게 과하게 사고 말았다. 장은 삼일뒤에 또 설텐데, 웬 야채를 이리 많이 샀을까. 야채를 먹는 식구가 단 둘이라는 것을 가끔 자주 망각하게 된다. (고기를 먹는 식구는 하나 더 있다. 사람만큼 먹는 까비양)





8월 17일

조금 늦은 생일 파티


   


생일날을 조금 어설프게 보내서 뭐 그런가보다 했는데, 역시 우리 오이군, 깜찍하게 주말 이벤트를 준비했다.

일단 종각역 근처에 있는 인도, 네팔 음식점, 두르가에서 옛추억을 되살리며 머그 마카하니와 탄두리 세트를 먹었다. 오래전 야채커플이 호주 어학연수생이던 시절, 감자양이 시드니 북동쪽 프레쉬 워터 비치앞의 인도 네팔음식점에서 9개월 정도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 당시 감자양을 소심하게 공략하고 있었던 오이군이 어느날 혼자 음식점에 와서 머그 마카하니를 먹고 갔다. 오이군과 그렇게 친하지 않았던지라 혼자 음식점에 와서 먹고 갈 정도면 커리를 상당히 좋아하나보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아는 커리도 없었고, 그날 감자양이 맛있다며 추천해줬기 때문에 그냥 시켰다고 하더라. ^^;

종각의 두르가는 그때 내가 일하던 음식점의 환상적인 커리맛은 아니지만, 저 하얀 과일 커리빼고는 그럭 저럭 괜찮은 집이었다. 인도사람들이 종업원으로 일하는데, 어설픈 한국말이 귀여웠다.




   



그리고 올해의 생일 선물은 감자양이 오래전 보고싶다고 해놓고 잊어버렸던 뮤지컬 시카고.

예전에 영화도 뮤지컬도 너무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어서 다시한번 보고 싶다고 했는데, 오이군이 잊지 않고 이렇게 예매를 해 놓은 것이었다. 덕분에 감자양은 외국인의 안내로 국립극장에 처음 가 보게 되었다. 국립극장이 이렇게 화려하게 생긴줄 몰랐네. 한국어 공연이라 멀뚱거리는 오이군에게 미안해 하며, 고마와 하며, 즐겁게 관람했다. 몇몇 배우들의 성량이 살짝 부족한 느낌을 받았지만, 대체적으로 꽤 좋은 공연이었다.




공연 후 집에 돌아가는 셔틀 버스 타는 줄.

아하하...





8월 24일

캐리비안 베이 삽질 사건


쿠팡에 캐리비안베이 입장권이 3만원인가에 떴길래 후다닥 사서 오이군과 출동했는데, eighteen...

26일부터 사용가능한 쿠폰이랜다. 잘좀 보고 살껄. 아침 댓바람부터 웬 물놀이를 한다고 들떠가지고...쯧.

이미 온길 되돌아갈 수가 없어서 현장구매로 나는 50%, 오이군은 100%가격으로 입장했다.



   


쿠폰때문에 사람만 무지막지하게 많고, 물미끄럼하나 타는데, 두시간씩 기다려야되고.

에이, 돈아까와.





8월 25일

미안해, 오이!


일요일 아침, 오늘은 감자양이 홀로 팔라우로 떠나는 날이다.

취재를 요청한 겟어바웃측에서 흔쾌히 오이군도 같이 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으나 우리 오이군, 올해 휴가를 다 써버리고 만 것이다. 다 쓴정도가 아니라 일주일 넘게 오버해서 쓰는 바람에 주말에도 추가근무를 하는 오이군. 감자 혼자 또다시 물놀이를 간다고 입이 3cm는 튀어나왔다. 놀기만 하는게 아니고, 호텔인스펙션이 있는 날은 하루 종일 호텔 사진만 주구장창 찍을텐데, 따라가도 재미 없을 수 있다고 달래보았지만 별 소용없다. 감자가 발에 바닷물 묻히는 것 자체가 질투의 대상이다.



삐진 오이군을 달래주고자 맛있는 점심을 사주려고 했건만 아직도 푹푹찌는 날씨 덕분에 침대 아래가 시원하다며 방바닥으로 내려 온 오이군, 일어날 생각을 안한다. 까비양은 이때다 싶은지 폭신한 이불을 마음껌 탐닉하고 있다. 이때 아니면 또 언제 이불에서 자보나 싶은가보다. 11시 다됐는데, 삐진 오이군도, 이불을 차지한 까비양도 일어날 생각을 안한다.

드르렁, 드르렁.



   



   


간신히 좀비같이 일어난 오이군을 데리고, 타임스퀘어 슬로우 푸드로 왔다. 음식은 맛은 제대론데, 가격은 비싸기로 소문난 스위스 음식점보다 높다. -_-; 메뉴판을 보는 순간 심장이 쿵쿵거렸지만 (무슨 샐러드가 1만 7천원이나...) 기분좋게 모히또를 곁들여 상큼한 샐러드 점심을 먹이고, 영화도 한편 쐈다. 오이군이 이정도면 미니 굿바이 세레모니는 되었다며 어서 가버리랜다. -_-;


안녕, 오이군. 집 잘보고 있어. 까비랑 싸우지 말고. 까비 밥그릇에 라면먹지 말고. 정 거기다 먹고 싶으면 소독 잘하고. 까비는 이빨을 안닦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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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7일

감자없는 날, 그들은...


너 없어도 잘 놀고 있다며 보내온 사진들.




까비도 신나보이고, 오이군은...

비상식량으로 예약 배달 시켜주고 떠난 피자를 잘 받은것 같다. 아닌가? 까비가 받은건가? -_-;





8월 30일

오자마자 파티 어게인~


시커멓게 타서 같은 숙소에 머무르시던 한국 아주머니들이 내게 영어로 말을 거는 일을 당하고, 오늘 아침에 팔라우에서 돌아왔다.

밤샘 비행에 잠을 못자서 비몽사몽. 그러나 스파르타식 내인생은 쉴 틈을 용납하지 않는다.

오늘 스위스 칸톤 쥬라의 비지니스맨들이 사업영역을 넓혀보고자 한국을 방문하는데, 스위스 관저 파티에 불어권 지역 사람들이 다시 초대를 받은 것이다. 팔라우를 혼자가서 삐진 오이군을 더 삐지게 할 수 없어서, 평소 즐겨마시지 않는 커피를 벌컥 벌컥 들이키고, 핏발선 눈을 부릅뜬채, 스위스 대사관저로 향했다. 컴컴한 얼굴과 넓게퍼진 다크써클, 시뻘건 눈때문에 좀비라고 입구에서 제지당하면 어쩌지...


   


대사관저는 지난번 종로구 경희궁 옆에서 한남동 리움박물관 앞으로 이전을 했는데, 수영장은 없어졌지만 역시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마당넓을 가진 호화 단독 주택이다. 오늘도 싱글 벙글 친절한 대사님이 오시더니, 역시나 내손을 격하게 부여잡고, 새로 이사온 집구경을 시켜주겠다며 파티가 끝날 때 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여자들만 구경시켜주겠다는 말을 덧붙여서...

오늘은 나말고 한국 여자가 한명밖에 없어서 우리 둘만 집구경을 당하게(?) 되었지만, 내 임의대로 오이군도 남의집에 초대를 했다. 오이군, 이 친절해서 무서운 아저씨로부터 우리를 지켜줘! >_<

오래전에 지어진 집이라는데, 유럽풍 구조에, 대사님이 아프리카에서 일하던 시절 직접 공수했다는 아프리카 장식품들로 채워져 있어 한국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닌텐도 골수팬 오이군이 이 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대사님의 아들이 갖고 놀던 게임기 닌텐도 Wii. 게임기를 보며 싱긋 웃는다.





8월 31일

퀴즈 코리아


대사관에 이름을 등록해 놓으니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벤트들이 자주 생긴다.

요번에는 외국인 대상으로하는 TV퀴즈쇼, 퀴즈 코리아에 초청을 받았다. 아쉽지만 출연진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고 응원단으로 가게된 것. 한국에 사는 스위스 사람이 별로 없다보니, 이름이 등록된 몇몇 스위스 사람들이 각종 행사에 계속해서 동원되는 모양이다.


   



오늘 스위스를 대표한 아저씨는 오이군처럼 한국인 아내를 둔, 인도계 스위스 사람이었는데, 처음부터 처참하게 패배해 버렸다. 패자부활전에서조차 초반에 씩씩하게 떨어져서, 안그래도 길고, 지루한 녹화방송이 두배로 지겨웠다. 그나마 중간 중간 초대가수가 나와 쳐지는 분위기를 띄워줬는데, 우리 오이군이 좋아하는 크레용 팝도 나왔다. 크레용 팝 팬클럽 옵하들도 관중석에 있었는데, 산적같이 우락 부락한 옵하들이 '우워워~' 소리를 내며 얼마나 우렁차게 환호를 하는지, 갸녀린 크레용팝 소녀들이 무서워서 집에 가버릴 것 같더라. 가수 아무나 하는거 아닌게벼.


오늘 퀴즈왕은 기적적으로 계속 찍어맞춰, 결승에 우승까지 이루어낸 뉴질랜드 사람이었다. 한국말도 거의 못하던데, 막찍어서 자동차를 한대 받아갔다. 사실 문제가 어려워서 한국말을 한다고 다 맞추지는 못할 것 같았지만 말이다. 사회를 봤던 이휘재씨도 정답을 헤깔려 NG를 낼 정도였으니, 어차피 찍는거라면, 오이군에게도 가능성은 있다! 내년에는 오이군이 차를 벌어왔으면 좋겠다.


참, 오늘 사회를 봤던 가애란 아나운서는 오이군과 감자양이 어학연수를 하던 학교에 같은때에 다니고 있어서, 같이 학교파티에서 어울려 놀곤 했었는데, 오이군은 기억을 못하더라. 다시금 느끼지만 세상이 참 좁다.




2013년 여름방학일기 끝.



2013.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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