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 Bus

망설임


올해는 호주다 뭐다 싸돌아 다니느라 락페스티벌를 죄다 놓쳐버렸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짜와 비슷한 시기에 락페들이 이어져 피곤을 빙자해 어영부영하다 결국 하나도 못가고 여름이 가버린 것이다.


스무살. 그때 서양권 국가에 살았더라면 아직 틴에이져라 불리며 반항의 상징일 수 있었던 18살 때 푹 빠져 내 목 근육발달에 일조한 NIN까지 출두해 주셨는데도, 결국 망설이느라 버스는 떠나가고 말았다. 내인생에 얼마나 많은 버스를 이렇게 놓쳤던가. 나의 망설임은 언제쯤 끝이 나려나. 영원히 끝나지 않을것 같다는 막연한 체념은 또 뭐란 말인가. 

하는 수 없다. 그냥 생긴대로 사는 수 밖에. 망설이는 것에도 버스를 놓치는 것에도 익숙해지는 순간이 오더라. 그게 꼭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런게 성숙의 일부분이 아닐까 마음대로 생각도 해본다.


어쨌든 올해의 점핑, 헤드뱅잉(슬램은 이제 안한다. 젊은애들을 몸으로 밀어낼 기력이 딸려서...쿨럭)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린데이님 블로그에서 렛츠락 페스티벌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출연진을 보고 바로 티켓을 구입했다. 홍대 라이브클럽에 발걸음이 뜸해진지 무지 오래라 모르는 밴드도 많았지만, 여전히 나의 귀에 일부처럼 달고다니는 음악을 선사해주는 밴드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사랑, 넬, 노브레인, 델리스파이스, 레이지본, 윤밴, 피아가 그 주인공이다. 그들의 음악속에 또 그들과는 관계 없는 나 혼자만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아놓고, 이름만 보고도 반가와 한다. 길에서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반갑게 다가가 소주 한잔 기울이자 할 것 같것 같아 걱정이다. 


예전에 언젠가 길에서 아는 분인줄 알고 반갑게 인사했는데, 그분은 매우 의아한 듯 나를 보시며 '아, 네에..'하고 지나가시더라. 나중에 누군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동네 동사무소 직원이신데, 워낙 상냥한 인상이 기억에 남아 아는 분으로 착각했던 것. 물론 동사무소에 드나드는 수만명의 주민 중 하나인 나를 그 직원분이 기억할리가 없었다. 별로 사교적이지도 않은, 안티소셜에 가까운 내가 가끔 왜 이런 돌발증상을 보이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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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all myself 1998

회상 1998


양일간의 공연을 모두 관람하기엔 올여름 지갑에 구멍이 너무 커서 하루만을 선택해야했다. 

선택. 많은 이들에게 그렇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가끔은 음식점에 메뉴가 단 한가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러면 어렵게 뭘 먹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될텐데.


어떤 밴드에 나의 추억이 조금더 깊이 스며 있을까?

혼자만의 저울질에 들어갔다.



윤밴. 윤도현 밴드.

97년인가 8년인가에 홍대와 신촌 사이에 있던 롤링스톤즈에 공연을 보러갔다가 윤도현씨가 클럽앞에 서 계신것을 봤다. 그땐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하고 계셨는데, 포스가 장난이 아니더라. 그의 소나기같은 시원한 목소리를 좋아했던지라 조금 무서웠지만(?) 같이 있던 친구와 함께 쭈뼛 쭈뼛다가가 조심스레 악수를 청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 긴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너무 소탈하고, 정중하게 악수를 받아주시며 아, 저? 저요? 저 아세요? 하하. 감사합니다. 라고 하시는 거다. 긴 머리의 야수같은 이미지에서 소탈한 동네 옵하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

2002년 월드컵때 오, 필승코리아 국민 밴드로 급 부상하면서, 짧은 머리로 TV에 출연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너무 낯설었지만, 어쨌든 모두에게 사랑받는 슈퍼스타로 자리매김 하셨다. 나는 원래 라이브 콘서트 말고는 TV와는 담을 쌓고 지내는지라, 한국에 없는 동안 윤밴의 모습을 본적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돌아와 보니 외국인 멤버까지 대동하고 다니셔서 그때 그사람이 저사람인가 싶더라. 뭐 어쨌든 옛날 그 긴머리의 순박한 웃음이 기억에 남아 나는 여전히 윤밴이 좋다.

아, 그러고보니 외국인 멤버는 나도 대동하고 다니는구나. 흠. 그때 긴머리의 가수에게 말도 잘 못걸던 그 여자가 지금 이 여자 일까?


노브레인. No Brain.

노브레인은 내가 고3 수능 끝나고 한참 활개를 치고 다니던 시절, 역시 홍대앞 라이브클럽 드럭Drug입구에서 처음 봤다. 당시 유명한 펑크밴드들이 공연하는 클럽이었던 드럭에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 드럭이라는 입구가 우리에게는 너무 높았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친구와 함께 룰루 랄라 드럭을 찾아 갔더니, 입구에 에이즈 바이러스 모양의 헤어스타일을 한 사람들이 온몸에 징 박힌 장신구들로 치장을 하고, 담배연기에 둘러 싸여 앉아 있는 거다. 좁고 지저분한 계단을 거의 막다시피 앉아있었는데, 차마 그 무서운 사람들에게 지나가게 해달라고 입이 안떨어졌다. 결국 그날은 친구와 함께 만만한 잼머스Jammers로 발길을 돌렸는데, 집에가서 생각하니 오기가 나더라. 결국 한주뒤에 일단 삼겹살에 반주를 곁들여 용기를 북돋은 후, 친구와 드럭에 다시 도전했다. 그날도 역시나 그분들이 담배연기 자욱한 계단에 진을 치고 계셨고, 우리는 당당하게, 그러나 기어들어가는 성량으로 저기요...잠시만요. 지나갈께요.라고 말하며, 전투적인 태세로 어떤 반응에도 굴하지 않으리라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분들이 아, 예예. 라고 하며 선선히 민첩한 동작으로 길을 비켜주시더라. 우리는 멋적게 입구에서 받은 생수병을 들고, 긴장한 심장을 쓸어내리며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불이 꺼지니 아까 그 계단에 앉아있던 밤송이 헤어스타일 펑크족들이 차례로 무대에 서는게 아닌가. 그분들이 바로 노브레인과 크라잉넛이었던 것이다. 그뒤로 나는 드럭 죽순이가 되었고,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폭발했던 에너지를 그곳에서 풀었던 것 같다. 지금도 노브레인과 크라잉넛을 보면 그때 드럭에서 느꼈던 환희와 흥분, 광기에 가까운 열기가 온몸을 휘감는 것 같다.


레이지본. Lazy Bone

역시 드럭밴드로 레이지본 공연에 열광하고 나왔더니, 어떤분이 감자씨는 처음 봤을 때 예쁘장하고 순진해 보여서 호감이 갔는데, 보면 볼 수록 미친X 같아서 가끔 무서워요.라고 하더라. 나는 이 문장에서 예.쁘.장. 만을 기억하지만, 이 말을 했던 분은 미.친.X. 만 기억하지 싶다.


피아. Pia

내가 RATM이나 Korn, Limp Bizkit 등의 하드코어만이 들을만한 음악이라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피아가 등장했고, 당연히 그들은 나에게 굉장히 들을만한 음악이었다. 나중에 중학교때 내 연인이라 믿었던 (^^;) 서태지가 괴수 인디진으로 데려가면서 팍 떠주었고, 그 뒤로 꾸준히 앨범이 나와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자. 위의 밴드들은 모두 일요일 공연 밴드들이다. 대식가인 내가 20대 때 그나마 사람 형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열량소비를 책임져 주시던 분들이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Decision

선택


토요일이다.

뭐냐...한참 떠들더니.


이유는 간단하다.

나의 분노 게이지가 떨어지고, 체력도 함께 떨어지며 MP3리스트에는 상당수의 하드코어Hardcore와 펑크Punk들이 슈게이징Shoe gazing과 얼터너티브Alternative로 대체되었고, 심지어는 재즈Jazz까지 스며들게 되었다. 동시대에 나의 분노를 폭발 시키거나 잠재웠던 음악들 중 현재까지 리스트에 남아있는 밴드들이 모두 토요일에 있었던 것.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타는 오이군의 한마디였다.

어? 넬이다. 나 넬 공연 한번 보고 싶다~

주절 주절 다 필요 없다. 서방님께서 넬이 보시고 싶으시댄다.



나도 오랜만에 새앨범이 나온 김사랑의 라이브를 보고 싶었으므로 흔쾌히 토요일로 낙찰을 봤다.

그러나, 문제는 토요 공연이 컬러 미 라드 마라톤Color me Rad maraton과 날짜가 겹친다는데 있었다. 오전에 달리고, 가루 범벅이 되어, 만싱창이가 된 몸으로 오후에 락공연을 보러가서 다시 뛰는것이 가능할까?

그래. 락페스티벌인데 뭐 어때. 우드스탁에선 진흙 범벅이 되서도 놀드만 색가루 쯤이야. 비도 온다는데 씻기겠지...

그리고 우리와 같은 코스를 밟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하는 작은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는 처참히 짓밟히고, 우리 단둘이서, 온다던 비도 오지 않아 씻기지 않은 얼룩덜룩한 몸뚱이 즉, 거지꼴로 렛츠락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되었다.




Let's Rock all together


솔루션스. The Solutions.

몇달전 접하고, 세련된 음색에 반하게 된 모던락 밴드 솔루션즈의 공연이 무척 궁금했는데, 아쉽게도 컬러 미 래드와 시간이 겹쳐 놓치고 말았다.

약간 영국 팝밴드의 느낌이 나는 멜로디인데, 듣고 있으면 기분이 밝아져서 밤중에 포스팅할 때 많이 듣게 된다. 기분이 다운되는 새벽에는 자살노트 비슷한 포스팅이 나올 수 있으므로 이런 밝은 음악으로 경쾌한 분위기를 유지시켜줄 필요가 있다.


솔루션스 The Solutions - 'Tonight' 어쿠스틱 라이브

솔루션스 The Solutions - 'Silence'



해리빅버튼. Harry Big Button.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해리 빅 버튼Harry Big button이란 밴드가 노래하고 있었는데, 와우. 크래쉬Crash 이후로 이런 귀에 척 붙는 과격한 정통 헤비메탈 밴드, 오랜만이다! 컬러 미 라드에서 스테미나 바닥났다며 기어왔는데, 단숨에 무대앞으로 날아가서 정신없이 흔들었다. 

집에와서 찾아보니 역시 보컬과 기타를 맡고 계신분은 크래쉬와 스푼에서 기타를 치셨던 분이더라. 어쩜 목소리 이렇게 시원한지. 

오이군도 한국에도 이런 밴드가 있었냐며 매우 감동한다. 뿌듯. 


해리빅버튼 Harry Big Button - King's life



김사랑.

드디어 오랜만에 4집앨범을 들고 찾아와 오늘 가장 기대가 됐던 김사랑씨의 공연이다.

나는 옛날에 홍대 슬러거에서 라이브를 본게 마지막이니 음...십년이...넘었나보다. 쿨럭.

그땐 긴머리로 과격하게 뱅잉을 하며 무대를 휘저었는데, 느낌이 많이 달라졌다. 그래도 목소리는 여전하다.


99년쯤이었나, 우연히 본 TV 광고에 어떤 청년이 본인이 18살이라며 또 만 팔천원이라며(^^;) 나오기에 가만히 보니, 어디서 본적이 있는것 같더란 말이다. 그러다 번득 생각이 났다. 앗, 예전에 스팽글이였나 잼머스였나 홍대 클럽 어딘가에서 봤던 청단(=청년단체) 보컬 아니던가? 오똑한 콧날에 자신만만하고, 반항적인 눈빛이 뇌리에 박혀, 한두번밖에 못본 밴드인데, 얼굴이 기억 났다. 18살이구나. 어리네. 하드코어를 지르던 그가 모조리다 가상현실이라며 아이돌스러워져서 '오잉?' 했지만, 그래도 호기심에 그의 1집을 들어봤는데...이런. 하드코어는 물론 모던락, 랩, 댄스, 일렉트로를 넘나드는 광대역 싱어송 라이터 였으며, 연주까지 혼자 다 해먹는 이기적 천재형 가수였다. 당시 나의 취향을 다방면으로 만족시켜준 앨범이었고, 그 뒤로 나온 2집은 여전히 전곡이 내 MP3리스트에 로딩되어있는 Favorite 앨범. 그때 한참 클럽에 공연있으면 다 찾아다니곤 했는데, 군복부이유로 활동을 접고, 제대 해서 앨범 나올때 쯤엔 내가 이미 한국에 없었으므로 참 오랜만에 보는 그의 라이브였다. 신곡들로 무장했지만, 그냥 그의 목소리만으로도 추억이 돋아났으며, 어느덧 자기는 필링Feeling으로 먹고 산다며 너스레도 떨 여유가 느껴지는 가수가 되어있더라. 예전엔 공연에서 말도 거의 안하고, 말주변도 별로 없었는데...^^ 

3집 부터는 좀더 밴드적 성향이 짙어지고, 편안한 분위기의 음악들이 많아졌다. 나는 매케한 연기가 자욱한 클럽에서, 긴머리를 휘날리며 반항적으로 내지르던, 웬지 내 대신 세상을 향해 소리질러주는 것 같았던, 그의 모습이 살짝 그립기도 하지만, 지금의 부드럽게 감싸는 목소리로 이제 그만 진정하라고 말해주는 듯한 모습도 좋았다.

공연 후 오이군의 코멘트는? 

노래 좋은데? 근데, 뒤 스크린에 띄워줄 로고하나 만들지...


김사랑 - ICU

김사랑 - 비오는 날

김사랑 - 위로

김사랑 - Good Night 

(이 노래 기타치면서 불러주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했는데, 노래는 고사하고 한국말을 못하는 사람과...^^;)

김사랑 - 4D

김사랑 - Never

김사랑 - gate

김사랑 - 너란 놈

Bonus - 원맨밴드 



장미여관.

오늘의 발견. 코믹하면서도 훌륭한 연주실력에 오이군이 홀딱 반해버렸다. 노래풍은 다르지만 익살스런 모습이 어딘지 오이군의 친구가 한명 끼어있는 스위스 밴드 Rambling Wheels 를 떠올리게 해서 더욱 친근감이 간다고. 


장미여관 - 부비부비



로맨틱펀치. Romantic Punch.

역시 오늘의 발견. 물론 원래 잘 나가는 밴드인 모양이지만, 우리가 오늘 처음 봤기때문에 오늘의 발견이다. ^^ 요런 비주얼 하드락은 역시 콘서트에서 봐야 제맛. 빨간 가발 모자로 무대를 날아다니는 보컬이 압도적이었다. 오이군과 감자양은 드디어 당떨어져서 바닥에 널부러져 앉아있다 빨간 모자 파워에 낚여 정신없이 점프 점프.


로맨틱펀치 Romantic Punch - Electric Coma + Right Now + 미드나잇 신데렐라 (at Let's Rock festival)

로멘틱펀치 Romantic Punch - 몽유병



델리스파이스. Delispice.

다행히 마지막 두 그룹은 당떨어진 야채들도 감상할 수 있는 '감수성'그룹이다. 스믈 스물 다가오는 가을과도 잘 어울린달까?


97년 말 나를 신세계로 안내해줬던 델리스파이스. 역시 십몇년만에 보는 공연이다. 음악과 함께 뿌연 담배연기가 꽉찬 어두운 홍대 라이브홀, 소음과 기타소리, 텁텁한 맥주 맛 그리고 당시 자주봤던 여러 사람들 얼굴이 떠올랐다. 미친듯이 돌려들었던 차우차우의 그 '목소리'가 연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듣기싫은 정치인의 목소리였다는 뒷이야기를 듣고 매우 충격을 먹은 시절이 있었다. 너무 듣고 싶어서 잊혀지지 않는 목소리가 아니라, 너무 듣기 싫어서 괴로운 목소리였다니...


델리스파이스 Deli Spice - 노캐리어

델리스파이스 Deli Spice - 마이웨이 My Way

델리스파이스 Deli Spice - 기쁨이 들리지 않는 거리

델리스파이스 Deli Spice - 환상특급




넬. Nell.

공연의 마지막은 넬 특유의 비장한 파워풀함으로 그루브함과 노스텔지아와 슬픔과 기쁨이 함께 느껴지는 이상한 감동의 도가니로 끝이 났다.


2000년쯤 어느날, 별 계획없이 친구와 홍대앞에서 만났다가 심심해서 습관처럼 라이브 클럽 들어가게 되었다. 그냥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자 했던것이 Jammers였는데, 그날따라 아는 밴드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딱히 귀에 들어오는 음악도 없어서, 둘이 구석에 앉아 심드렁하게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데, 어떤 밴드가 나와 공연을 하는 중, 관객석에서 보컬 목소리가 잘 안들린다는 지적이 들어갔다. 보컬은 보컬쪽 볼륨을 올려달라고 부탁을 했고, 조정을 하는 듯 했지만 그 당시 홍대앞 라이브 클럽의 음향시설에는 한계가 있었다. 두 세번 반복해서 보컬 볼륨을 조정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포기, 그가 말했다. 뭐 들리지도 않는데, 노래 부르지 말고 연주나 하죠. 그러더니 시크하게 정말로 자기네 발을 바라보며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닌가. 오, 슈게이징 Shoe Gazing 밴드인가? 뭔가 성깔 있어보이는 그 태도가 눈이 띄어 그때 부터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는데, 그 연주에는 뭐랄까. 열악한 음향시설에서도 빨려들어가는 듯한 흡입력과 부드러운 선율이지만 무한하게 심장으로 파고드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거의 15분 동안 깔끔하게 나를 사로잡은 밴드가 궁금해서 보니, Nell이라는 밴드였고, 그때 인디 앨범으로 나왔던 음반을 사들고 집으로 온 후, 조그마한 내 방은 온통 Nell로 가득찼다. 당시 조금 암울했던 나를 여러번 창가로 밀어버리려고 했던 것도, 같이 심연의 밑바닥으로 끌고 내려가주며 위로해 준것도 바로 Nell의 음악이었다. 인디앨범으로 1,2 집이 나왔으나 피아처럼 서태지의 눈에 띄어 괴수인디진으로 메이져 앨범 1집이 다시 나왔을 때는, 사실 인디때의 우울함이 사라진 듯한 깔끔한 음색에 살짝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그들의 음악에는 인간의 내부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다. 매 앨범마다 세련된 조용하면서도 폭발적인 음색으로 한번도 실망시키지 않은 넬, 오이 감자 커플의 감수성을 책임져주는 밴드이다.


넬 Nell - 어차피 그런거 (인디 앨범 버전)

넬 Nell - 어차피 그런거 (라이브)

넬 Nell - 그런기억

넬 Nell - Shower

넬 Nell - 삐에로와 눈사람

넬 Nell - 벙어리

넬 Nell - Beautiful Stranger

넬 Nell - Heaven



지금은 다들 너무 유명해서 노래하다 침튀면 맞을 크기의 공연장에서는 더이상 볼 수 없는 밴드들이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가끔 나도 모르게 그때 혼자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던 그 라이브 클럽들을 눈을 감고 되새기곤 한다. 같은 곳에 가더라도 아마 다시는 느끼지 못할 것 같다는 아련한 그리움과 함께.

이상, 렛츠락과 후기와는 거의 관계없는 감자이야기와 전적으로 감자취향의 선곡 리스트. 끝. ^^


공연일자 : 2013.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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